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이라는 형식은 새로운 뮤지션이나 배우·댄서·모델 등에 언제나 목이 마른 쇼 비즈니스계와 예술계의 오래된 선발 방식이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발탁된 이들은 ‘뉴 페이스’로 소개됨으로써 공연 자체의 흥행을 돕기도 하고, 오래된 레퍼토리를 신선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쇼 비즈니스계 진출을 꿈꾸는 무명 예술가에게는 단번에 스타가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오디션은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개인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발현하게 하는 형식이다. 홀로 방에 앉아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개인의 고독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펼쳐 보여야만 하는 개방된 퍼포먼스다.

ⓒ뉴시스목표를 정해놓고 승자를 가리는 〈무한도전〉(위)도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다.

오디션의 외적 형식은 경쟁·능력· 권위를 핵심 요소로 삼는다. 꿈을 가진 이는 누구라도 오디션을 볼 수 있지만, 주인공 자리는 언제나 하나다. 공정하게 진행되는 오디션에서라면 학벌·핏줄·재산 등은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오직 개인이 가진 능력만이 중요하다. 오디션은 응모자와 평가자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되며, 평가자는 자신이 쌓은 권위를 이용해 응모자들을 선택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

이러한 형식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그것은 이미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를 지배해온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 형식의 변주일 뿐이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는 경쟁과 탈락, 승리와 보상, 실패와 처벌, 생존과 죽음 따위 요소를 핵심에 놓고 이를 즐거움과 감동으로 포장하는 대중문화 포맷이다.

가령 〈무한도전〉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출연자들이 경쟁한 후 승자를 가리는 서사를 자주 사용하고, 〈남자의 자격〉 역시 매주 새로운 미션의 수행 여부를 통해 상벌을 가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런닝맨〉 역시 최후 승자를 가리는 경쟁 구도를 깔고 간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변주로서 오디션은 연예인 출연자를 일반인으로 바꿈으로써 신선함과 리얼함을 강조하고, 엄청난 보상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 요소를 더하고, 경쟁의 치열함을 부각함으로써 ‘서바이벌’이라는 모티브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연예인 서바이벌 게임이 전 국민 대상 서바이벌 게임으로 확장된 버전이다.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가 지배적 대중문화 형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삶이 경쟁과 상벌 체계로 구조화되어 있고, 성공한 이와 실패한 이의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로까지 벌어지는 사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서사 구조는 너무나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전면화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정치·사회·문화의 영역, 나아가 인간까지도 기업의 경제 논리로 설명하고 작동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1인 기업’ 관점에서 인생을 ‘경영’하는 것이라면, 성공과 실패의 책임도 전부 자신의 것이지 사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오디션이라는 이름의 모든 경쟁 역시 ‘나’라는 1인 기업의 경영 성공을 위한 효율적 베팅임에 분명하다.

ⓒMnet 제공대중의 열망을 소수의 권위자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반정치적인 면이 있다.

물론 경쟁·승패·상벌·생존이라는 요소는 언제나 꿈, 스타, 청춘, 도전 따위 추상적인 말로 대체된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노량진 고시생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3일〉에서 이들의 ‘청춘’과 ‘꿈’을 ‘응원’하듯 말이다. 20대 청년들이 인생을 걸고 몇 년씩 하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이 처참한 상황에 대한 비판적 분석 대신 이 다큐멘터리는 살인적 경쟁을 낭만화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인생을 거는 경쟁을 감동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켜, 궁극적으로는 ‘경쟁’이라는 구조를 삶의 ‘상식’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 기제로서 기능한다.

모두에게 기회를 열고, 능력 있는 자를 공정하게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대중의 정치적 열망이 언제나 ‘선거’라는 이름의 또 다른 오디션에 포섭되는 일은 그 예다. 오히려 진정한 정치란 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열망이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뽑는 하나의 ‘스타’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치열하고 급진적인 과정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디션 형식은 진정한 의미의 급진적 정치의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시키는 반(反)정치적 성격을 띤다. 현실의 민주주의가 결국 대통령으로 환원되듯, 오디션은 결국 평가자의 권위를 최종 확인하는 보수적인 장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어떤 ‘슈퍼스타’ 한 명, 어떤 스타의 ‘위대한 탄생’이 다른 모든 응시자들의 절망을 가리면서 경쟁을 자연화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요청하는 대중문화 형식의 궁극이다. 이것은 이미 재생산의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최후의 판타지이자,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소수의 권위자에 의한 심판에 맡겨버리는 반정치적 문화 형식이기도 하다. 나눔과 연대와 창조가 아니라 경쟁과 상벌과 권위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린 오늘 한국의 사회적 현실이 바로 이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을 즐기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되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기존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가 이미 꿈틀거리고 있음을 비로소 느끼게 될 것이다.

기자명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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