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시민혁명이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시민혁명의 도미노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까지 왔다. 다음은 어느 나라일까. 예멘,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거론된다. 예멘·바레인만 해도 서구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르다. 이 나라에서 정변이 일어나면 중동과 세계 질서 전반에 심대한 파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변’은 세계경제에 패닉을 부를 수 있다. 사우디는 OPEC 최대 산유국으로 현재 일산(日産) 900만 배럴과 비축 여유분 300만 배럴을 합치면 1200만 배럴을 생산하는 나라다. 이는 전 세계 일산 원유 거래량 4000만 배럴의 4분의 1을 초과하는 물량이다. 사우디에 정변이 일어나 원유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세계경제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 같다. 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이다. 특히 전 세계 무슬림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의 수장 국가이다. 사우디에 정변이 일어나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시민혁명은 여타 이슬람권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다. 그리고 수니 사우디, 시아 이란 주도 아래 이슬람권의 내적 단결이 한층 강화되면서 이슬람권이 가공할 만한 문명세력권으로 재편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 질서의 지형 변화를 의미한다.

사우디 정변은 중동 지역 질서의 개편에도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비교적 온건한 대(對)이스라엘 정책을 전개하면서, 요르단·쿠웨이트·모로코·카타르·바레인 등 여타 역내 보수 왕정과 더불어 친미 블록을 형성해왔다. 사우디의 정치적 변화는 이러한 친미 블록의 균열 내지는 종언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 사우디 정변은 가능한가? 사우디는 현재 3중의 대내적 위협 구조에 직면해 있다. 최대 위협은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온다. 사우디는 원래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라 할 수 있는 와하비즘을 국정의 기초로 표방해왔다. 그러나 과격파 이슬람 저항 세력은 사우디 왕정이 이러한 국정 기조를 저버리고 압제와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악한 반이슬람 정권으로 전락했다고 규탄하며 정치적 변화를 모색해왔다. 시아파 세력의 정치적 도전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사우디 정부의 종파적 차별에 불만을 표하면서 지속적으로 반정부 운동을 벌여왔다.

마지막으로 구조적 위협이다. 사우디 전체 인구의 70%는 29세 미만 청소년층이다. 여기에 서구식 교육을 받은 신중산층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 모두 빈부 격차, 정치적 자유의 결여, 청년 실업, 그리고 여성 차별 등 시대에 뒤떨어지는 경직된 보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왕자 1만명이 각계각층과 연계망 밀도 있게 구축

그러나 이 같은 위협에도 사우디 왕정이 그리 손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첫째, 사우디의 지리적 구조가 왕정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우디는 크게 서부의 헤자즈, 중부의 네지드, 동부의 알하사, 그리고 남부의 아시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어떠한 사회 세력도 이 네 지역을 동시에 거머쥘 수는 없어 보인다. 둘째, 과격파 이슬람 세력, 현대화를 표방하는 청년층과 신중산층, 그리고 종파가 다른 시아파 세력 간에 통일된 연합 세력을 구축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셋째, 사우디 지배 세력의 응집력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 비교할 바 아니다. 사우디의 왕자 수는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놀라울 정도의 내적 단합을 보여왔다. 더구나 이들은 사우디 각계각층과 할라카(연고주의) 정치를 통해 공식·비공식 연계망을 밀도 있게 구축해왔다. 넷째, 군부의 안정적 관리다. 국내 소요 및 국경 경비를 전담하고 있는 국경수비대는 압달라 국왕의 사병(私兵)과 다를 바 없으며, 정규군 역시 술탄 왕세자 겸 국방장관이 지난 40년 넘게 개인적으로 일구어왔다. 마지막으로 사우디는 튀니지·이집트와 달리 국가재정이 탄탄하다. 시민들의 불만을 재정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

따라서 재스민 혁명이 사우디에서 재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전향적 개혁 없이는 사우디 역시 시민혁명의 도미노 대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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