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중앙정보부는 북한 홍보 영화를 입수해 박정희 대통령과 각료들을 대상으로 상영한다. 북의 발전된 텔레비전 생산 라인, 선박 건조 공정, 섬유·전자·화학 공장…. 오원철 당시 대통령 경제비서관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 발전상은… 충격적이었고… 남한보다 앞서 있었다.” 상영 후 박정희 앞의 재떨이는 그가 피우다 만 담배꽁초로 수북했다.

1970년대, 사고의 중심에 ‘애국’ 자리잡아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박정희의 경제성장 드라이브는 광포한 국가주의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의 국가는 ‘노골적인 곤봉’이었다.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고문과 투옥·조작, 심지어 법살(法殺)로 압살했다.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었고, 저항하는 언론인은 ‘남산’(중앙정보부)으로 끌려가 칠성대에 묶였다. 박정희의 국가는 경제까지 ‘곤봉’으로 조직했다.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전략 산업(기업)을 결정하고 이에 자금을 집중했다. 엄격한 수입 통제로 국내 산업(기업)의 성장 기반을 만들었다. 국가는 외화를 거둬들여 다시 해외 선진 기술과 설비 도입에 투자했고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로 나타났다.
 

ⓒ고명진1987년 6월 시민혁명 당시 거리의 인파는 ‘애국 시민’으로 불렸다. 이들은 국가의 상징(태극기)을 흔들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처럼 박정희의 국가는 ‘절대자’였고, ‘개인’들은 국가의 존속과 번영에 필요한 단위였을 뿐이다. 그러나 억압이 있는 곳에는 저항의 씨앗이 자라는 법. 경제 위기와 정치적 격변을 거친 1980년대에 이르러 국가주의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로 치솟는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보수 야당과 노동·학생 운동권의 급진 세력들이 저항 블록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비전 역시 ‘국가를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급진 세력마저 자기 조직을 애국학생연합·구국학생연합 등으로 명명할 만큼 국가를 사고의 중심에 놓고 있었다. 이들은 1987년 6월 시민혁명 당시 거리의 인파를 ‘애국 시민’이라고 불렀다. 애국 시민들은 국가의 상징(태극기)을 흔들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애국’이 ‘구리고’ ‘쿨’하지 않은 단어로 간주된 것은 사실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1990년대 들어 국가의 지위는 급전직하한다. 민주화, 사회주의권 몰락, 국가 규제 약화(외환 거래의 부분 자유화 등) 같은 매머드급 사건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진보·보수 성향과 관계없이 ‘개인’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우파 버전은 이기심과 자유로운 영업의 자유, 즉 시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그 유명한 발언 ‘기업은 2류, 정치는 3류’가 화제로 떠오른 것도 이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진적인 기업·노동시장 구조조정과 개방이 추진되면서 시장은 더욱 강력해진다. 한국은 서구와 달리 ‘전통적 복지국가’를 경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에 대한 시장 우위’ 시대를 맞은 것이다.

국가는 필요악 혹은 절대악

‘개인’의 좌파 버전은 ‘시민사회’에 대한 천착이다. 즉, 국가 개입 없이 개인들끼리 자율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간. 국가는 아무리 좋은 상태일지라도 ‘잠재적 억압자’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에 ‘국가주의 비판’을 선도적으로 감행한 지식인들은 지금도 한국 지식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 권혁범 대전대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등이다. 이들의 비판 대상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로 대표되는 집단주의 그 자체다. 국가를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박노자 교수에게 국가주의는 ‘우리’라는 환상의 조성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말살하고 ‘계급 모순’을 은폐하는 기제다. 권혁범 교수는 〈국민으로부터의 탈퇴〉(2004년)에서 “국가주의적 집단주의 문화 안에서 ‘개인’은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고 ‘이기심’과 동의어로 인식된다”라고 주장한다. 김규항씨는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파시즘의 조짐을 발견한다. “감히 말하건대, 붉은 악마 현상에는 넘실거리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 체제에 대한 순응과 정치적 무관심과 인간의 주체성을 죽이는 군중심리가 있을 뿐이다. 붉은 악마 현상은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인 현상이다.”
 

