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같은 정권은 보다 보다 처음 보는 것 같다. 물가·청년실업·전세난 등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바른말 하는 언론을 틀어막고, 멀쩡한 4대강 파헤치는 데만 열심이다. 그 와중에 구제역이란 복병을 만났는데, 책임을 돌리고 피해를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이 판국에 정권의 ‘실세’라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개헌을 하자며 외치고 다니니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완전한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도 나름대로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어서 결국은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영국에서 비롯된 의원내각제는 국왕이 있는 유럽 국가와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도입한 대통령제는 3부 간의 ‘견제와 균형’을 기초로 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중남미와 아시아에 전파됐으나, 많은 경우에 대통령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신(新)대통령제’로 전락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칠레·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은 이제 모범적인 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다. 왕정을 폐지한 아랍 국가와 공산 체제에서 벗어난 동유럽 국가들도 대체로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분권형 대통령제인 2원적 정부제를 운영하던 독일은 혼란 끝에 나치 독재 체제를 겪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순수한 내각제 정부를 택했다. 의원내각제 정부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프랑스는 1958년 알제리 사태 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를 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당 정부의 신대통령제가 10년 이상 유지되어오다가 4·19혁명으로 의원내각제를 잠시 운영했고, 5·16 쿠데타 후 제3공화국 헌법에 따른 대통령제를 운영하다가 ‘유신’으로 인해 다시 ‘신대통령제’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1987년 6월 혁명 이후에 우리는 직선제 단임 대통령제 개헌을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우리의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정부 형태를 바꾸는 것은 큰 정치적 변혁이 있은 후에나 가능하다. 정부 형태도 일종의 전통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것을 확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헌은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정도의 계기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반기 들어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가 모양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독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 말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이 장관부터 독주와 독선에 책임을 지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치를 그만두어야 할 것 아닌가. 그가 대안으로 내놓은 분권형 대통령제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진 데서 보듯이 작동이 불가능한 정부 형태다. 굳이 분권제 개헌을 하지 않아도 대통령제에서는 사실상의 분권형 정부가 탄생할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그것을 ‘동거(同居)정부’라고 부른다.

이재오 장관부터 대통령 독주 책임져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서 원내 1당이 되고 대선에 지금의 여론조사대로 박근혜 전 대표가 승리하면 국회의 다수당과 집권당이 다른 ‘동거정부’ 또는 ‘분리된 정부’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 국회의 다수당과 대통령이 협력해야 하는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10년 동안 해온 우리로서는 그런  통합형 구도가 한동안은 바람직할 수 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우리 정부는 부산에 내려와 있었고, 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 장병들은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개헌을 획책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저게 무슨 꼴이냐?”라고 흥분하며 미군 사령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는 방안을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이승만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포위했고,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7월4일 국회가 개헌안을 처리했으니 이것이 악명 높은 ‘발췌 개헌’이다.

이승만 정부가 워낙 속전속결로 개헌안을 처리해서 대통령을 갈아보라는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민심은 MB 정권을 뜬 지가 오래되었는데, 여당의 ‘실세’라는 장관이 ‘개헌, 개헌’ 하고 외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60년 전 트루먼 대통령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기자명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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