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수가 세상을 문제로 파악하지요. 무슨 무슨 연구소가 왜 그리 많은지. 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만든 연구소 이름이 ‘여러가지문제연구소’란다. 연구소장 김정운 교수(49·명지대 여가경영학과)는 자신을 일컬어 “굵고 깊게 파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 말 자체가 그렇게 사는 삶(사실 결핍일 수도 있는)을 대단하게 여기는 세상의 허영에 대한 일종의 반어로 들렸다.

문화심리학자이면서 ‘재미 박사’로 통하는 김 교수의 실천은 구체적이었다. 여자와 남자를 만날 때 건네는 명함의 디자인이 달랐고, 커피 잔마다 투박하게 그려넣은 문구도 달랐다. 그가 직접 대접한 기자의 커피 잔에는 “내 입술이 편지입니다. 무척 따뜻합니다”라는 글귀가, 동행한 인턴 기자의 컵에는 “그대의 등 뒤로 향기로운 바람이 지나갑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사IN 백승기김정운 교수
그는 2009년 출간 이후 20만 부가량이 팔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하얀 침대 시트’ ‘가슴 패티시’를 운운했지만, 기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나는 아내 없이는 못 산다’는 고백이었다. 한마디로 ‘행동 없는 에로티시즘’이다. 위악적인 포즈로 세상에 던져대는 그의 ‘뻥’과 ‘구라’에 담긴 내막이 궁금했다. 인터뷰는 1월24일, 서울 한남동 그의 연구실에서 두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인터뷰는 애초 약속한 날짜로부터 일주일 미루어졌다. 너무 잘나간다 싶었는데 넘어져 코가 깨졌단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그는 “이게 안 깨졌으면 올해 더 큰일을 겪었을 것”이라며 불운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는 것 같았다).

‘행복 전도사’의 새해 결심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수첩 첫 장을 펼쳐 보이며) ‘2011년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 강연은 한 달에 10회만 한다. 좋아하는 책만 읽는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난다(억지스러운 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렇게 적은 것은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내 성격이 더럽다고 욕한다. 내가 왜 자꾸 화를 내나 생각해봤더니 하기 싫은 걸 해서 그렇다. 그래서 하기 싫은 게 뭔가 쭉 적어봤더니 강연을 너무 많이 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서 짜증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나이가 오십이고, 좋아하는 책만 읽어도 시간이 부족한데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하나. 그리고 싫은 사람들을 왜 만나나?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 배불러서 그러지?’라면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을 거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그대로 되겠나?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웃음). 행복을 위한 ‘첫 실천’은 무엇이었나. 파마. 정수리 부위가 빠져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파마를 하면 이게 가려진다고 하더라. 그래서 살짝 해봤는데 사람들이 스타일이 굉장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나는 상당히 진지한 스타일이다. 대중 속에 비춰지는 내 모습은 재미있지만, 일대일로 만나면 하나도 재미없는 사람이다. 낯가림도 심하다. 그런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나를 (파마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건드려보니 굉장히 편하고 자유로워지더라. 내 생각에 집중하고 내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남들 못하는 얘기까지 하게 되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졌다.

