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단비뉴스〉(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중 이보라씨가 쓴 ‘근로 빈곤의 현장-텔레마케터 2주의 현장 기록’을 전재한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한 통신사에 취업해 2주간 고객 약 1000명과 통화를 했다는 이씨는 취재 기간에 사람을 응대하는 데 지친 나머지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것조차 지겨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텔레마케터 중 90% 이상이 여성이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텔레마케터 중 74%가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받았고, 37%가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랑 사귈래요?”

어쩐지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준다 싶었다. 오늘 따라 스크립트(고객 응대용 대본)를 보지 않아도 술술 설명이 잘 되었고, 고객은 곧 주문이라도 할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 드디어 한 건 하는 건가? 기대도 잠시, 수화기 저편의 남자가 낮게 웃음을 깔더니, 자기랑 사귀잔다.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당황해서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귀까지 열이 확 오른다. 무안하고, 허탈하다.

2010년 3월22일부터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전화판촉 업체에서 유명 통신회사의 인터넷TV(IPTV) 서비스 상품을 팔았다. 고작 2주일 체험이었지만, 하루에 지옥을 몇 번씩 갔다 오는 듯한 감정의 풍파를 겪었다. 상품 설명을 듣고, 고객을 설득하는 요령을 배우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자, 슬슬 전화를 돌려보세요.” 이튿날부터 ‘실전’에 들어갔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헤드셋을 머리로 가져갔다.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시작했건만, 가슴이 요동친다. 뚜, 뚜, 뚜…. 신호가 간다. 받지 마라, 받지 마라. 딸깍.
 

2주 동안 텔레마케터 체험에 나선 이보라씨.

“여보세요?”

실컷 스크립트를 보고 연습했지만, 말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발음은 뭉개지고, 심지어 더듬기까지….

“됐어요.” “필요 없어요.” “아침에 이 전화 받았거든요?” “TV가 없어요. TV도 사은품으로 주시든가!” 고객들은 내가 초보인 것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설픈 판매원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필요 없다’는 냉랭한 반응에 힘없이 전화를 끊는 나에게 실장은 “당길 줄 알아야지” 하고 혀를 찬다.

“그래서, 결국은 돈 내라는 얘기잖아! 무료 기간이고 뭐고 결국은 돈 내란 얘기 아니야? 내 말 틀렸어?” 한 고객이 IPTV ‘무료 체험’이란 말을 듣고 호기심을 보이다가 갑자기 화를 버럭 낸다. 일단 무료 체험을 한 뒤, 좋으면 월 사용료를 내고 쓰라는 얘긴데 완전 공짜를 바랐던 모양이다. 완전 공짜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고함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찢어질 것 같다.

“네? 네? 그, 그렇죠….”

목까지 넘어오는 ‘울음’을 삼키고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얼이 빠져서 전화를 끊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동료들이 내 통화 내용을 들었을 것 같아 너무 민망하다. 뒤통수가 뜨거워지더니, 어느새 귀까지 내려온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울음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안간힘을 써서 억눌렀다. 숨을 몰아쉬고 또 전화를 돌렸다.

“저기요. 있잖아요. 저 이런 전화 정말 싫거든요? 이런 전화 대체 왜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직접 TM(텔레마케터) 전화 거부 등록을 해야 하는 거야?” 이번 고객은 처음에 조곤조곤하던 말투가 점점 신경질적인 반말로 변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나도 모르게 머리까지 조아렸다.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누가 들을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계속 ‘콜(전화)’을 돌려야 하니까. 1분 1초가 두려운데, 하루에 6시간30분을 꽉 채워야 한다. 또 무슨 얘길 들을까 겁이 나서 한동안은 전화를 걸었다가 몰래 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열심히 전화를 하는데 고객들이 다 받지 않는 것처럼. 누구라도 말을 시키면 울음 폭포가 쏟아져버릴 것 같았다.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날부터 첫 주문 접수를 받기까지 5일간, 나는 수백 명의 남성 고객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네네. 고객님. 다음에 전화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영선(가명) 언니가 한참 동안 한 고객과 통화하다 가까스로 끊는다. 귀가 아팠는지 헤드셋까지 내려놓았다. “이 고객 정말 심심한가봐. 수다가 장난이 아니다. 얘기 다 들어주면 가입할 것 같은데, 더는 못 들어주겠다.”
 

