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생체 로봇 에반게리온을 조종하는 파일럿 레이(위)와 신지. 기존 애니메이션과 다른 파격적 캐릭터로 흡인력을 발휘했다.
‘센 터 에 놓 고 발 사.’ “콰릉!” ‘센 터 에 놓 고 발 사.’ “콰르릉!” 

시리즈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거대 생체 로봇의 파일럿인 14세 소년 신지 캐릭터이다. 아버지의 부름으로 거대  로봇인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되었지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가 얼이 빠진 듯, 입력된 대로 발사 버튼을 누르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싫다고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체념이 깊으면서도 순응하지 못하는 그의 캐릭터는,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적지 않은 흡인력을 발휘했다. 무기력하기 그지없지만 간혹 에바에 오른 그는 지시를 무시한 채 광포하게 내달리기도 한다. 1990년대 말 튀어나온 이 캐릭터는, 세기말 종잡을 수 없는 일본 젊은 세대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낳으며 존재감을 부풀렸다. 신지 이전의 에바 파일럿이었던 폐쇄적인 신비 소녀 ‘레이’의 성격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레이는 세계를, 그리고 신지를 지켜내기 위해 태어난 양 자기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신지
〈에반게리온〉의 기본 설정은, 대재앙 뒤 인류의 분투기이다. 전세계에 몰아닥친 대재앙 ‘세컨드 임팩트’가 휩쓸고 난 뒤 인류는 절반만 살아남는다. 그로부터 15년 후 전투 도시인 제3 신도쿄. 인류는 거대 생체 로봇인 에반게리온을 개발해 들이닥칠 사도(使徒)들의 공격에 대비한다. 14세 소년 신지는, 영문도 모른 채 작전 본부 네르프의 사령관인 아버지 겐도에 의해 소환된 다음 거대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된다. 사도가 왜 들이닥치는지, 천사라는 이름의 그들이 왜 인류를 공격하는지는 좀체 드러나지 않고, 작전은 ‘인류보완계획’이라는 로드맵에 따라 진행된다. 이 계획을 진행하는 작전 본부 격인 ‘네르프’와 상위의 기구인 ‘제레’의 실체도 베일에 싸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점차 현존 인류가 과연 보호받아야 할 선한 존재인지, 우리를 공격하는 사도는 과연 악의 화신인지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난다. 힌트는 인류가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 아니라 아담과 이브 이전의 처, 릴리스의 후예라는 설정이다. 결국 회의하는 소년 신지는 인류 보완을 거부하고 인간의 길을 택한다.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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