그게 언제 일인가. 2007년(45세) 일본으로 안식년을 다녀올 즈음이다. 내 생애 큰 전환점이었다.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고 6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혼자 지내면서 내 삶에 대한 성찰을 했다. ‘내 삶에서 내가 주인인 적이 있었느냐.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생각하는 걸 적극 추구하자’ 뭐 이렇게 된 거다. 저서에서 21세기 시대정신으로 재미와 행복을 꼽고 “왜 한국 사람들이 분노에 가득 차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사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내 주된 관심사다”라고 표현했다. 사회 탓은 누구나 한다. 특히 MB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다 MB 욕만 하면 된다. 그러면 MB 정부가 끝나면 나의 삶은 저절로 행복해지나? 내 삶에 대한 성찰 없이 구조 탓을 하는 건 도피가 아닐까?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비해 사회는 더 민주화되었지만 과연 그만큼 내 삶은 행복해졌나?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때는 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들이받고 싸우면 됐다. 어쩌면 그때가 더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 분산되고 방향이 안 잡히는 시대다. 단계적으로 사회문제도 풀어가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내 삶의 행복과 재미에 대해서 고민할 시점이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고 들었다. 강제징집도 당했다고. 나는 군대 가서도 정신 못 차렸다. 죽인다고 때려도 개갰다. 완전히 또라이 취급받았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다. 독일로 유학을 갔다. 외로운 게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 당시 다들 노동운동 현장으로 가는데 나는 비겁하니까 도망간 거다. 미국으로 가면 더 쪽팔릴 것 같아서 독일에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조금 용서가 될 듯해서….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독일 통일 당시 김 교수는 서베를린으로 넘어온 동독인 난민수용소의 야간 경비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존경했던 교수들이 동독 슈타지(비밀경찰)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오고 그랬다. 내가 역사의 맨 앞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뒤에 서 있더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의 경험이 또 다른 시각을 열어주었다. 내 경험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회구조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인 것들을 누군가 얘기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시사IN 안희태한국인은 재미와 행복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크다. 월드컵(위)처럼 세상이 뒤집어지는 이벤트가 펼쳐져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불행의 원인을 놓고 볼 때, 사회와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사회적 요인이 훨씬 크다. 7대3 정도. 그런데 사회적 요인을 9.9라고 말한다. 개인의 몫에 대해서는 1도 설명을 안 해준다. 민주, 평등 이런 것들은 수단적 가치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다. 이 수단적 가치 이후에 존재하는 궁극적 가치에 대해서는 왜 얘기를 안 하느냐는 것이다. 궁극적 가치에 대한 목표 설정이 분명치 않으니까 수단적 가치들도 헷갈리는 거다. 그래도 ‘내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만 버려도 행복해진다’는 주장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 다들 세상이 바뀌면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이걸 깨려고 좀 도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나는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행복을 얘기하면 ‘쾌락주의를 선동한다’면서 비난한다. 오버다.
왜 그런다고 보나.
불안하니까 그렇다. 자기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니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타인을 위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가치만 얘기하는데 정작 나 자신을 위한 고민이 없으니까 그렇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건 무조건 맞는 말이지만 제발 그게 전부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다. 나쁜 짓이다. 한국은 유난히 행복지수가 낮다. 이유는 뭘까. 압축 성장이 가져온 폐해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면서 자기 삶을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엄청난 삶의 기쁨과 재미가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삶이 재미없는 사람들은 재미를 세상이 뒤집어져야 하는 엄청난 이벤트로 생각한다.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그런 재미는 없다. 집단 히스테리에 가깝다. 재미에 대한 환상, 행복에 대한 환상 때문에 삶의 행복지수가 더 낮다.

이명박 정부가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입만 열면 MB 욕하는 걸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스터베이션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문에 나왔다. 이명박이 좋아서 뽑은 게 아니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을 때 담론의 틀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개인과 사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여자와 남자와 같은 이분법적 구조들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파괴되는 걸 지켜보면서 굉장히 재밌었다. 노사모의 등장도 그렇게 봤다. 그런데 집권 중반기가 되면서 담론의 구조가 확 닫혀버렸다. 386의 사고 한계가 드러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노무현 정부를 몰락시킨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 386한테 있다고 본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나. 소통이다. 소통은 정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절대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된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 두 번이나 강의했다. 당신들 옳은 이야기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소통 방식이 달라졌다. 당선될 때까지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어느 순간부터 국민을 계몽하며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은 얘기를 들어도 내가 싫은 놈이 하면 절대 안 받아들인다. ‘당신 말 다 맞아. 그런데 혼자 하라고.’ 이렇게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한 게 그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얘기도 다 틀렸겠나? 옳은 얘기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거부하는 거다. 논리적으로 틀린 게 없는데 왜 설득이 안 되느냐? 정서 공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나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불편해한다. 문화적으로 사소한 정서 공유의 패턴들이 존재하는데 그게 다 파괴됐다. 월드컵과 같이 집단적으로 모여야만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 내면에 대한 인식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뭘 느끼는지 모른다. 내 또래 한국 남자들은 자신이 슬픈지 모르고, 기뻐도 표현할 줄 모른다. ‘감정인지불능증’이다. 경제성장이든 민주화이든 한 시대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들에게 남겨진 후유증이다. 내가 재미를 느껴보라고 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표현해야 남들도 내 정서에 공감해주고 소통이 시작된다. 각자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내면 그게 바로 문화적 다양성이고 정서 공유가 확대되는 길이다.