초보 텔레마케터에게 스크립트는 필수다. 중요한 멘트는 형광펜으로 표시하거나 밑줄을 그어놓곤 한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고객의 어떤 얘기라도 참을성 있게 듣고,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입하는 고객이 하나둘 생긴다. 하지만 ‘나’를 버리고 철저히 물건을 파는 텔레마케터가 되기에 나는 아직 너무 심약한가보다.

“필요 없다고 하면 다 끊을 거예욧?” 우리를 관리하는 실장은 “텔레마케터의 실적은 결국 ‘콜 수’ 에 달려 있고, 그 ‘콜 수’는 역시 집중력에서 나온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제한된 시간 동안 더 많은 전화를 돌릴수록, 주문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실장의 눈치를 보느라 두세 시간 정도 숨 쉴 틈 없이 전화를 돌리다보면, 마치 내가 기계가 된 것 같다. 

같은 텔레마케터 사이에도 능력 차가 있다. 영선 언니는 우리 팀에서 가장 실적이 좋다. 30대 초반으로, 우리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직장 경험이 꽤 있다. 침착하고 신중하게 고객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언제 전화를 끊을지, 아니면 ‘당겨야’ 할지 잘 안다. 귀찮아하고 신경질적인 고객을 상대로 굳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반면 나보다 어린 철수(가명)는 대화의 ‘맥’을 영 모른다. 스크립트를 그냥 읽기 바쁘다. 상대방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만 한다. 지하철역 임시매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넷 서비스 신청을 호객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다. 목소리도 투박하고 톤이 높아 듣는 사람까지 불안해진다. 실적이 나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는 쉬는 시간에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고객과 승강이하느라 지쳐 서로 말을 아낀다. 애연가 철수와 순미(가명)씨가 가끔 담배를 피우러 함께 나가지만 말없이 연기만 뿜다 돌아온다. 내가 일한 기간 서로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않을 만큼 ‘동료 의식’이라곤 없었다. 퇴근 후에도 묵묵히 각자 흩어졌다. 일하면서 너무 감정을 소진한 탓인지, 다른 사람과 더 이상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가장 높은 실장이 우리를 계속 지켜본다. 한때 ‘언론고시’를 준비했다는 30대 중반 이 남자는 우리가 고객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다 듣고 있다. 그는 내가 계속 ‘무료’만 강조하기 때문에 자꾸 실패하는 거라고 지적했다. 또 “바꿨다고요?” “그랬어요?” 등 ‘해요’체를 남발하는 철수의 말버릇을 바로잡아주었다. 실장과 우리는 인터넷에서 ‘친구’ 사이다. 입사하자마자 실장은 내게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하더니, ‘친구 요청’을 했다. 그러고는 컴퓨터에 뜨는 대화창으로 지시를 내린다.

“이봐요. 아가씨. 나 이런 거 필요 없거든.”

협박성 말투로 대꾸하는 고객이 무서워 ‘알겠다’며 얼른 끊었을 때, 그는 모니터를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끌어당겨야죠. 필요 없다고 하면 다 끊을 거예요? 보라씨는 그게 약해요. 더 적극적으로 해보세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받아치라고 말한다. 설득하란다. 원하는 대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는 기지와 능력이 있다면 벌써 성공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일주일 동안 실적 한 건도 못 올려

4일째 되는 날, 철수가 오전 11시 넘어서야 출근했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사가 저보고 목 많이 쓰는 직업이냐고 묻더니 당분간 말을 많이 하지 말래요.”

전쟁에 나가는 병사에게 총알을 쓰지 말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철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하루 종일 고객과 통화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실적이 더욱 안 나왔다. 그날 실장은 그에게 연장근무를 시켰다.

들어온 지 1주일이 안 된 순미씨도 감기에 걸렸다. 지난주에 하루 결근했지만 아직 낫지 않았다. 거칠어진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다. 계속 불발이다. 6시가 가까워오자 손놀림이 더욱 바빠진다.

“아픈 것도 계획 세워서 아프세요.”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인 걸 알지만 어쩐지 가시가 있는 것 같다. 아파서 결근을 하는 경우 무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어지간히 아파서는 쉴 생각을 할 수 없다.

