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들과 아이패드. 전자책에 대한 관심은 이 두 디바이스(특정한 용도를 위해 만든 전자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가을, 미국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 ‘킨들’을 내놓았다. 시장점유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아마존닷컴은 거의 70만 종에 이르는 전자책 콘텐츠를 제공했다. 저작권이 없는 무료 콘텐츠나 2달러 미만의 저가 콘텐츠가 상당수를 이루었고, 이러한 아마존닷컴의 전자책 가격 유인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마존닷컴은 전자책 신간의 경우 출판사에는 13달러(도매가) 정도를 지불하고, 소비자에게는 9.99달러에 판매했다. 소매 판매 가격은 아마존닷컴이 정했다. 얼핏 보기에는 손해 보는 장사 같지만, 아마존닷컴의 경우 풍부한 자금력이 있는 데다가, 킨들 기기 판매 수익이 있기 때문에 이런 셈법이 가능했다. 아마존닷컴에서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킨들은 2010년에 800만 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킨들의 성공으로 전자책 시장은 2009년에 전년 대비 세 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IN 안희태태블릿 PC의 성장세에 힘입어 전자책 시장(왼쪽)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출판사들은 투자를 망설인다.

그러던 것이 애플이 태블릿 PC인 아이패드를 시장에 내놓고,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전자책을 판매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체 전자책 다운로드 비중은 여전히 킨들이 높았지만, 전자책 유통 모델에 변화가 생겨났다(2010년 8월 기준으로 전자책 다운로드 비중은 킨들이 61%, 아이패드가 5% 미만으로 추산된다). 출판사에서 전자책 가격을 정하고 이를 아이북스토어에서 판매하고, 그 책의 판매 수수료(대략 30%)를 받아가는 것이 ‘애플 모델’이었다. 그러자 미국의 주요 출판사들이 아마존닷컴에 애플 모델로 계약을 변경하자고 요구했다. 출판사의 콘텐츠가 필요했던 아마존닷컴도 결국 애플 모델로 전자책 공급 계약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유통업체가 시장 지배자가 되어 상품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이후에 비용을 콘텐츠 제공자가 떠안도록 산업 구조가 조정되기 쉽다. 아마존닷컴 같은 모델에서는 출판사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공급 가격을 낮추라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발 전자책 바람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전자책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4월에 전자책 시장 규모를 2014년까지 70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기획회의〉 〈출판저널〉 등 출판 전문지도 ‘전자책’을 주요한 키워드로 삼고 논의를 해왔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와 달리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전자책 시장이 미국 시장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먼저, 킨들처럼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한 단말기가 없다. 국내에서 삼성전자·아이리버·네오럭스·인터파크 등 여러 사업자가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생산했다. 하지만 그 성적표는 킨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3월 전자책 전용 단말기 ‘비스킷’을 내놓고 나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증권가에서는 전자책 시장에 대한 우려가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몇 달 뒤 인터파크는 비스킷의 가격을 37% 인하했다. 아이리버 주가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삼성전자도 전자책 전용 단말기 사업에서 ‘쓴맛’을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경우 강력한 디바이스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대체로 저작권이 소멸되거나 저가이긴 하지만)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자책 시장을 넓혀왔다. 하지만 국내에서 킨들 같은 막강한 디바이스 출현은 사실상 실패했다.

외국 출판사가 전자책 판권 주기 꺼리는 까닭

그렇다면 전자책 콘텐츠의 질과 규모는 어떠한가? 국내 전자책 시장의 경우 ‘2차 저작권’ 문제가 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아 있다. 종이책의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만들 경우에 부가적 권리(2차 저작권 등)에 대해서 저작권자에게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단행본 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데, 이에 대한 2차 저작권 계약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해외 출판계는 대개 (번역서) 전자책 공급가의 25%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전자책 서점에서 번역서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저작권 에이전시인 홍대규 대니홍에이전시 대표는 “외국 출판사가 한국 출판사에 전자책 판권을 주는 것을 꺼린다”라고 말했다. 해킹 우려가 있고, 실제로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불할지 신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이후 전자책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관망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일반적 현상은 아니지만 전자책 시장에 직접 뛰어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홍대규 대표는 “굉장히 유명한 경제·경영서의 경우, 저작권을 가진 미국 측에서 번역료를 지불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나중에 자체적으로 한국어로 번역해 전자책화하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전자책 시장이 커지게 되면, 번역서의 2차 저작권료 또한 만만치 않게 오를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Reuter=Newsis제프 베조스(왼쪽)와 스티브 잡스(오른쪽)는 킨들과 아이패드로 전자책 시장에 혁명을 일으켰다.

