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신광씨(34)는 3월11일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을 겪었다. 일본 북부 아오모리 현 하치노헤 시 바닷가 근처 자택에 있던 그는 오후 4시경 집 밖에서 “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린가 해서 창밖을 내다보던 신씨는 아연실색했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쓰나미가 저 먼 바다에서 밀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황급히 내륙 쪽으로 도망쳤다. 짐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집이 물에 잠기고 있었다. 3월11일 자정 현재 하치노헤 시는 정전 상태이다. 신씨 가족은 외부와 전화 통화를 할 수도 없다.

위 이야기는 신광씨가 지인에게 휴대전화 메일로 보낸 증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하치노헤 시는 지진 진앙으로부터 250km 떨어진 곳이다. 그렇게 먼 곳에도 쓰나미가 덮칠 지경이니, 진원지 100km 앞에 있던 센다이 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AP Photo쓰나미가 센다이 지역 해변 인근 마을을 덮쳐 집이 물에 잠기고 화재가 났다.

 


영화보다 끔찍한 참상

일본에 사는 사람은 워낙 지진을 많이 겪기에 웬만한 지진에는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규모 8.8. 일본 역사상 최대 크기의 지진이다. 도쿄에 사는 월간지 기자 김향청씨(34)는 “지진이

 

ⓒAP Photo도쿄만 근처 유리카모메 노선 전철이 멈추자 승객들이 고가 철로를 따라 다음 역까지 걸어가고 있다.

잦은 센다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이렇게 무서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7층에 있는 사무실이 휘청휘청 흔들려 책상 밑으로 숨었다고 했다. 오늘이 월간지 마감 날이었지만 회사는 직원을 퇴근시켰다. 도쿄 시내 지하철이 마비되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정류장은 만원이었다. 동료 가운데는 지하철에 몇 분간 갇힌 사람도 있었다. 김씨는 근처 지인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사고 발생 5일째인 3월15일 현재 일본 정부는 아직 전체 인명 피해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공식집계로만 보면 사망자가 2천명 가까이 되지만 실종자와 연락두절인 사람까지 합하면 수만 명에 이른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이 재난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그야말로 시계제로다.   

이런 해외 지진 사고 뉴스 뒤에는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라는 부속 뉴스가 으레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만, 지난 200년 동안 지진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1810년 함경도 지방에서 지진이 나서 사람이 압사(깔려죽음)했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마지막 지진 사망 사고였다. 아직 우리에게는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물론 요즘 뉴스를 보는 사람은 영화 같은 얘기가, 종종, 얼마나 쉽게 현실로 등장하는지 잘 알고 있다.

 

ⓒAP Photo센다이 공항 활주로에 있던 비행기가 쓰나미에 둥둥 떠밀려온 자동차와 뒤섞여 있다.
ⓒAP Photo이치하라의 정유시설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일본 정부는 진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