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두 명을 일본에 보내놓고 일주일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한밤중에도 몇 번씩 일어나 시시각각 악화되는 원전 현황을 체크하곤 했다. 재난 발생지는 기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당연히 달려가야 할 취재 현장이다. 그러나 방사능 피해 우려가 있는 지진 현장이라면 상황이 또 달랐다. 이라크 전쟁, 이란 지진, 타이 유혈 사태 등을 취재하며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베테랑 취재기자 신호철도 이번에는 긴장한 기색이었다. 해외 재난 현장을 처음 가보는 사진기자 조남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장으로 떠나는 기자라면 방탄복이라도 챙기련만, 방사능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불안은 그간의 경험 때문에 더했다.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격납용기가 있어서 안전하다→격납용기가 파손돼도 방사능 누출은 없다→방사능이 누출돼도 인체에는 영향이 없다”라고 계속 말을 바꿨다. 원전 사고는 늘 그런 식이었다. 

1970년대 원전 전문가들은 “원자로에 거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양키스타디움(뉴욕)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보다 낮다”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웬걸, 10년 단위로 스리마일(1979년)이 터지고 체르노빌(1986년)이 터졌다. 확률이 맞았더라면 양키스타디움이 쑥대밭이 될 뻔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원전 사고 정보를 제때에 제대로 공개한 나라는 거의 없다. 의식적인 정보 통제 때문만은 아니다. 원전 사고는 심지어 정부조차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원전 확대에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가 한사코 정보를 은폐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현지에 도착한 기자들이 보내온 1신은 “사람들이 의외로 침착하다”라는 것이었다. 방사능 공포로 인해 사재기가 일어나고 해외 탈출 러시가 잇따르고 있다는 외신 보도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놀랍도록 의연하더라는 것이다. 그이들에게 경의와 위로를 표한다. 목숨을 걸고 원전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던 ‘최후의 결사대’ 또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위기와 고난 앞에서 이들이 보여준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중국까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우리는 안전하다”라며 미동도 않는 정부야 태생이 그렇다 치고, ‘원전 올인’ 정책을 욕하면서 전기 덜 쓸 생각은 추호도 안 하는 나 자신부터 돌아본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감수해야 할, 그리고 미래권력에 엄중히 요구해야 할 ‘불편한 선택’의 출발점이 될 것이므로.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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