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인디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인디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갈린다.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라고 답하기도 하고, 방송에 나오지 않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인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존 언더그라운드 신의 주류 장르였던 헤비메탈이 아닌, 펑크나 그런지 같은 음악을 새롭게 생겨난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에서 펼치던 뮤지션들이 있었다. 크라잉넛,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등이 그때의 주역이었다. 헤비메탈과는 다른 이 새로운 음악에 1990년대 록 음악 팬들은 열광했고, 당시 한국 사회 일각에서 붐을 형성한 ‘새로운 청년 문화’에 대한 수요도 자극했다. 학생운동이 몰락하면서 문화운동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던 기자들이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그때 등장한 개념이 인디였다.

ⓒ뉴시스장기하, 국카스텐(위) 등이 대중적으로 이름을 얻은 2000년대 후반 이후 인디 음악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디(indie)란 인디펜던트(independent)에서 온 말이다. 워너·소니·유니버설·EMI로 대표되는 세계 4대 메이저 음반 유통업체의 유통망을 끼지 않고 독립적인 유통망을 통해 배급되는 음반과 이런 음반을 제작하는 레이블을 통칭하는 서구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4대 메이저의 위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없다. 그렇다고 이에 대처할 만한 메이저 유통사, 제작사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한두 팀 가수를 보유하고 사업을 벌이는 영세 기획사가 인디 음악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한 현실이었다. 즉 인디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상대적인 거대 세력이 없었던 셈이다.

‘아이돌 말고 경쟁 상대 없는’ 뮤지션도 등장

초기 인디 음악계는 펑크나 그런지 같은 거친 음악이 주류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주류 음악계가 기획형 아이돌 위주로 흘러가면서 자기 음악을 하려는 이들 대부분이 인디 레이블을 통해 데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장르도 다양해지고 예전 같으면 방송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악들마저 인디로 불리게 되었다. ‘사회에 대한 반항적 태도’라는 초기의 핵심 가치 대신 ‘자기가 직접 작사·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형태가 인디의 개념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혹은 실력은 갖췄으되 방송에 나오지 않는 음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에 방점을 찍은 해는 2008년이었다. 인디 르네상스라고까지 일컬어지던 해다. 장기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장기하의 성공은 사회적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요조, 검정치마, 갤럭시익스프레스, 국카스텐 등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낸 팀이 등장하거나 약진했다. 특정 장르가 대세를 이루던 때도 지나갔고, 뚜렷한 자기 정체성이나 색깔을 띤 팀들이 주목되고 각광받았다.

2000년대 중반 모던 록을 중심으로 한 듣기 편한 음악이 주류를 형성하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음악’이라는 개념도 그들의 성공과 함께 뒤흔들렸다. ‘노 리플라이’나 ‘에피톤 프로젝트’의 경우 1만 장 이상 음반 판매고와 높은 공연 점유율을 보이며 사실상 아이돌을 제외하고는 경쟁 상대가 없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또한 최근에는 기존 인디에 대한 안티 테제로 자립음악가조합이 등장, 스스로 ‘인디’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있다. 인디의 인디인 셈이다.

이는 인디 신의 스펙트럼이 극도로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음악을 하는 목적이야 달랐다 치더라도, 그 활동 방향과 결과 역시 매우 다양한 층위로 드러난다. 즉, 인디라는 용어가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돌이 주류 음악 시장을 독점하면서 발라드 가수나 보컬 그룹도 맥을 못 추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음악계는 아이돌과 비(非)아이돌로 양분될 뿐, 안티 테제의 의미로 출발한 인디는 기존 가요계가 커버하던 영역부터 민중음악계가 커버하던 영역을 홀로 지칭하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음악을 생산하고 홍대 앞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즈와 힙합을 제외한 모든 음악’이라는 이상한 내연을 갖고 있다고 할까. 농담 삼아 말하자면 〈뮤직뱅크〉에 나오면 아이돌이고 〈스페이스 공감〉에 나오면 인디랄까. 선언의 차원에서 인디라는 말이 등장했듯, 현 대중음악계의 구도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지칭어가 또 한번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명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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