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은 죽음과 닮았다. 죽음은 그림자처럼 언제나 주변에 머무는데도 우리는 평소에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텔레비전에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머리띠를 매고 인상을 쓰며 구호를 외치는 걸 보면서도 그것이 내 일이 되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환란 이후, 신자유주의가 밀려들고 노동자마저 서열화되면서(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말은 죽어도 쓰고 싶지 않다) 파업은 어느덧 블루칼라만이 아닌 모든 노동자의 머리 위를 맴도는 망령이 되었다. 죽음과 파업이 다른 점이 있다면 파업은 사람을 가려가며 덮친다는 것이다.

파업이란 돌개바람에 휩쓸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다. 그 나라에서는 자본, 뭉뚱그려 표현하면 기득권 세력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자신의 계급도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의 선의란 ‘시크릿 가든’에나 있는 것이다.

ⓒ이지영 그림
점잖고 세련되고 친절해 보였던 회장님·사장님·원장님·소장님의 코빼기를 갑자기 볼 수 없게 된다. 어제까지 친숙하게(친하게는 아니다) 지냈던 총무부나 관리부의 장이나 직원들의 얼굴이 갑자기 괴물처럼 변했다는 걸 발견한다. 시멘트 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쳐지고,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용역 깡패들을 향해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친 욕설을 뱉어내거나, 심지어는 악에 받쳐 상대의 몸뚱이에 이빨을 박아넣으려고 달려드는 ‘짐승’이 바로 자신이란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평소 법 없이도 산다고 자부했는데도 갑자기 검찰·경찰과 전혀 말이 안 통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사법부가 법 정신이나 법조문과 상관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화를 내기보다는 신기해한다. 찾아온 기자들에게 성심성의껏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노라 했는데도, 신문이나 방송 보도에서는 자신이 폭도로 변해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해한다. 부모·형제자매·남편·아내·자식에게까지 협박장이 전달될 수 있다는 데 참담해한다.

이 파업 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눈이 밝아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 억울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새삼 놀란다. 10년, 20년, 심지어 30년 넘게 복직 투쟁을 하는 분들도 있다. 장기 파업의 늪에 빠져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는 노조도 의외로 많다. 노동 탄압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실려 마땅한 숱한 기록을 가진 대한민국의 이 어둡고 음습한 면을 왜 진작 보지 못했는지, 자신의 둔감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펴냄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끔찍한 괴물들과 번번히 마주쳐야 하지만, 바보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와주려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큰 보상이다. 자기 코가 석 자인 듯한 파업 ‘선배’들이 도와주겠다고 몰려올 때는 난감하다. 숱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지원 계좌에 돈을 넣는다. 그리고 고통받고 외로운 사람들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민주화의 기나긴 여정에서 이런저런 억울한 이유로 자식을 비롯한 피붙이를  잃은 한맺힌 어머니들의 모임이다.

전 직장에서 파업할 때에도 이분들이 두 번이나 봉투를 들고 오셨다. 그때 “이 은혜를 어떻게 갚겠느냐”라고 했더니 어머니 한 분이 그러셨다. 당신들은 이제 우리가 놓은 덫에 걸렸다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당부하셨다. 앞으로 아무리 기막히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구 하나 주목해주는 일이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숱하게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벌 받는 기분으로 다시 만난 ‘전태일’

홍익대의 청소·경비 용역 일을 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이들에 관한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대학 캠퍼스 울타리 안에서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이들에게 민주화의 상징이던 총학생회가 시비를 거는 엽기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업한 지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인데 나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서 얻었던 감성을 거의 상실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총학생회 문제로 이 사건이 커지지 않았으면 나는 분명 또 무심히 지나쳤으리라.

그래서 벌을 선다는 기분으로 다시 찾아내 먼지를 털고 읽어본 책이 〈전태일 평전〉(전태일기념사업회, 1983)이다. 나는 이 책이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항상 곁에 두고 보는 복음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성서가 별 건가. 로마의 침략자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받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음의 평화를 안기기 위한 예수님 말씀이 아니던가.

전태일은 1948년생이다. 소설가 김훈, 철학자 김용옥과 동갑이다. 살았으면 아직 한창 나이지만 그는 벌써 40년 전 스물한 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그는 불길을 삼켜 식도가 다 오그라들었는데도 배고프다고 외쳤을 정도로 평생 굶주렸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배를 채우기보다는 자기보다 어린 ‘시다’들 걱정을 먼저 했다. 죽기 전 몇 년간 배를 곯는 시다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그는 청계6가에서 도봉산까지 꼬박 걸어서 집에 갔다. 그는 오체투지를 하는 불교 순례자처럼 낮은 곳에서 비로소 세상 이치를 깨달았다.

이 책은 재미로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하다. 이 책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는 글쟁이가 되었더라면 빅토르 위고 뺨쳤을 분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을 듬뿍 찍어 노동과 가난에 찌든 젊은 정신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조 변호사를 일찍 잃지 않았다면 진보 진영이 겨우 박근혜 정도에 맞설 대항마가 없어 쩔쩔매지는 않았으련만. 1952년생인 박근혜는 그 또래의 어린 여공들이 전태일에게서 풀빵을 받아먹던 1967년 예쁜 비키니를 입고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었더랬다.

〈소금꽃 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따지고 보면 이소선은 전태일을 낳았지만 전태일은 이소선을 낳았다. 전태일은 죽어가면서 어머니에게 자기를 대신해 노동자를 위해 싸워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는 오늘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무자비한 곤봉과 발길 세례 속에서도 형사의 ‘메가지’를 움켜쥐고 악다구니를 치지만, 힘없는 자들에겐 한없이 따듯한 유가협을 이끌어온 이가 바로 이소선이다.

기왕 벌을 제대로 서려면 민주노총 부산지역 본부 지도위원인 김진숙씨가 쓴 〈소금꽃 나무〉까지 읽어야 한다. 그녀는 1984년 한진중공업 용접공으로 일하다 〈전태일 평전〉을 만났다. 그녀는 노동자란 말이 마음에 안 들어 이 책을 니체나 이상, 그리고 김춘수나 김남조의 시집과 같은 책꽂이에 두지 않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나중에 정 할 일이 없어 들춰보았다가 그녀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똥구덩이 같은 현장에서 혼자 비단신 신고 똥을 탈탈 터는 너는 누구냐고 자신에게 소리 질렀다.

그 뒤 그녀는 어용노조를 뒤엎으려다 해직당해 27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2003년 한진중공업 노조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하다 목을 맨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오늘도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농성 중이다. 〈소금꽃 나무〉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실감나고 깊이 있다. 잉크가 어찌 피와 눈물을 당하겠는가.

전태일과 김진숙은 돌개바람 없이도 우리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가 비단신 신고 춤추는 얼간이, 그들 자신의 일부인 나를 보여준다. 어머니들의 덫이 질기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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