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창(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인수위는 ‘확 바꿔라’ ‘당장 해라’며 ‘현찰’을 보여주려 안달이다. 경제 정책은 물론이고 교육마저도 ‘평등’을 버리고 ‘효율과 경쟁’만을 좇는다. 토건회사 CEO 출신다운 강력한 드라이브는 멀리 중국 상앙의 부국강병론을 닮았다.
‘부국강병을 위해선 옛것을 다 바꿔라’ ‘성과에 따라 상벌 정책을 엄격하게 시행해라’ ‘가시적 성과를 당장 보여라’.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가시적 효과를 만들려고 성마른 인수위의 발표가 아니다. 2300여 년 전 권모술수의 화신이라 불리던 중국 진나라 상앙의 기본 정책이다. 마키아벨리와 비견되는 상앙은 이상보다 현실을, 장기적 문화 성숙보다 단기적인 힘의 성취를 추구한 법가 사상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옛날은 다시 오지 않는데 옛 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는 변법 정책에 따라 당장 이익을 가져올 수 없는 모든 낡은 것을 폐기했다. 그는 농업 생산과 군사적 성과만이 강력한 국가를 보장하던 당시에 백성을 농사와 전쟁에만 몰두하게 하고, 학문과 예의·도덕 등 유가의 덕목에 눈 돌리거나 농사에 게으른 자를 엄벌로 다스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전국시대 최약소국이던 진나라가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가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가히 실용 정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국민을 ‘고기와 털’로 보는 법가는 실용 정부의 원형

부국강병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람도 있을 게다. 그러나 실용주의의 사상적 위험성을 알고나 취할 일이다. 상앙의 실용적 개혁 정책은 군주의 이익에만 복무한다. ‘관 뚜껑을 닫을 때까지 부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성정을 극단적으로 이용해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군주가 사람들의 이익을 모두 장악해 농사와 전쟁에 기여하는 자에게만 이익을 베풀고, 반대로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가 되는 경우에는 주저없이 극형을 내린다. 그의 정책은 인간성 실현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는 수단이고, 눈앞의 부를 가져다주는 대가로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백성은 고기와 털을 제공하는 순한 양이 되어야 한다.

더 위험한 것은 법가적 통치이념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앙은 결국 능지처참당했지만, 그 후로 중국은 유가의 외피를 쓰고 법가의 통치술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도 그 근본은 상앙에 닿아 있고, 경제 발전을 위한 무자비한 개발 열풍도 법가를 닮았다. 군주의 자리를 ‘국가’가 대신한 것 정도가 다르다.

ⓒ뉴시스대통령직 인수위(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정책을 완전히 뒤집고, 시장에 직접 효과를 나타내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지향하는 것이 ‘실용 정부’라는 말에 머리털이 쭈뼛했다. 설마 21세기에 국민을 ‘고기와 털’로 보는 지도자가 있을까마는 차기 정부의 기초를 만드는 인수위의 움직임을 보면 기우가 아닌 듯싶다. 인수위는 현 정부에게 ‘확 바꿔라’ ‘당장 해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고, 시장에 직접 효과를 나타내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기름값과 통신비 인하, 한반도 운하 등 당장 ‘현찰’을 보여주려고 안달이다. 기업친화적·시장주의적 경제 정책은 물론이고, 교육마저도 평등의 가치를 버리고 ‘효율과 경쟁’만을 좇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개혁 일성에 버금가고, 토건회사 CEO 출신다운 강력한 드라이브이다. 낡고 쓸데없는 것들을 내다버린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목욕물에 애까지 버릴까 두려운 것이다. 빠르게 달릴 줄만 아는 자는 비록 빨리 도착할지는 몰라도, 보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그게 뭔지,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신중하게 살펴야 뒤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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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송호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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