김정운 교수(위)는 마흔 살 넘어 머리를 파마한 뒤부터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고, 자기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공연 끝나고 먼저 박수치는 것도 옆 사람 눈치가 보인다. 의도적으로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 나는 일부러 ‘브라보’ 소리를 제일 먼저 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일상이 반복되고 새로운 경험도 없고 따라서 기억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처럼 모든 경험을 새롭게 느끼고, 현재의 정서적 경험을 풍부히 하면 시간을 천천히 보낼 수 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나,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와 같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환원시킨다고 본다. 내가 아무리 먹고살기 바빠도 내 삶의 아름다운 꿈에 대해 얘기를 왜 못하나. 그게 왜 허영이고 사치인가. 죽을 때까지 먹고살기 바쁘기만 하다가 갈 건가. 이런 질문들을 구체화하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현실의 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생긴다. 내 아름다운 삶을 방해하는 사회적 불평과 억압에 대한 분노도 구체적으로 보이는 거다. 그럼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지식인들이 비겁한 것은 남들을 위해 피상적으로 헌신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현실에서 행복을 유예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자녀 교육과 노후 대비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마흔이 될 때까지 되는 게 없던 사람이다. 한 달에 60만원 벌면서 갈 데가 없어 양평으로 낚시하러 다녔다. 독일에서 문화심리학이라는 낯선 코드를 가져왔을 때 한국 대학에서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10년 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측이 안 되는 시대다. 더 빠른 속도로 미래 10년이 진행될 것이다. 현재를 풍요롭게 살라는 말이다. 현재가 확장되고 압축되면서 폭발하는 경험. 가령 죽기 전 몇 초간 자신의 지난 삶이 다 떠오른다지 않나. 죽음이라는 정서적 경험이 극대화되면서 시간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다.

자식 교육은 어떤가. ‘아들을 팼다’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같은 칼럼에 많은 부모가 위로받았다(웃음). 애 키우는 데 솔루션이 어디 있나. 나도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무지 오래 걸렸다. ‘나 공부 못하는데 아빠가 어쩔 거야. 나는 아빠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내 삶이 있어’라면서 아이가 들이받는데 어떡하나. 받아들여야지. 그게 극복이 되니까 자식 새끼가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게 고맙다. ‘우리 애 너무 착해’라고 자랑하는 부모들 하나도 안 부럽다. 자식이 부모를 한번 들이받아야 주체적 삶이 가능하다. 부모는 그걸 각오해야 한다. 명절에 한데 모였는데도 서먹해하는 가족이 많다. 서먹한 분위기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른다. 가족이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환상이다. 가족 이데올로기다. 억지로 하나가 되려고 하지 마라. 그래서 남자들이 폭탄주 돌리는 거다. 가족이 그리워질 때, 그때 표현하면 된다.

끝으로, 행복이 뭔가.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아름다운 삶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의미가 부여되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나 혼자 행복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구조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것도 함께 행복하고 싶은데 장애물이 많기 때문 아닌가. 행복의 궁극은 기쁨의 공유다. 우리가 애를 낳으면 왜 행복해지나. 아이의 행복을 내가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녹취 도움:황승기 인턴 기자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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