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해 9월 중앙일보가 주최한 한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당선자(왼쪽)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오른쪽).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해 6월 한 토론회에 참석해 ‘언론 매체를 차별 대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대통령으로서 친한 정도에 따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측의 공식 견해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언론에 대한 편애 또는 무시는 없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시장 시절, “모든 언론을 평등하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속내를 드러내 구설에 올랐던 장본인이다. 시 정책에 비판을 하는 언론에는 광고 배분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조선·중앙·동아에 쏟는 관심도 각별해 보인다. 대선 당시 대선미디어연대로부터 “한나라당이 아니라면 아니라는 취지에서 쓰고, 침묵하면 침묵했고, 대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기사가 사라졌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조·중·동이다. 신문·방송 겸업 허용, 신문법 폐지 같은 정책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 언론의 연일 계속되는 ‘특종 퍼레이드’에 타사 인수위 출입 기자들은 “기자단인지, 특보단인지 구분이 안 된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이경숙 인수위원장 인선, 4강 특사단 파견, 총리 후보 압축, 신문법 폐지, 국정원 대화록 따위 굵직굵직한 특종이 모두 조·중·동에서 나왔다.

인수위 측은 이에 대해 인수위의 조직 방침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정부 부처 쪽에서 ‘자가발전’을 하거나,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치인들이 정보를 흘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보안에 구멍이 뚫리자 지난 1월8일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 최고위층까지 나서 수시로 인수위 핵심 인사들과의 ‘끈끈한 자리’를 만들고 있는 조·중·동의 광폭 행보에 과연 브레이크가 걸릴지 회의스러운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시 ‘밤의 대통령’ 꿈꾸는가

특히 대선 때 ‘이명박 당보’라는 비난과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선자를 적극 도왔던 동아일보의 전과가 눈부시다. 이경숙 인수위원장 인선부터 신문법 폐지 등 각종 정책 사안까지 조선·중앙을 따돌리고 단독 특종을 올렸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은 심지어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 후보 물망에도 올라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최근 조선·중앙이 인수위에 대해 적잖이 ‘비판의 각’을 세우는 것에는 이런 상대적 소외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동아가 단순 ‘방향 제시’ 정도에 그칠 뿐 여전히 찬양 기조 일색인 반면, 조선과 중앙은 한반도 대운하, 통신비 인하, 대북 정책, 신용불량자 사면, 국민연금 개혁, 언론 정책 등 여러 현안에서 ‘이명박 대변지 맞나?’라는 의문이 들 만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어서이다.

대표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진, 누천년을 이어온 국토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일을 마치 공깃돌 주무르듯 하겠다는 투다. 대운하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오만불손으로밖에 볼 수 없는 언사다.”(조선일보 1월 7일자 시론) “인수위의 언론대책은 ‘수박 겉핥기’로 구체성이 없을 뿐 아니라 현행 신문법의 독소 제거에도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조선일보 1월9일자 일반 기사) “이명박 시대에도 북한 당국과 친북 세력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주간조선〉 1월14일자, 김대중 고문 특별 기고) “기초연금제 신설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제도 개편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국론 분열을 조장할 소지마저 크다는 점에서 반대한다.”(중앙일보 1월8일자 사설)
 

최근 조선일보(위)는 당선자 측의 대운하 추진·대북 정책·언론 대책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계 출신의 한 참여정부 인사는 이러한 흐름을 “동아에 대한 경쟁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당선자 길들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조선·중앙, 특히 조선일보가 어떤 언론이냐. 한때 ‘킹 메이커’ ‘밤의 대통령’ ‘정부 위의 권력’으로 불렸던 언론 아니냐. 자기들도 언제든 돌아설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워낙 서로 적대감이 깊어 뜻대로 안 된 것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시금 화려했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어할 것이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2008년 신년사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두 언론 사주는 특정 정치 세력에 기대지 않는 ‘독립된 언론 권력’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기들이 가진 ‘여전히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이렇게 과시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가해진 억압과 회유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고, 우리 언론의 최고 가치인 언론 자유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정치적 부담이 없고 편향성에 시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롭습니다.”(방상훈 사장)

