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 오전 8시, 서울 여의도 MBC 사옥 1층 로비. 외부 촬영과 편집으로 출근시간이 들쑥날쑥한 MBC 시사교양국 프로듀서들이 이른 단체 출근을 했다. 두 줄로 늘어선 시사교양국 PD 21명은 ‘무릎 기도 막아놓고 MB한테 무릎 꿇나’ ‘PD수첩 이제 보니 국장수첩’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PD수첩〉 인사와 ‘MB 무릎 기도’ 취재를 막은 데 대한 항의였다. 아침 방송 프로그램으로 ‘쫓겨난’ 최승호 PD도 이날 합류했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던 최 PD가 동요한 건 딱 한 번이었다. 8시41분, 김재철 MBC 사장이 로비 입구에 들어서자 최 PD의 고개가 김 사장 쪽을 향했다. 정작 김 사장은 PD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쳤다.
 

ⓒ시사IN 윤무영

2월23일, 김재철 사장이 연임되었다. 임기는 2014년까지 3년. 그의 연임으로 MBC에는 또다시 파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연임 체제를 이끌 김 사장의 첫 인사가 불씨가 되었다. 김 사장은 연임 일성으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를 거쳐 임원진 인사를 단행했다. 안광한 편성본부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보도국을 이끌 신임 보도본부장에는 전영배 기획조정실장이, 차경호 보도본부장은 기획조정본부장, 백종문 편성국장은 편성제작본부장, 고민철 경영지원국장은 경영지원본부장에 임명되었다.

신경민 앵커 교체한 인물이 보도본부장 영전

노조는 이번 인사를 ‘막장 인사’라 비판했다. 문제 인물들의 컴백과 중용 때문이다. 안광한 부사장은 편성본부장 시절 ‘〈후플러스〉와 〈W〉 폐지를 밀어붙인 장본인’이라고 노조는 지목했다. 〈뉴스후〉 후신인 〈후플러스〉는 10% 중반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폐지되었다. 외신 베끼기 관행에서 벗어나 국제 현장을 누빈 〈W〉도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사라졌다.

전영배 보도본부장의 컴백 역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 본부장은 보도국장 재직 시절, 클로징 멘트로 이명박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신경민 앵커를 교체한 장본인이다. 당시 기자들은 신 앵커 교체를 비판하며 일주일 이상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전 본부장은 취임 한 달 만에 보도국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영전해 보도본부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복귀가 알려지자 MBC기자회는 기수별 대표회의를 가진 뒤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앵커 교체를 주도하고, 전화 한 통으로 전날의 톱 기사를 아침 뉴스에서 삭제시켜 불신임 대상이 되었던 국장이 보도본부장으로 복귀했다”라며 비판 성명서를 냈다.
 

ⓒ시사IN 윤무영윤길용 시사교양국장(위 왼쪽)이 인사 조치에 항의하는 최승호 PD(가운데)를 외면하며 출근하고 있다.

임원진에 이은 후임 인사 과정에서도 불만이 폭발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대량 인사 조처 때문이다.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을 제작한 〈PD수첩〉의 간판 최승호 PD를 아침 프로그램으로 뺐다. 최 PD뿐만 아니라 11명 가운데 6명을 대거 교체했다. 대신 〈PD수첩〉을 희망하지 않던 PD들을 투입했다. 시사교양국 소속의 한 중견 PD는 “〈PD수첩〉의 시니어 그룹인 90년 사번(1990년 입사자) 이상은 다른 팀으로 뺐다. 정부에 비판적인 〈PD수첩〉을 없앨 수 없으니 프로그램을 망가뜨리겠다는 인사이다”라고 말했다.

촛불 사태 배후로 지목돼 제작진이 검찰에 기소까지 당한 〈PD수첩〉 힘 빼기 의도는 여러 차례 감지되었다. 대규모 솎아내기 인사에 앞서 김재철 사장은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관했다. 연임 직후 있은 조직 개편을 통해서였다. 원래 시사교양국은 ‘드라마국’ ‘예능국’과 함께 제작본부 소속이었다. 그런데 제작본부를 ‘드라마예능본부’로 축소시키고 시사교양국만 따로 떼어 편성제작본부로 옮긴 것이다. 그동안 MBC는 제작과 편성 분리 원칙에 따라 제작 부서를 편성본부로 옮긴 적이 없었다. 또 예능국과 시사교양국 프로그램 개발부서를 모아 부사장 직속으로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신설하기도 했다. 일련의 흐름에 대해 시사교양국 PD들은 “〈PD수첩〉을 간섭이 용이한 편성본부로 옮겨 경영진이 직할 통치하려는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크리에이티브 센터가 ‘오더 프로그램’을 남발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조직 개편 뒤 곧바로 〈PD수첩〉 인사가 단행된 것이다. 노조와 시사교양국 PD들은 조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과정이 의도적인 ‘〈PD수첩〉 죽이기’라고 규정했다. 특히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이 김재철 사장의 고등학교·대학교 동문이라는 점이 이런 의혹을 더 부채질했다. 이현숙 시사교양국 부국장은 “MBC의 불공정 방송을 사과드린다”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선임자 노조 출신이기도 하다.
 

