딱히 ‘손학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의 입에서 ‘정치적 고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번 손대표의 출마는 승부수로 여겨진다. 실제 분당은 한나라당 사람들 사이에서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 이 지역에서 가뿐하게 3선을 한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2008년 총선에서 득표율 71.7%를 기록했다(민주당 김종우 후보는 26.7%). 기껏해야 수천수백 표, 심지어 한 자릿수 차이로 당락이 갈리곤 하는 수도권 선거의 흐름에 견주면, 한 후보가 70% 이상을 얻는 건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손 대표의 핵심 측근들은 대부분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출마 선언 전날에도 한 측근은 “언제부터 분당을이 민주당에 ‘해볼 만한’ 지역이 되었나. 대표를 사지로 몰아넣어 망가뜨리는 민주당의 못된 습성이 또 발동하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당은 사지(死地)’라며 출마에 적극 반대하던 신학용 의원(대표 특보단 간사)의 얘기는 손학규계의 정서를 대변한다.
손 대표는 출마를 선언하는 날 새벽 측근들에게 전화로 출마 결심을 알렸다고 한다. 출마 선언을 한 직후에는 명함을 어떻게 만들지, 사무실은 어떻게 운영할지 등을 놓고 손 대표와 참모들 간에 즉석 회의가 열렸다. 손 대표가 언제부터 출마를 ‘저울질’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심’만은 전격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손 대표가 왜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지’로 발길을 돌렸을까. 무엇보다 존재감을 끌어올릴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게 중론이다. 손 대표의 지지율은 제1 야당의 대표인데도 10% 아래를 맴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야당의 기회로 여겨지는 4·27 재·보선도 이대로라면 손 대표에게는 별로 남는 것 없는 선거로 흘러갈 공산이 컸다. 이미 강원도 선거는 ‘이광재 선거’로, 경남 김해는 ‘노무현 선거’로 구도가 잡혔고, 전남 순천은 다른 야당에, 분당은 한나라당에 내주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었다.
“손 대표 당락, 30~40대 투표율이 관건”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국민참여당 대표로 선출된 유시민 전 장관의 약진이 자극이 됐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의석 하나 없는 정당의 대표에게 야권 주자 1위 자리를 계속 내준 데다가 최근 들어 주도권까지 빼앗기는 양상이라, 손 대표로서는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하기 전에 어떻게든 야권 주자 1위 자리에 올라야 할 절박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바깥의 출마 권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의 한 참모는 “조·중·동 데스크급 기자들의 출마 권유가 적잖이 작용했다”라고 귀띔했다. 평소 손 대표에 비우호적인 인사들의 출마 권유는 ‘흔들기’로 치부했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온 언론인들이 ‘승부수를 띄울 때’라고 권유하자 손 대표도 귀를 기울이더라는 얘기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지표상의 변화는 손 대표에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와 야당 후보 간 득표 차이가 상당했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격차가 확연히 줄었다(아래 표 참조). 게다가 ‘손학규 대항마’로 거론되던 정운찬 카드가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는 점도 손 대표 마음을 움직이는 변수가 됐다. 경기도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정 전 총리는 신정아 파문으로 내상을 입어 출마가 힘든 상태고, 강재섭 전 총리는 영남 출신에 5공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분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누가 나와도 손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여건을 잘 활용해 손 대표가 당선될 경우 원외 대표라는 한계도 벗고, 야권 대표주자로 도약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4월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운찬 카드를 버리고, 당내 경선을 통해 분당을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손 대표가 입을 타격은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당을 위해 희생한 만큼 졌다고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벌써부터 “지더라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방어막을 치는 측근도 있다. 그러나 ‘선거 패배’는 곧 ‘손학규의 한계’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특히 경기도 지사를 지낸 손 대표가 경기도 선거에서 진다면 ‘수도권 경쟁력’에 심각한 상처를 받으면서 ‘대안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의 선거 전문가들은 결국 “30~40대 투표율이 관건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반MB 정서가 강한 30~40대가 투표장에 몰리면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올라갔다. 재·보선일은 휴일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재·보선을 넘어서는 더 큰 각을 만들어 어떻게든 30~40대를 투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라는 것이다. 손 대표가 출마 선언문에서 “진보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대한민국이 따로 없고, 부자의 대한민국과 서민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변하고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제 신념에 대해 분당구민의 신임을 요청한다”라며, 분당보다 대한민국을 더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손 대표의 출마로 분당을 선거는 판이 확 커졌다. 여당에서 누가 대항마가 되건 선거 구도는 이명박 대 손학규의 대결로 짜였고, 강원도와 김해을 선거까지 영향권에 들었다. ‘대권 주자 손학규’의 운명은 이제 분당을 주민들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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