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이라는 게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 고통을 이렇게 토로했다. “자식을 앞세우고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전쟁 영웅 이순신 장군도 다를 바 없었다. “하늘이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못된 것이다.…내가 죄를 지어서 그 화가 네 몸에까지 미친 것이냐?” 전 세계를 뒤흔든 서양의 천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은 휑하고 황폐해졌다. 아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이 집의 생명이고 영혼이었다.” “내 아이의 죽음은 나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나는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예리하게 아픔을 느낀다. 내 불쌍한 아내는 완전히 무너졌다.”(카를 마르크스)

여기 또 하나의 참척이 있다. 지난 월요일 김명복씨는 아이를 냉동고에 둔 채 49재를 맞았다. 잊어야만 할 고통을 외려 부여안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모질게 만들었는가.

삼성전자 근로자 2조 2교대에 14~16시간씩 근무

키가 186㎝나 되는 스물여섯의 고 김주현씨는 1월11일 6시44분 흑빛 새벽에 자살했다. 그가 근무하던 삼성전자 탕정기숙사 13층에서 떨어졌다. 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2개월의 병가 뒤 복귀한 바로 그날이었다. 주치의는 5개월의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회사는 병가 휴직이 최대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새벽 6시14분, 창문턱에 걸터앉아 있던 그를 발견한 안전요원은 그저 방에 데려다주었을 뿐, 1분 만에 바로 철수했다.

바로 일주일여 전인 1월3일에도 투신자살자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탕정공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가 줄을 이었다. 이들은 ‘12시간 근무=기본’이라고 노트에 썼다. ‘1년은 나 죽었다’라는 메모도 있다. 사실상 2조 2교대 아래서 14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설비 엔지니어가 없어서 퇴근할 수도 없었고 밥도 제때 못 먹었다. 자다가도 부르면 나가야 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나 북한의 어느 공장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매출 153조7600억원, 영업이익 17조2800억원에 빛나는 세계적 기업 삼성 이야기다. 아마도 죽어간 이들이 합격 통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을, 바로 그 기업 이야기다.

삼성 계열사에서 백혈병 등 희귀병 사망자 46명 발생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은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휴먼 삼성’은 김명복씨를 근처 모텔로 데려가서 “1년 연봉 2760만원과 퇴직금, 그리고 위로금을 주겠다”라고 했다. 함께 울고 웃었을 김주현의 동료들은 인솔자를 따라 조를 짜서 조문을 왔고 금세 돌아갔다. 경찰은 사망한 지 5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내세우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 위반 내용을 조사만 하고 있다. 취업규칙이 영업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을 정도이니 ‘글로벌 삼성’에 노조가 없는 건 불문가지다.

‘초일류 삼성’은 참척을 양산했다. 클린룸에서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다루던 김주현씨는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삼성전자·삼성LCD·삼성전기에 근무하던 젊은이 중 46명이 백혈병 등 암이나 다른 희귀병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이나 유해 요인도 ‘기업의 영업 비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니 역학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모든 산재 신청을 기각했고, 가족들이 억울해서 제기한 행정소송에 피고 보조 참가인으로 삼성 쪽 변호사들을 불렀다.

김명복씨의 요구는 단 하나다. “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라”는 것이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이 눈곱만큼의 예의도 없다는 말인가.

역시 참척의 고통을 당한 에릭 클랩턴은 이렇게 흐느꼈다.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니? 언제나처럼 변함없을 거니?”(‘천국의 눈물’) 우리 아이들이 천국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참척이 계속되도록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기자명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