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월25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를 재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1월21일에는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민주당 소속)에게 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최 후보의 청문 보고서 채택을 부탁했다. 현행 인사법상 장관 후보는 국회에서 청문 보고서를 내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법적인 하자는 없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하면 정치적 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야당 국회 상임위원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이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인사는 망사’가 되기 일쑤였다. 2008년 2월 첫 조각 이후 7·7(2008년), 1·19(2009년), 9·3(2009년), 8·8(2010년), 12·31(2010년) 등 여섯 차례 인사를 단행했다. 이 가운데 네 번 낙마자가 발생했다. 청문회 문턱을 넘은 인사들도 상처투성이 신세가 되었다. 인사를 할 때면 ‘회전문 인사’니 ‘돌려막기 인사’ ‘끼리끼리 인사’니 철 지난 유행어뿐 아니라, ‘양파 총리’ ‘더듬이 총리’ ‘비듬 장관’ ‘까도남’ 등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난맥처럼 얽힌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네 가지 열쇠말로 돌아보았다.


■ 회전문·돌려막기·끼리끼리 인사

낙마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에 가려졌지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를 보면 ‘MB식’ 돌려막기 인사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최 후보는 2007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했다. 이른바 강만수 라인이다. 1991년 재무부 국제금융국 사무관으로 일할 때 강만수 전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강 전 장관은 〈현장에서 본 한국 경제 30년〉이라는 책에서 최 후보자를 ‘헌신적인 공무원’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역외차액선물환(NDF) 거래에 나섰다가 1조8000억원의 환차손을 입혀 한국을 떠나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밀려났다. 그런 그를 인수위로 불러들인 장본인이 강 전 장관이다.

최 후보는 인수위원을 거쳐 초대 기획재정부 1차관을 맡았다.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해 ‘환율 매파’로 불린 그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2008년 촛불 사태 뒤 이뤄진 7·7 개각 때 환율 정책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정작 옷을 벗어야 할 장관 대신 차관인 그가 경질되면서 ‘대리 경질’이라는 말이 돌았다. 한 달 뒤 그는 필리핀 대사에 임명되며 기사회생했다. 이번에는 대리 경질에 따른 ‘보은 인사’ ‘위로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 3월 그는 필리핀 대사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컴백했고, 다시 지식경제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인수위 전문위원→기획재정부 1차관→필리핀 대사→청와대 경제수석→지식경제부 장관까지 그는 돌고 돌았다. 이번 인사를 두고 청와대 경제특보를 맡고 있는 ‘강만수 파워’가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강만수 전 장관도 서울시정개발원장→
인수위 간사→기획재정부 장관→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청와대 경제특보로 ‘롱런’하고 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회전문 인사나 돌려막기 인사는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처럼 광범위하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좁은 인재풀과 참모를 중시하는 MB 인사 스타일을 인사 배경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낙마한 정동기 감사원장도 돌려막기 인사의 수혜자이다. 2007년 대검 차장 시절 “(도곡동) 땅 주인은 이명박 후보가 아니다”라고 한나라당에 확인해준 그는 인수위원회에 합류했다. 대검 차장에서 물러난 지 불과 한 달만이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에 발탁되었고 천성관 검찰총장 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정부법무관리공단 이사장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감사원장에 내정되었다가 낙마했다.

역대 감사원장 21명 가운데 청와대 참모 출신이 감사원장에 오른 건 1976년 박정희 정권 시절 신영두 7대 감사원장뿐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외에도 지난해 4월에는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어 구설에 올랐다. 한국은행 독립을 훼손시키는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2·31 개각 때 돌아온 이동관·박형준 특보도 끼리끼리 인사의 대표 사례이다. 이들 외에도 대선 후보 시절의 외곽 조직 ‘선진국민연대’를 이끈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이 밖에도 임태희(고용노동부 장관→대통령실장), 백용호(서울시정개발원장→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청와대 정책실장), 이주호(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교육과학기술부 차관→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박재완(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고용노동부 장관), 원세훈(행정안전부 장관→국정원장), 맹형규(청와대 정무수석→정무특보→행정안전부 장관), 김성환(외교부 차관→외교안보수석→외교부 장관), 박영준(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총리실 국무차장→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회전문을 들락거렸다.

■낙마 또 낙마… 오기 인사

이춘호 환경부 장관 후보가 첫 테이프를 끊은 뒤 낙마 행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초대 환경부 장관 후보에 오른 이씨는 부동산 40건을 포함해 45억8197만원의 재산을 신고하면서 투기 의혹을 샀다. 이씨는 2009년 교육방송(EBS) 이사장에 올랐다. 이씨는 또 KT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이씨가 낙마한 지 사흘 만인 2008년 2월27일 남주홍·박은경 후보가 나란히 사퇴했다. ‘3인방’의 사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2008년 4월 인천 땅 투기 및 자경 확인서 조작 의혹을 받고 물러났다. 2009년 1월에는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가 내정 하루 만에 발생한 용산 참사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진압 과정에서 그의 지휘 여부가 쟁점이 되었지만, 그는 검찰 소환 조사를 한 번도 안 받았다. 최근 김씨가 오사카 총영사에 발탁되면서 ‘배려 인사’ ‘보은 인사’라는 뒷말이 돌기도 했다.

