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이렇다. 남자는 간경변증 환자이다. 도시의 화려한 밤을 음주가무로 지새우다 그리되었다. 여자는 폐병 환자이다. 시골 맑은 공기를 쐬며 걸어도 얼마 못 가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중증 폐병 환자다. 둘이 연애를 시작한다. 산골 요양원 ‘희망의 집’에서 처음 눈이 맞아 살림까지 차렸다. 산으로 들로 약초 캐러 다니는 전원생활에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느꼈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여자 덕에 건강을 되찾기 시작하던 어느 날, 서울에서 옛 친구들이 찾아와 염장을 지른다. 따분하지 않으냐고, 이제 다 낫지 않았느냐고… 결국 친구 따라 ‘강남’간 간경변증 남자는 돌아올 줄 모르고 폐병 여자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자, 일단 여기까지.

뻔한 얘기다. 너무 뻔해서 처녀 보살 부럽지 않은 예지력을 뽐내며 결말을 알아맞힐 정도다. 그러나 장르 영화에서는 뻔한 줄거리가 꼭 치명적 약점이 아니다. 잘만 쓰면 종종 놀기 좋은 멍석이 된다. ‘허진호 멜로’라고 부르는 ‘일종의’장르 영화에서는 특히 그랬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도 뻔하기로 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이야기. 그런데도 오히려 한국 영화사상 가장 새로운 멜로 영화로 평가받았다. 연출의 지독한 관찰력과 연기의 탁월한 설득력 덕분이었다. 첫사랑의 떨림 대신 ‘늦사랑’의 흔들림, 너무 빨리 와버린 사랑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주인공들 대신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랑에 발만 동동 구르다 멀어지는 남녀의 뒷모습을 포착하는 데 신인 감독 허진호는 참 샘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다른 재주는 10년이 거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샘낼만하다.

배신과 변신의 메커니즘 파고들어

〈행복〉은 분명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덜 재미있는 영화다. 어쩌면 허진호는 자신의 데뷔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죽을 때까지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영화는 관객에게 마치 첫사랑과 같아서 제아무리 기를 써도 그 특별함을 대신할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명작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행복〉은 일편단심 멜로에서 변심 멜로로, 허진호 멜로의 달라진 구질을 확인하는 기쁨을 준다. 홀로 가슴 아파하는 사랑을 위로하기보다 다른 사람 가슴 아프게 하는 배신과 변심의 메커니즘을 더 지독하게 파고드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허진호의 느릿하던 직구가 점점 쉽게 쳐내기 힘든 변화구로 다듬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행복〉은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유지태에게 “사랑이 이렇게 변한다”라고 소리치는 황정민의 타락을 보여주는 셈이다. 사랑은 행복의 시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행복은 사랑의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누구는 사랑해서 불행해지고 누구는 행복해서 이별을 택하는 부조리한 연애가 어쩌면 우리가 겪는 삶의 진실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영화.

결국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희망의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를 보며 관객 역시 자신도 돌아가고 싶은 그 어딘가, 그 어떤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행복〉. 이 가을, 어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면 그건 전어 때문이 아니라 아마 이 영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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