박노자(왼쪽), 김규항(가운데), 이진경 등은 2000년대 ‘국가주의 비판’ 담론에서 선구적 구실을 했다.

이진경 교수는 2008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나는 국가가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국가에 많이 매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국가와 개인은 상충 관계라는 이야기다. 1980년대의 그는 ‘내외 독점자본의 국유화(!)’를 정치적 목표로 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주창자였다.

이 같은 국가주의 비판은 일군의 소장학자들을 통해서 좀 더 명확한 형태, 즉 ‘반국가주의’로까지 나아간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2003년 나온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둘러싼 논쟁(‘실미도는 국가주의를 공격하는 영화’란 평가가 대세였다.)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실미도는 강우석 감독을 비롯해 극중 인물 중 어느 누구도 국가주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중앙정보부가 국가인 기형적인 국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영화다.”(〈씨네21〉) ‘제대로 된 국가’ 따위는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다.

하승우 경희대 NGO대학원 겸임교수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실천문학〉에 발표한 글 ‘국가 없는 삶은 어떨까?’에서 “왜 우리는 끊임없이 국가에 요구하고 국가로부터 어떤 확답을 받아내려 할까?”라고 묻는다. 국가와 관계없는 자율적 삶에 대한 희구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없으면 무질서와 혼란이 우리 삶을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은 ‘학습된 상식일 뿐’이며 국가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더 평화로운 삶을 누렸다”. 이 평화로운 삶이 영위되는 공간은 ‘서로 품앗이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소규모 공동체. 권혁범 교수가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에서 대안으로 내놓는 ‘친생태적 풀뿌리 마을 공동체’와 비슷한 발상이다.

하승우 교수와 권혁범 교수의 대안은 국가와 시장 모두에 대한 총체적·궁극적 저항이다. 예컨대 품앗이는 이윤을 목표로 자신의 노동과 생산품을 남에게 제공하는 ‘시장 교환’이 아니라 ‘대가 없는 선물’에 가깝다. 이런 선물을 받은 이웃은 다시 선물로 보답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일상화되면서 ‘이윤과 관계없는’ 생산-분배-소비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시장으로부터의 탈주).

그런데 품앗이는 모든 구성원이 친숙감을 느낄 정도의 ‘인격적 관계망’ 속에서, 즉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경제 원리다. 각각 대구와 서울에 사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개인’ 간에 일상적인 품앗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품앗이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은 국가가 아니라, 인구 수천명 단위의 마을 공동체인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라면 이런 공동체 수만 개가 자급자족하며 자기 공동체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건만 다른 공동체와 호혜적으로 나눠먹는 네트워크를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인구의 공동체라면 규범(국가)도 적을 것이고,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 역시 획기적으로 신장될 수 있다(국가로부터의 탈주).

이런 반국가주의 대안들은 현재의 지구적 생태 위기, 전쟁, 금융 공황 등을 감안하면, 윤리적 차원에서 올바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적 규범의 체계’(국가)가 없어도 개인(과 공동체)들이 서로 싸우기보다 자율적으로 연대하며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가정할 때에만 실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경우, 모든 개인이 다른 모든 개인들에 대한 ‘늑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장하준, 국가 할 일 많다며 복지국가 제안

최근 ‘제대로 된 국가’를 요구하는 지식인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박명림 교수(연세대·정치학)는 최근 발간한 〈다음 국가를 말하다〉에서 ‘국가 공동체 전체’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은 “거의 분리 불가능하다”라며 ‘좋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소망을 밝힌다. 정치인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시민씨는 2007년의 〈대한민국 개조론〉에 이어 다시 ‘국가론’을 주제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20~27쪽 좌담 참조).
 

ⓒ연합뉴스군부독재 시대에는 국가가 ‘절대자’였다. 위는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환영 카퍼레이드.

‘복지국가’를 슬로건으로 내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야권의 정책통으로 각광을 받는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 대학)는 “아직은 국가가 할 일이 너무 많다”라며 복지국가를 제안한다. 그동안 지식인들의 맹종과 배제 사이를 오갔던 국가가 드디어 본격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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