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듯 보였다. 고대영 길벗어린이 상무(50)는 날짜를 꼽아보더니 “1995년인가, 1996년에 첫 책을 찍었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자료를 들춰보더니 이내 “1996년 4월25일에 첫판 1쇄를 찍었다”라고 날짜를 수정했다. 그랬다. 창작 그림책 〈강아지똥〉(글 권정생·그림 정승각, 길벗어린이)의 ‘생년월일’을 기억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판 〈강아지똥〉을 읽었을 여덟아홉 살 어린이들이 지금은 20대 중반이 되었을 터이다.

시간만 흐른 것이 아니다. 15년 동안 〈강아지똥〉은 차근차근 ‘기적’을 일구어왔다. 그림책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켜 교과서에서 〈강아지똥〉을 볼 수 있게 만들었는가 하면, 지난 연말에는 국내 창작 그림책으로는 처음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그림책은 한 해 1만 권만 팔려도 “꽤 잘나간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격세지감이다. 애니메이션 유의 그림책이 판치던 당시만 해도 정승각씨의 투박한 그림을 바탕으로 책을 내는 일은 일종의 모험이었다”라고 고 상무는 돌이켰다.

고 상무는 그 뒤 권정생 선생의 그림책을 두 권 더 기획했다. 〈오소리네 집 꽃밭〉과 〈황소 아저씨〉이다. 그 덕에 매달 인세가 발생하는데, 글쓴이가 돌아가셔서 인세는 고스란히 (권 선생의 유언에 따라) 북한 어린이와 전쟁 피해를 입어 고생하는 어린이들에게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월쯤 100만 부 돌파를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인데, 고 상무는 “권 선생의 유지도 그렇고 어린 독자들의 사랑도 많이 받아서, 그 사랑을 돌려줄 행사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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