2009년 7월 스폰서 의혹에 휩싸인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가 낙마하면서 경찰청장에 이어 권력기관 인사도 난맥상을 드러냈다. 앞서 2009년 1월 한상률 국세청장이 그림 로비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유례없는 국세청장 공석 사태를 빚기도 했다.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5개월 장고 끝에 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바로 참모 출신인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낙마 악몽’은 지난해 8·8 개각 때 되풀이되었다. 40대 총리로 깜짝 발탁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낙마했고,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도 인사청문회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의정부 시절인 2000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헌법에 국회 임명 동의를 요구하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등에 국한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으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2005년 이기준 교육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 시절 판공비 유용과 사외이사 겸직, 아들의 국적 및 병역 의혹 등이 불거져 낙마한 사건을 계기로 인사청문회 대상자를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른 현행 인사 청문 대상자는 모두 57인이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국회에 제출된 인사 청문 요청안은 총 58건. 이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2006년)와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2003년) 등 두 명이다. 반면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문회 자체가 열리기도 전에, 또는 열렸지만 통과하지 못한 인사가 벌써 9명째이다.


■양파 총리·까도남·비듬 장관…

낙마자가 속출하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인사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유행어가 나왔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 첫 내각이 정의된 데 이어, 지난 8·8 개각 때는 ‘죄송 내각’으로 규정되었다. 정치 원로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8·8 인사 때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후보자들이 나와서 매일 절하고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럴 바에는 그만둬야지. 이번 청문회는 죄송 청문회이다”라고 비판했다.

후보 개인들의 별명도 많았다. 먼저 친서민 정책을 내걸면서 ‘정운찬 카드’를 꺼낼 때만 해도 정 총리는 유력한 박근혜 대항마였다. 그러나 청문회 과정에서 그는 ‘양파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녀 이중국적 논란에서부터 사외이사 겸직, 그리고 모 기업가로부터 용돈 1000만원을 받는 등 의혹이 불거지면서 까도 까도 새로운 의혹이 쏟아진다며 양파 총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정 총리 본인이 “자꾸 양파 총리라고 하시는데 정말 억울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입은 상처는 깊었지만, 여론은 더없이 싸늘했다. 그는 대권 주자에서 멀어졌다. 여론조사 기관에서조차도 그는 차기 대권 주자 후보군에서 배제되었다.

지난 8·8 인사 때 낙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도 양파 총리 별명을 얻었지만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그는 야당으로부터 ‘썩은 양파 총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김 총리 후보는 청문회 자리에서 “어떤 분은 양파 같다고 하지만  까도 까도 나올 게 없다”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총리 임명 21일 만에 하차했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는 ‘4대강 총리’ ‘인턴 총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청문회를 거치면서는 신용카드를 거의 쓰지 않고 현금만 쓴 이상한 씀씀이 때문에 ‘캐시 킴’이라 불리기도 했고,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받으면 “기억을 더듬어보겠다”라고 자주 말해 ‘더듬이 총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뉴시스2008년 2월18일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조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김 후보와 함께 낙마한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는 털어도 털어도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비듬 장관’이라 불렸다. 다섯 차례 위장전입에 이어, 부인의 위장 취업 의혹에 자가용 스폰 의혹까지 보태지면서 ‘의혹 백화점’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는 6평짜리 쪽방촌에 투기한 전력이 밝혀져 ‘쪽방촌 장관’으로 불리다가 낙마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번에 논란이 된 최중경 후보에 대해 “이재훈 후보가 자영업 수준이라면, 최 후보는 이곳저곳에 투기해 개발 차익을 여러 곳에서 낸 재벌 수준의 투기다”라며 비판했다. 또 최 후보는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편법 증여, 재산세 체납, 국민연금 미납 등 까도 까도 새로 의혹이 나온다며 ‘까도남’이라는, ‘양파’보다 까칠한 별명을 얻었다.

■ 임명권자 따라 달라지는 인사 기준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는 자기 논문 중복 게재와 제자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내정된 지 12일 만에 사퇴했다. 표절 의혹을 파고들며 김 후보의 사퇴를 이끈 장본인은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다. 정작 이 장관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표절 의혹을 받았다. 이 장관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표절 의혹이 불거진 인사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안병만 전 교육부 장관, 백희영 여성부 장관 등이다. 그러나 김병준 전 부총리와 사안은 같지만 이들은 모두 임명되었다. 임명권자만 달랐을 뿐이다.

위장전입 또한 잣대가 달라졌다. 2002년 장상 국무총리 후보는 위장전입 때문에 낙마했다. 하지만 정운찬 전 총리,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민일영 대법관, 이현동 국세청장, 조현오 경찰청장 등은 위장전입을 했는데도 모두 무사히 통과했다. 주소만 바꾸는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게 되어 있다. 위장전입 때문에 낙마했던 장상 민주당 최고위원은 “똑같은 사안임에도 누구는 낙마하고 누구는 인준된다면 이는 청문회가 아니라, 후보자의 운을 시험하는 시험장일 뿐이다”라며 한나라당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야당은 아예 이명박 정부 인사의 필수 과목으로 ‘병역 비리’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에 ‘논문 표절’ 등 ‘4+1’을 꼽기도 했다.

난맥처럼 얽힌 ‘인사 폭탄’은 지금까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박한철 헌법재판관을 시작으로 대법원장·대법관 인사 등 법조계 인사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오는 8월에는 임기가 끝나는 검찰총장 후임 인사도 해야 한다. 반환점을 돈 이명박 정부의 인사 폭탄의 타이머가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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