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유니폼 하의만 입고 있었다. 꾀죄죄했다. 마르고 퀭한 눈에선 ‘모험’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없었다. ‘고무고무열매’를 먹고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해적 ‘루피’(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와는 달랐던 소말리아 해적. 해군과 안 친하다는 것만 빼곤 모두 달랐다. 캐리비안 언저리의 해적 ‘잭스패로우’가 가진 미중년 아이라인도 없다. 기자는 해적을 만화로 배웠다.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삼호 주얼리호의 피랍 선원 21명을 구출한 뒤 전국이 ‘구하라’ 열풍이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앞장섰다. 피랍 선원을 구해낸 해적 소탕 영웅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청와대가 엠바고를 깬 언론사 세 군데에 제재를 가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이 있기 전, 1차 작전에 실패한 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에서다. 작전 내용을 해적이 알게 되면 국민 생명에 심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나.

엠바고를 깼다고 기자단 내부가 아니라, 출입처에서 직접 제재를 가하는 건 유례없는 일. 모든 정부부처 출입금지라는 강경책이다. 한 번에 ‘못 구한’ 걸 보도한 데 대한 보복 조처라는 설이 탄력을 받았다.

국방부와는 사인이 맞지 않은 걸까. 국방부는 이번 군 작전의 세세한 전략과 기밀까지 홍보용으로 공개했다. ‘구했다’는 데 심취한 나머지 ‘더 구하라’는 미션은 잊은 것 같다. 금미305호 선원 두 명은 여전히 해적에게 피랍되어 영어의 몸 상태. 아스날 유니폼 상의를 입은 해적이 보면 어쩌려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청와대의 주인은 자기 사람 구하기에 앞장섰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 보고서 통과를 앞두고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에게 전화해 “나를 믿고 통과시키라”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것. 대통령의 ‘구하라’ 명령은 실패했다. 청문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축구팬들의 ‘기성용 구하기’도 화제였다. 아시안컵 한·일전에서 골을 넣고 일본인을 비하하는 원숭이 흉내 세리머니를 한 기 선수. 매너 실종 세리머니에 비판이 쏟아지자 방어에 나섰다. 일본 팬이 흔드는 ‘욱’일승천기에 ‘욱’했다고 한다. 그래도 선수가 싸울 곳은 그라운드. 유럽에서는 원숭이가 곧 동양인 전체를 말한다며 아쉬움을 남기는 누리꾼들이다.

전 국민의 ‘구하라’ 미션, 다음 차례는? 아마도 ‘돼지를 구하라’가 될 것 같다. 아덴만도 있지만 구제역에 비상 걸린 경남도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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