ⓒ시사IN 윤무영〈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 손석희 교수.

조직과 인사 개편 뒤 이뤄진 3월8일 〈PD수첩〉 방송에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생생 이슈’ 코너에 방송될 예정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조찬기도회 무릎 기도’ 취재가 윤길용 국장의 지시로 중단되었다. 윤 국장은 “이 아이템을 다루면 MB 깎아내리기로 볼 수 있고, 제작 기간이 짧은데 인터뷰를 통해 반론을 들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라며 중단시켰다. 무릎 기도 건을 취재하다가 다른 아이템 제작을 거부한 전성관 PD는 3월9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PD수첩〉의 수난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재철 사장은 지난해 2월 방문진의 사장 공모 면접 때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과 관련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PD수첩〉 4대강 관련 취재 프로그램 불방 사태 때도 김 사장은 불편한 시선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승호 PD가 제작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은 방송 4시간 전에 불방이 결정되었다. 국토해양부 측이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었지만 김 사장 지시로 전파를 타지 못했다. 김 사장이 방송 전에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은 불방 한 주 뒤 본부장급이 먼저 해당 프로그램을 보고, 방송 직전인 밤 9시 김재철 사장이 직접 프로그램을 본 뒤에야 방영될 수 있었다. 본부장과 사장이 방송 전에 미리 프로그램을 봤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MBC 단체협약에 따르면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국장 책임제’가 이뤄지고 있다. 노조와 시사교양국 PD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경영진 사전 시사는 사전 검열이라고 반발했다.
 

ⓒ시사IN 조남진〈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씨.

이 사건이 있고 3개월 뒤 김재철 사장은 단체협상 과정에서 ‘본부장 책임제’를 들고 나왔다. 현행 단체협약에는 ‘편성 보도 제작상의 실무 책임과 권한은 국·실장에게 있으며 각사 경영진은 편성 보도 제작상의 모든 실무와 관련해 국·실장의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며 국장 책임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국장 책임제는 MBC의 언론 민주화 과정에서 생긴 대표 조항이다. 방문진이 임명한 본부장급 등 경영진으로부터 편집과 보도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1988년 공정방송 기치를 내걸고 이끈 노조의 첫 단협안의 핵심이 바로 국장 책임제였다. 그런데 김재철 사장이 20년간 유지되어온 국장 책임제를 허물고 본부장 책임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노사는 밀고 당기기 끝에 ‘본부장 총괄 책임제’와 ‘국장 실무 책임제’를 병행하되, 본부장 중간평가제 도입이라는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선에서 접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공정방송협의회 운영 규정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다 김 사장이 연임을 앞둔 지난 1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한 MBC 기자는 “방문진 여당 위원에게 약속한 단협 개정안이 의도한 대로 이뤄지지 않자 김 사장이 연임을 위한 노림수로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촛불시위 당시 보도국장도 교체

〈PD수첩〉 인사에 가리긴 했지만 이번 인사로 그나마 입바른 소리를 내던 인사들도 마이크를 빼앗겼다. 아침 8시 라디오 프로그램인 〈뉴스의 광장〉을 진행하던 최명길 앵커가 교체되었다. 저녁 7시 〈뉴스 포커스〉를 진행한 김성수 국장 역시 바뀌었다. 김 국장은 지난 대선과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보도국장을 지냈다. 보도국장 재임 시절 후배 기자들의 신망을 받았다. 촛불시위 등을 집중 보도한 전력 탓인지 그 뒤 한직을 맴돌았다.

MBC 안팎에서는 김재철 사장 체제의 다음 타깃은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신임 라디오본부장 때문이다. 선임자 노조 출신인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이 임명되었다. 이 본부장 인사를 두고 ‘역주행 인사’라는 뒷말이 돌고 있다. 한 라디오 PD는 “김재철 사장 인사라는 게, 비유하자면 앉아서 도시락 먹고 있는데 뭔가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서 ‘어 저게 뭐지’ 생각해야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본부장 임명 때도 라디오 PD들은 예상 밖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이 본부장은 1981년에 입사한 81사번이다. 전임 본부장이 82사번인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한 라디오 PD는 “보통 관행처럼 후임자는 전임 본부장에 비해 후배 기수가 임명되었는데, 역주행 임명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김재철 사장과 인연이 깊은 이 본부장이 두 프로그램에 대해 손을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한 라디오 PD는 “김미화씨나 손석희씨를 바로 하차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3월에 PD 인사가 있는데, 담당 PD를 바꿔서 통제하려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MBC 노조는 3월3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앞서 지난달 중앙노동위원회는 임단협 파기와 관련해 MBC 노동쟁의에 대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MBC 노조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합법적인 파업의 길을 마련한 것이다. 노조는 회사가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3월 중 파업에 나설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다시 MBC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기자명 고제규·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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