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씨가 이끄는 ‘백만민란운동’의 발기인 가운데 나와 동명이인이 끼여 있어서 한동안 사람들의 오해를 산 적이 있다. 물론 나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범민주 세력의 통합 내지 연합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권력 교체를 최고의 선(善)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권 언저리 사람들이 알면서도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백만민란운동을 포함한 이런저런 통합-연합 운동 한구석에 영남 패권주의가 스며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아직도 계급 투표보다 지역 투표가 힘을 발휘하는 한국 풍토에서 이른바 ‘영남 민주화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설령 정권 교체를 못하더라도, 민주 세력이라는 연미복을 걸치고 영남 패권주의를 휘두르는 세력과는 민주당이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 세력 안의 영남 패권주의자들은 흔히 ‘친노’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친노’는 유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인격화돼 있는 것 같다. 유시민씨는 명민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가 영남 패권주의자의 일원인 것도 사실이다.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 전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분당을 전후해 그가 노골적으로 실천한 영남 유권자 옹호와 에둘러 실천한 호남 유권자 비하는 나를 거의 패닉 상태로 몰았다. 전두환은 나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나쁜 것은 여전히 전두환을 지지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다수의 영남 유권자들이다. 유시민씨는 그들을 민주 세력의 일원으로 포섭하려 했던 것 같다. 그것이 진정이었다면 그는 어리석었고, 단기적 정치 술수였다면 그는 비윤리적이었다.

내 관찰이 틀렸을 수도 있겠으나, 유시민씨가 있는 곳에는 불화가 있다. 그는 개혁당을 허공으로 날려버렸고, 민주당을 두 동강 냈고, 열린우리당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항상 정치적 이득을 취했다. 국민참여당의 앞날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으나, 여생이 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민주당 분당에는 그 시절 ‘천신정’이라고 불리던, 당권에 집착했던 호남 출신의 얄팍한 정치인들이 유시민씨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노무현은 묵인했다.

나는 지금 민주당 분당과 관련해 노무현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그립다. 나는 16대 대통령 후보 경선 이전부터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많이 낙망했음에도 여전히 비판적 지지자였다. 개인적 매력에서 우리는 노무현을 앞서는 대통령을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 특히 그 후임자의 엽기적 행태가 노무현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유시민씨를 떠받치고 있는 패권주의가 무서운가?

그러나 우리는 정치라는 ‘싸움’을 관찰할 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이명박 정권이지만, 그것은 신구 권력의 다툼 속에서 일어난 불상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구 권력 사이의 ‘주고받기(묵계)’가 어느 순간 파열을 맞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 파열은 구정권 청와대 자료들의 관리 문제를 놓고 생긴 갈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신구 권력의 ‘묵계’라는 말에 반발할 노무현 추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BBK 사건이 일개 특별검사의 판단으로 흐지부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은 지선(至善)한 정권이 아니었다. 그 정권은 친삼성 정권이었을 뿐만 아니라 냉혹한 정권이기도 했다. 지금 마무리되어가는 한명숙 재판은 명백히 정치 재판이다. 그런데 지금 한명숙씨가 당하고 있는 고초가 노무현 정권 시절 박지원씨나 박주선씨가 견뎌야 했던 감옥살이와 본질적으로 다른가? 민주당은 2003년 16대 국회 보궐선거 때처럼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유시민씨를 위해 자기 당 후보를 내지 않았다. 유시민씨를 떠받치고 있는 영남 패권주의가 그리도 무서운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민주당이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간 자리에서 권력을 되찾아오기 바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영남 패권주의에 굴복해야 한다면, 차라리 한나라당 정권을 견디련다. 나는 호남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따돌림당하는 지역 주민집단에 대한 옹호자를 빈정거리는 지역 패권주의자들의 언어라면, 나는 그 딱지를 명예롭게 받아들이겠다.

기자명 고종석 (저널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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