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새내기’의 계절이다. 기업체에서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대학에는 08학번 신입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연수나 새내기 대학생의 ‘새터’에서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고급 인력을 채용한 회사일수록, 학력 수준이 높은 학생이 입학하는 대학일수록 나 같은 사람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저항감을 크게 가진다. 강의 초반에 느껴지는 그 저항감이야말로 우리 사회 이른바 ‘엘리트’들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어서, 오히려 강의 효율을 높이는 ‘쥐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필기시험을 치르는 응시생들.
예를 들어 “석·박사들이 설립한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안에만 벌써 수십 개나 된다”라는 말은 이미 석·박사 학위를 가졌거나 장차 석·박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귀에 솔깃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선진국에는 판사노조와 변호사노조가 있고, 그들도 격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업을 벌이기도 한다”라는 말 역시 장차 판사나 변호사가 될 꿈을 꾸는 학생의 귀에 솔깃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고학력이나, 국가고시 합격 따위가 과거처럼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하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이 떠오른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방송사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명문대학교 출신일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수석을 거의 놓치지 않았던 수재이다. 그 자신만만한 신입사원들의 표정에서 자기가 곧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자기가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는 표정조차 보인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마치 애국적 결단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길들여진 그들은 ‘민주노총’ 하면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암 같은 존재쯤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 방송사의 노조위원장은 그 신입사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게 바로 15년 전 제 모습입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핀란드 교장협의회의 피터 존슨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핀란드에서는 교장 선생도 대부분 교원노조에 가입해 있다. 나도 그렇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다니엘 르 가르가송 부대사도 교육방송(EBS)에 출연해 “나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교장도, 부대사도 자기가 ‘노동자’라고 인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입사원들에게 ‘당신도 노동자’라고 말하면 자존심 상하는 얼굴이 된다. 이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조가 천막 치고 농성해서 얻어낸 ‘정규직’

“교육 분위기가 산만해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신입사원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겠습니다”라며 미안해하는 방송사 노조위원장에게 “위원장이 말한다고 그 사람들이 뭐 듣나요?”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했을 때, 위원장이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할 말 있는 사람입니다. 회사가 처음에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걸 정규직으로 바꾸느라고 얼마나 싸웠는지 아십니까? 여의도 본사 앞 아스팔트 도로에 천막 치고 한 달 이상 농성했어요. 그렇게 해서 회사가 이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뽑도록 했던 겁니다. 나는 정말 이 사람들에게 할 말 있다니까요.” 위원장은 그 말을 하다가 결국 목이 잠겼다. 그것이 바로 노동조합이 하는 일이라는 걸 신입사원들은 알기나 할까?

기자명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