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총리 때문에 스타일을 좀 구기긴 했지만 이탈리아는 매력 만점 여행지다. 로마에 처음 갔을 때 받은 느낌은 뭐랄까, 설레면서도 편안했다. 한때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니 설레는 건 그렇다 치고, 편안한 느낌은 왜지? 몇 번을 자문했다. 도심에 고층건물이 허용되지 않아서? 좁은 비포장도로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곳에 스타벅스가 없었다. 스타벅스 하나 없는 걸로 한 도시의 인상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로마에서 처음 알았다. 오늘날 세계 주요 도시, 주요 상권치고 이 커피전문점 로고를 만날 수 없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런데 로마는 예외였다. “자국 산업 보호한다고 정부가 규제를 해서 그래요.” 한 유학생 말을 듣고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맥도날드는 버젓이 영업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일단은 가격경쟁이 안 된다고 했다. 250년 된 커피전문점이 지금도 영업하고 있을 만큼 일찌감치 커피 문화에 눈뜬 로마다. 어느 거리를 가든 한 잔에 1유로 될까 말까 한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가 널려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 커피 값은 그보다 두세 배니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혼자 커피 한 잔 후루룩 마시고 나가는 이탈리아인들의 습성도 스타벅스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스타벅스가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번 주 소개하는 카페베네라는 커피전문점이 스타벅스를 제쳤다는 소식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스타벅스는 없지만 카페베네는 있다. 동네 작은 가게들이 속속 카페베네로 간판을 바꿔 다는 추세다. 토종 브랜드가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이토록 단기간에 따돌렸으니 사건은 사건이다. 그러나 커피전문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속도전이 조금은 얼떨떨하다. 뭘 해도 4대강 식으로 해치우려 드는 토건 마인드에 덴 탓일까? 무리한 추진 일정 때문에 ‘교육계의 4대강 사업’이라 불리던 입학사정관 제도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터졌다. 입학사정관 대비용 대필 알바생의 증언을 담은 이번 호 기사를 읽다 복장 터지는 분들이 많을까 걱정이다.

얘기가 잠깐 곁길로 샜다. 이탈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직원은 자기네 음식 문화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유별난 자부심에 대해 한마디 했다. 커피는 물론 피자·아이스크림의 본산지이자 ‘슬로 푸드’의 거점이라는 자부심이 넘치는 나라이기에 스타벅스도 피자헛도 베스킨라빈스도 발을 붙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 남 탓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모든 속도전은 결국 우리의 허약한 토대를 파고드는 것일 테니.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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