태블릿 PC의 성장세는 국내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는 데 호기이다. 아이패드·갤럭시탭 등 태블릿 PC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기존 전자책 단말기를 대신할 전자책 유통 경로로 기능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KT는 지난해 4월부터 전자책 서비스 ‘쿡북카페’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아이패드 등을 통해 책을 내려받게 하고, 장차 애플 모델(출판사가 가격을 정하고, 30%가량 판매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활용해 전자책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쿡북카페 가입자는 20만명, 가입자들은 평균 1.5개씩 전자책 30만 건을 내려받았다고 한다.

통신사뿐 아니라 출판계 쪽도 여느 때와 달리 태블릿 PC를 이용한 전자책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한 전자책(앱)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실제 아이패드용 전자 잡지 같은 경우, 초기의 환호성과 달리 판매 부수가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의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는 아이패드용 유료 잡지를 내놓았다. 판매 개시 24시간 만에 2만4000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점점 더 많이 보급되었는데도 아이패드용 잡지 판매량은 점점 떨어졌다. 6월까지 1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나, 7~9월에는 평균 3만1000부, 10월과 11월에는 2만2000여 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배너티 페어(Vanity Fair)〉 〈글래머(Glamour)〉 〈GQ〉 등 다른 전자 잡지도 판매량이 감소했다. 잡지만이 아니다. “애플은 아이북스토어에서 유료 전자책의 판매량이나 판매액을 공개한 적이 없다. 수백만 부 정도 내려받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아이북스토어에 널려 있는 무료 전자책을 감안해야 한다.”(장은수 민음사 대표)

출판사들 전자책 가격 너무 낮아 ‘진출’ 고민

전자책 시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에 비해 수익 상황은 ‘아직은’이다. 출판의 전자책화에 적극적인 몇몇 출판사에 문의하니, 수익 부분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출판사의 경우 1만5000원에 팔리는 도서를 전자책화해 유료 앱으로 앱스토어에 올려 판매를 시작했다. 동영상까지 제작하는 등 차별화에 공을 들였고 가격은 6.99달러를 붙였다. 이 가격에서 할인을 해 3.99달러로 판매했는데 판매액은 미미했다고 한다. 이 출판사의 관계자는 “지금은 초창기이다. 올해 전자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계획이다. 그런데 앱스토어에서 전자책 콘텐츠에 대한 가격 저항선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1.99달러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선을 넘기가 쉽지 않아 앱을 제작하고 출시할 때 가격 고민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부 IT 전문가는 출판계의 ‘기술 지체’ 등으로 인해 전자책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일반 단행본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5만~10만원이면 충분하다. 출판계에서도 전자책 전환에 대비해 기술적 준비를 어느 정도 끝마쳤다. 2009년에 출범한 (주)한국출판콘텐츠(KPC)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김영사·더난출판·문학과지성사·창비 등 60여 개 출판사(제휴 출판사를 포함하면 250여 곳)가 주주로 참여해 설립한 2차 저작물 관리 회사이다. 출판계가 연대해 전자책 시장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출범했다.

신경렬 KPC 대표는 “인터넷 서점 등 유통사나 통신사 처지에서는 저가 콘텐츠를 확보해 전자책 시장을 키우려고 하겠지만, 출판사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책 시장의 크기를 키우면서 출판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적정한 가격 정책, 전자책에 대한 보안과 투명한 정산 등 출판계의 목소리를 모아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소장은 “전자책은 대세이며 새로운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전자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우려스럽다”라고 말한다. 영어 교재, 자기 계발서 등 정보성이 강한 분야에서 전자책이 종이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구실을 하겠지만, 전자책이나 앱이 모든 종이책을 대체할 것이라는 논리는 지나치다는 설명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의 진단 또한 비슷하다. 그는 “전자책 시대를 막을 수는 없고 출판사도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델이 저자와 출판사와 서점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디바이스 판매를 늘리기 위해 전자책을 단지 전자기기에서 소비할 수 있는 저가의 부가 콘텐츠로만 여긴다면, 전자책 시장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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