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을 이전부터 봐온 독자들은 기억하실 게다. 2년 전 ‘끊고 살기’라는 기자 체험 프로젝트를 연재한 일이 있다. 무심코 일상에서 반복해온 생활 습관, 소비 습관을 되돌아보는 기획이었다. 그때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대형마트와 페트병 생수 끊기였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가도 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사게 되는 대형마트의 요술 상술에 회의가 들던 차였다. 골목 상권이 무너진다는 소상인들의 절규도 안타까웠고, 이대로 작은 가게들이 모두 사라지면 도대체 내가 사는 동네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심란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페트병 생수 끊기도 처음에는 페트병에 든 생수가 과연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기사를 쓰면서 이게 단순히 인체에 유해하냐, 무해하냐의 문제로만 접근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물을 사서 마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 그러면서 점점 공적으로 물을 관리하지 않는 구조. 이것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재가 끝난 뒤로도 가능하면 ‘끊고 살기’를 실천하려고 했다. 대형마트 대신 동네 가게를 이용하려 했고, 집에서 배달시켜 마시던 생수도 끊었다. 대신 수돗물을 받아 원시적인 필터로 거른 뒤 끓여 마셨다. 그런데 최근 ‘끊고 살기’를 끊어야 할 위기 상황이 시시각각 나를 조여오고 있다. 짐작하시다시피 구제역 후폭풍 때문이다.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상수원이 오염될 수 있다는 소식에 이미 마음이 흔들리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엔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권역에 매몰된 가축만 145만 마리라니…. 대형마트 끊고 살기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기사 쓰던 2년 전과 달리 지금은 집 주변 반경 1km 이내에 있던 동네 가게 3개 중 2개가 기업형 슈퍼마켓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개인의 작은 의지마저 작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 같은 거대 시스템의 장벽 앞에서 문득 느껴지는 건 무력감이다. 어디 구제역과 대형마트뿐이랴. ‘재스민 혁명’이 불과 한 달 만에 내 장바구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전 지구적 사슬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맨 먼저 희생양이 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등장한 스물아홉 살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누린 것은 가장 적은데 져야 할 책임은 가장 큰 것이 이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로 이들이 진 삶의 무게를 방치하는 한 제2, 제3의 최고은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미친 등·식·주’ 끊고 살기 프로젝트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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