“중요한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정치권이나 독자들은 중앙일보를 지켜보았습니다. 중앙일보가 어떤 견해를 내느냐에 따라 여론의 흐름이 변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제 이 나라의 공공이익을 대변하는 주요 기구가 되었습니다.”(홍석현 회장)

 

"정치 권력이 언론 권력보다 강하다"

이명박 당선자 측은 ‘아직은’ 태연한 표정이다. 당선자의 한 측근은 “후보 시절과는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아직 그렇게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라며 이른바 ‘길들이기설’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드러냈다. “길들이기 같은 것이 가능한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언론사마다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다를 것이다. 우리가 자초한 것도 있고, 언론의 지적이 합리적인 부분도 있다. 특히 대운하의 경우 워낙 논쟁적인 사안 아니냐. 우리는 기사가 합당하고 책임 있는 논리를 펴고 있는지 주시하면서,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펼쳐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시사IN 안희태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맨 오른쪽)은 2008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정치적 부담이 없다”라고 말했다.

조선·중앙이 대운하의 ‘원점 재검토’ ‘신중한 추진’을 잇따라 촉구하는데도 당선자 측이 여전히 강행할 뜻을 굽히지 않는 데는 집권 초기 자신감에 더해,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문석 박사(언론학·언론개혁연대 사무총장)는 이와 관련해 “최근 미묘한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역시 더 강한 쪽은 정치권력이다. 지나치다 싶으면 당선자 쪽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양자에게는 최악의 경우이겠지만, 조·중·동의 숙원인 방송 진출을 제한한다든가, 노무현 대통령처럼 방송을 이용해 여론을 주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 방송사들이 ‘친이명박’으로 잽싸게 변신했다는 소리에 힘이 실린다. 양승동 한국PD연합회장은 한 토론회에서 “대선 전에는 그래도 본연의 구실을 한다고 생각했던 방송이 이명박 당선 이후 눈에 띄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친시장·신자유주의 등 기본 ‘코드’가 맞는 조·중·동과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겠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의존하거나, 반대로 어설프게 맞서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언론에 너무 의존하다 결국 뒤통수를 맞고 끝난 김영삼, 아부도 해보고 공격도 해봤지만 아무 실속이 없었던 김대중, 5년 내내 싸우기만 하다 볼 장 다 본 노무현의 실패를 15년 동안 지켜본 이 당선자 진영이다.

 

‘친여지’로 낙인찍히면 손해

조·중·동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세 매체는 방송 진출 등을 통해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언론 권력으로 재탄생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 사회 여론을 쥐고 흔드는 데 주로 관심이 가 있었다면, 지금은 갈수록 심화되는 신문 시장의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존의 탈출구를 열어야만 하는 시대이다. 당연히 이러한 꿈을 실현시켜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 측에 조·중·동이 전면 각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다만 조·중·동도 지난 5년 동안 ‘친여지’로 낙인찍히며 상업적으로나 신뢰성 측면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봐야 했던 한겨레·경향의 사례를 모를 리 없다. 강도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약하겠지만,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 간에 여전히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나친 정파 접근은 결국 언론의 영향력을 스스로 실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조선은 대북 문제, 중앙은 재벌 문제에 뚜렷한 색깔을 띤다. 각자 합리적 기준과 논리에 따라 새 정부에 적절한 비판의 각을 세워나가는 것이 이들 언론에 도움이 된다”라고 지적한다.

언젠가는 이 둘 사이에도 ‘거대한 균열’이 찾아오리라는 시각도 있다. 강원택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일상적인 시기에는 정치권력이 주도권을 쥐겠지만, 부패 스캔들이나 명백한 정책 실패, 레임덕이 찾아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내다본다. 결국 과거에도 그랬듯이 실정이 쌓이고 쌓여 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조·중·동은 무차별적으로 물어뜯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매우 행복한 편이다. 집권당의 대선 후보를 ‘미친개’라 불러도 조용조용 넘어가주는 언론계 친구들이 있으니까.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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