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YS의 잠룡 관리 모델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정운찬 전 총리와 초과이익공유제, 그리고 분당을 출마를 둘러싼 최근의 여권 내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여권의 한 전략통은 이렇게 동문서답했다.

알려졌다시피, 지난해 12월 지식경제부 산하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오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의 화두로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협력업체들의 미래 발전을 위한 동반성장 기금으로 조성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당장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제학 책에서 본 적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서민경제특위를 이끄는 홍준표 의원도 “개념 설정을 잘못한 것이다”라며 반대했다.

ⓒ뉴시스사면초가에 빠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그러자 정 전 총리도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라며 동반성장위원장 ‘사퇴 카드’를 흔들고 나선 것이다. 정 전 총리는 3월22일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리를 분당을 재·보선 카드로까지 검토하던 여권 핵심부는 당혹스러워했고, 이 대통령이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마당에 여권 전략통이 내놓은 ‘YS 모델’ 운운은 무슨 의미일까. 이 인사는 “7룡이니, 9룡이니 하며 차기 주자를 여럿 관리함으로써 정치적 레임덕을 최대한 늦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케이스를 MB가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발탁하려 한 일이나, 정운찬 전 총리를 동반성장위원장 자리에 앉혀 또다시 역할을 부여한 것 등이 그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게 다 박근혜 탓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표가 워낙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에 MB에게는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카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운찬 카드, 멀게는 대선까지 살릴 수도

이 같은 맥락이라면 이번 ‘이익공유제’ 국면에서도 MB는 정운찬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아니나 다를까, MB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상생하자는 얘기 아니냐.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냐”라며 정 전 총리 편을 들었다. 이재오 측의 한 인사는 “초과이익공유제를 하든 안 하든 논의해볼 만한 화두라는 게 이 장관의 생각이다. 대통령도 이런 일 때문에 정 전 총리가 그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한 일부 인사들의 공격에 ‘선사후공(先私後公)’의 혐의가 짙다고 비판했다. 최중경 장관은 ‘수출 위주’ ‘대기업 중심’ 마인드에 젖어 있는 경제 관료의 처지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 차원에서, 홍준표 의원은 자신의 ‘친서민’ 이미지와 겹치는 정운찬 카드의 급부상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동시다발로 ‘정운찬 공격’을 진행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정 전 총리는 적극 부인하지만, 분당을 재보선 출마에 대해서도 여권 인사들은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친이계의 한 인사는 “당장 원희룡 사무총장 등 재·보선 승패에 책임을 져야 할 한나라당 지도부가 ‘정운찬 카드’에 목을 매고 있다. ‘야당 후보’를 보고 한나라당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4월 중순까지 아직 충분히 시간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 주변에서도 분당을 출마에 대해 ‘가능성 있다’는 발언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정 전 총리의 한 핵심 측근은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나온다거나 한나라당이 4·27 재·보선에서 한 곳도 이기기 힘든 상황이 된다면 이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마냥 버티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다른 한 측근은 (분당을 출신인)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것으로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임 실장이 강재섭 출정식에 자기 부인을 보냈다더라. 노골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셈인데, 정운찬이 당선되면 내년에 또 한다고 할까봐 오히려 경쟁력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다.

“책 팔아먹으려고 정운찬 실명 넣은 것”

정 전 총리의 지인들은 당초 대통령 직속인 줄 알았던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식경제부 산하로 들어가고, 예산이나 인력 지원이 거의 없는 ‘껍데기 위원회’로 전락한 데도 이들 친대기업, 반정운찬 인사들의 ‘의중’이 작용했다고 의심한다.

그렇다면 ‘이익공유제’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되는 시점에 터져나온 ‘신정아 변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학력 위조 혐의로 실형을 산 신정아씨는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에서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 미술관장직과 교수직을 제의했으며 밤늦은 시간에 호텔 바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적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의원은 “신정아 파동으로 (정운찬 전 총리가) 계륵이 됐다”라고 평가절하했고, 민주당 등 야당은 “정운찬·신정아의 동반 몰락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친이계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신정아 책을) 다 읽어봤는데, 늦은 시간에 호텔 방도 아닌 호텔 바로 불러낸 것 말고 뭐가 더 있나. C의원은 적나라한 표현이 나오니까 이니셜로 처리하고, 정운찬은 별거 없는데 책 팔아먹으려고 실명을 공개한 것이다”라며 “이런 과정을 거쳐 오히려 정 전 총리에 대한 거품이 빠지고 검증이 이뤄지는 거다. 분당에 나가든, 내년 총선에 나가든 이제 본격 정치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정 전 총리는 당분간 동반성장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며 초과이익공유제에 천착하리라 보인다. 정 전 총리의 애제자이자 초과이익공유제를 적극 지지하는 김상조 교수(참여연대)는 “(정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제자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라면서 “기업 내부에서 발생한 이익을 어떻게 외부 협력업체와 나누느냐는 지적들을 하는데, 우리 하도급 시스템은 내부·외부 딱 가르는 미국식이 아니라 준내부조직(Quasi-internal organization)의 특성을 가진 일본이 원류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경영은 일본식으로 하면서 교과서는 미국 거만 보냐’며 일본 교과서 가져다주고, 최중경 장관에게는 ‘수출 지상주의자가 왜 동반 성장을 현실 과제로 내세운 지경부 장관직을 맡고 있느냐’고 쏘아주고, 홍준표 의원에게는 ‘뭐 알고나 성과공유제와 이익공유제를 얘기하시라’고 쏘아붙이기라도 한 다음에야 (동반성장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든 말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깝게는 4·27 재·보선, 멀게는 내년 대선까지도 정운찬 카드는 살아 있는 셈이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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