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4일 오후 6시,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국내 최대(412석) 규모의 대형 PC방. 머리칼이 헤싱헤싱한 중년 남성 다섯 명이 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본다. “아유, 크로버 내야지” “‘다이(기권)’해라 그냥.” 온라인 포커 게임판에 한마디씩 훈수를 둔다. 이곳에서 ‘온라인 도박’을 즐기는 20여 명은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낸다.

박지성씨(48·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이날도 등받이가 뒤통수까지 올라오는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온라인 포커 게임을 하는 그를 두고, 옆자리의 유건영씨(57)가 “게임 중독 정도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놀린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박씨는 이날 정신병원에서 게임 중독에 관한 상담 치료를 받고 왔다. 3개월 전부터 가족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했다. 박씨는 “2주에 한 번꼴로 가는데 상담만 하는 거라 별 도움은 안 된다”라고 말한다.

ⓒ김재연 인턴기자20~30대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지는 반면 중장년층은 온라인 도박 게임에 중독된다.

박씨는 한 달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닷새밖에 안 된다. 온라인 포커 게임에 빠져서 15년째 ‘PC방 살이’를 하고 있다. PC방 안에서 파는 덮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졸리면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쪽잠을 잔다. 워낙 오랜 시간 게임만 하다보니 정신뿐 아니라 몸도 피폐해졌다. 어두운 PC방에서 장시간 컴퓨터 모니터를 본 탓에 오른쪽 눈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받고 있다. 포커 게임에 필요한 사이버 머니를 사느라 갖고 있던 집 두 채를 팔았다. “본전 못 찾는다는 거 알면서도 계속하는 거다. 말 그대로 중독이다.” 게임할 돈이 떨어진 박씨는 PC방을 떠나지 않고 돌아다니며 다른 게이머에게 훈수를 둔다.

‘PC방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유건영씨도 자신이 게임 중독임을 인정한다. 유씨는 1월3일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15시간 동안 포커를 했다. 당일 충전한 사이버 머니 100억, 즉 현금 12만3000원을 모두 날리고서야 PC방을 나섰다. 벌써 8년째 같은 생활이다. 집에 돌아가서도 다섯 시간을 채 못 쉬었다. “자려고 누워서 천장을 보면 스페이드·크로버 같은 카드 무늬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족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라고 말했다.

PC방에서 만난 중장년층 남성들은 대부분 온라인 도박 게임을 즐겼다. 20~30대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것과 대비되었다. 이태경 국립서울병원 중독정신과 과장은 “사례 분석을 해보면 중년 남성들이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잘 몰라서 온라인 도박 게임에 쉽게 빠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박 중독이 조절력 장애를 유발시켜 공금횡령과 사기, 가정폭력 같은 사회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치료법은? 도박 중독은 개인의 의지력 부족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질환인 만큼, 꾸준히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자명 김경희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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