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려면, 죽을지 살지 모르는 고비를 최소한 세 번은 넘겨야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분당을 재·보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3월30일,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손 대표에게 첫 번째 고비는 2007년 3월 한나라당 탈당 결심이었다. 두 번째 고비가 이번 분당을 출마이고, 세 번째 고비는 아마도 내년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게 그의 짐작이다.

딱히 ‘손학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의 입에서 ‘정치적 고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번 손대표의 출마는 승부수로 여겨진다. 실제 분당은 한나라당 사람들 사이에서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 이 지역에서 가뿐하게 3선을 한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2008년 총선에서 득표율 71.7%를 기록했다(민주당 김종우 후보는 26.7%). 기껏해야 수천수백 표, 심지어 한 자릿수 차이로 당락이 갈리곤 하는 수도권 선거의 흐름에 견주면, 한 후보가 70% 이상을 얻는 건 이례적이다.

ⓒ시사IN 조남진손학규 대표는 3월30일 분당을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유독 ‘대한민국’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손 대표의 핵심 측근들은 대부분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출마 선언 전날에도 한 측근은 “언제부터 분당을이 민주당에 ‘해볼 만한’ 지역이 되었나. 대표를 사지로 몰아넣어 망가뜨리는 민주당의 못된 습성이 또 발동하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당은 사지(死地)’라며 출마에 적극 반대하던 신학용 의원(대표 특보단 간사)의 얘기는 손학규계의 정서를 대변한다.

손 대표는 출마를 선언하는 날 새벽 측근들에게 전화로 출마 결심을 알렸다고 한다. 출마 선언을 한 직후에는 명함을 어떻게 만들지, 사무실은 어떻게 운영할지 등을 놓고 손 대표와 참모들 간에 즉석 회의가 열렸다. 손 대표가 언제부터 출마를 ‘저울질’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심’만은 전격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손 대표가 왜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지’로 발길을 돌렸을까.  무엇보다 존재감을 끌어올릴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게 중론이다. 손 대표의 지지율은 제1 야당의 대표인데도 10% 아래를 맴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야당의 기회로 여겨지는 4·27 재·보선도 이대로라면 손 대표에게는 별로 남는 것 없는 선거로 흘러갈 공산이 컸다. 이미 강원도 선거는 ‘이광재 선거’로, 경남 김해는 ‘노무현 선거’로 구도가 잡혔고, 전남 순천은 다른 야당에, 분당은 한나라당에 내주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었다.

ⓒ뉴시스한나라당이 경선 방식을 택함에 따라 분당을 후보는 강재섭 전 대표가 유력해졌다.
“손 대표 당락, 30~40대 투표율이 관건”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국민참여당 대표로 선출된 유시민 전 장관의 약진이 자극이 됐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의석 하나 없는 정당의 대표에게 야권 주자 1위 자리를 계속 내준 데다가 최근 들어 주도권까지 빼앗기는 양상이라, 손 대표로서는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하기 전에 어떻게든 야권 주자 1위 자리에 올라야 할 절박감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바깥의 출마 권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의 한 참모는 “조·중·동 데스크급 기자들의 출마 권유가 적잖이 작용했다”라고 귀띔했다. 평소 손 대표에 비우호적인 인사들의 출마 권유는 ‘흔들기’로 치부했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온 언론인들이 ‘승부수를 띄울 때’라고 권유하자 손 대표도 귀를 기울이더라는 얘기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지표상의 변화는 손 대표에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와 야당 후보 간 득표 차이가 상당했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격차가 확연히 줄었다(아래 표 참조). 게다가  ‘손학규 대항마’로 거론되던 정운찬 카드가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는 점도 손 대표 마음을 움직이는 변수가 됐다. 경기도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정 전 총리는 신정아 파문으로 내상을 입어 출마가 힘든 상태고, 강재섭 전 총리는 영남 출신에 5공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분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누가 나와도 손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여건을 잘 활용해 손 대표가 당선될 경우 원외 대표라는 한계도 벗고, 야권 대표주자로 도약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4월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운찬 카드를 버리고, 당내 경선을 통해 분당을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손 대표가 입을 타격은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당을 위해 희생한 만큼 졌다고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벌써부터 “지더라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방어막을 치는 측근도 있다. 그러나 ‘선거 패배’는 곧 ‘손학규의 한계’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특히 경기도 지사를 지낸 손 대표가 경기도 선거에서 진다면 ‘수도권 경쟁력’에 심각한 상처를 받으면서 ‘대안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의 선거 전문가들은 결국 “30~40대 투표율이 관건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반MB 정서가 강한 30~40대가 투표장에 몰리면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올라갔다. 재·보선일은 휴일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재·보선을 넘어서는 더 큰 각을 만들어 어떻게든 30~40대를 투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라는 것이다. 손 대표가 출마 선언문에서 “진보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대한민국이 따로 없고, 부자의 대한민국과 서민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변하고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제 신념에 대해 분당구민의 신임을 요청한다”라며, 분당보다 대한민국을 더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손 대표의 출마로 분당을 선거는 판이 확 커졌다. 여당에서 누가 대항마가 되건 선거 구도는 이명박 대 손학규의 대결로 짜였고, 강원도와 김해을 선거까지 영향권에 들었다. ‘대권 주자 손학규’의 운명은 이제 분당을 주민들 손에 달렸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