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18개월 아이를 둔 나는 늙다리 엄마 기자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사실상 무상보육을 하고 있다”라는 말에 확 치미는 것이 있어, 두 달 전 얘기를 해보련다(나는 친정집 더부살이를 한다. 몇 달 전, 회사에서 가까운 집을 내놓고 1시간30분 통근 거리인 경기도로 이사를 갔다. 육아 때문이다).

드디어 그날이다. 시립어린이집 추첨일. 전주곡도 요란했다. “저같이 아이가 한 명인 엄마들에 대한 차별 아닌가요?”라며 수인사도 나누지 않은 어린이집 교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내 아이가 속한 만 1세 반 모집 정원은 원래 다섯 명인데, 형제·자(남)매가 다니는 경우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정원이 세 명으로 줄었다는 교사의 말에 순간 언성이 높아졌다. 전화를 끊고 보니 그 사정도 이해할 만했다. 형제를 어떻게 갈라놓겠는가.


추첨 시간이 다 됐다. 그런데 원장이 양해를 구했다. 한 엄마가 10분 늦겠다고 전화가 왔는데 기다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묵살됐다. 옆에서는 “그래야 경쟁률이 주는 것 아냐”라는 속삭임이 들렸다. 나도 묻어갔다. 추첨 시작. 내 순서가 돼서 봉투를 하나 집어들었다. “2011년도 예비 3번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기 3번이다. 내 뒤를 이어 줄줄이 “됐다!” 하는 탄성이 나왔다. 어떤 엄마는 펄쩍 뛰면서 울었다. 아이를 안고 주섬주섬 일어서려는데 눈물이 왈칵했다. 아, 다 나같이 간절했구나. ‘애가 대학에라도 떨어졌나, 왜 이래?’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정체 모를 서러움. 대한민국 교육, 줄 세우기의 반열에 들어선 것인가. 이제 겨우 18개월인데?

그날 밤, 한 번 더 사단이 났다. 몸살기가 있어서 앓는 소리를 좀 했더니 친정어머니가 대뜸 그런다. “둘째 가진 거 아냐?” 기대에 찬 얼굴이 아니었다. 친정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도 치밀었다. “애 생기면 내가 회사 관두고 키울 테니 걱정 마세요!” 칠순 노모는 평소 “내가 둘째는 못 키운다”라고 수시로 나의 다짐을 받아왔다. 어쩌다 이리 된 걸까? 친정어머니가 출산 통제를 해야 하는 현실…. 이명박 대통령님, 정말 우리나라 무상보육하는 거 맞나요?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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