목을 많이 쓰는 우리는 물을 자주 마신다. 사무실 빈 책상 위에는 종이컵과 싸구려 녹차 티백, 커피믹스가 쌓여 있다. 퇴근할 때쯤이면, 녹차와 커피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실장 책상 가까이에 있는 녹차를 매번 가져오기가 눈치 보여 두 번 이상 우려내 마시기도 한다. 싸구려 녹차 티백을 여러 번 우려 마시면 쓴맛이 난다. ‘밥벌이’의 쓴맛이 이런 걸까?

공기도 탁하다. 30여 평 남짓한 사무실에 우리 1팀 다섯 명, 2팀 일곱 명이 있고, 경리가 두 명 있다. 10여 명이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사무실에 환풍기는 단 하나. 업무 시간에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출근 첫 날부터 목이 따끔거렸다.

“몇 건 했어요?”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실적’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시작되면 가뭄에 콩 나듯 나누는 대화가 다 ‘실적’ 이야기다. 전 국민의 관심거리였던 천안함에 관한 이야기조차 한 일이 없다. 우리는 기본급 90만원에 만근수당 10만원까지 100만원을 받는다. 목표실적이 한 달 50건 계약인데, 이걸 못 올린다고 월급이 깎이는 것은 아니다. 목표실적 50건에서 10건을 더 올릴 때마다 10만원이 추가된다. 그런데 우리 중에 영선 언니만 빼고 나머지는 다 기본 목표를 채우지 못한다. 당연히 수입이 100만원이 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한 달 20일 내내 하루 평균 3건 이상 계약을 따내야 한다. 영선 언니만 이걸 해낸다. 에이스인 그녀도 기복이 있는 편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한 달 내내 유지하기란 힘들다. “컨디션이란 게 날마다 좋은 게 아니잖아. 미치도록 안 되는 날도 많아.”

30대 중반의 주승씨(가명)는 경력을 인정받아 건당 월급을 받는다. 기본급은 적용하지 않고 IPTV 한 건 유치할 때마다 2만원을 받는다. 고객이 IPTV에 가입하면 약정 기간 3년간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약 60만원인데, TM에게 2만원이 돌아가는 것이다.

“나 2주 동안 30만원밖에 못 벌었다. 큰일이야.” 주승씨가 말했다. 자신이 있어서 건당 보수를 받기로 한 건데, 생각대로 잘 안 된다고 한다. 이 회사는 주승씨가 다니던 곳에 비해 고객 가입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고지해야 할 정보도 많고, 지켜야 할 규칙도 많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주승씨는 매일 점심으로 1000원짜리 김밥 두 줄을 먹었다. 열 살도 더 어린 철수에게 몇 만원씩 꿔 달라 아쉬운 소리도 했다. 며칠 뒤 그는 결국 그만두었다.

입사를 위해 면접을 볼 때 실장은 “열심히만 하면 월 250만원에서 300만원은 갖고 갈 수 있다”라고 했다. 내가 학원강사 경력이 있어 잘할 테니, 성과급을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현실은 달랐다.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 동안 나는 겨우 한 건 실적을 올렸을 뿐이다. 그것마저 하루 뒤에 취소당했다.

초보가 인센티브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열심히 해도 쉽게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 달을 꽉 채워 일했다고 해도 50건 실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험업계의 경우 월 300만원에서 500만원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텔레마케터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지간한 관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100만~120만원 벌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주 5일 근무, 시간도 일정하고, 고된 육체노동도 아니지만 사무실 사람 모두 ‘오래 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솔직히 배울 게 없잖아.” 영선 언니가 말했다. 회사가 집에서 가깝고 근무시간도 일정해서 양육비라도 벌어볼까 시작한 일이었지만, 수입이 적어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경기도 한 전문대학을 휴학 중인 철수는 군 제대 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호텔 도어맨, 지하철 외판원을 거쳐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은 친구 따라 골프장 캐디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영선 언니나 철수·주승·순미 씨 같은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는 걸까? 전화로 판촉을 하는 텔레마케팅 회사나 고객의 불만사항 등을 처리하는 콜센터는 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 등장하기 시작해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확산되었다. 텔레마케팅 업체들을 대변하는 한국컨텍센터협회에 따르면 지식경제부에 신고한 업체만 3만5000개에 이른다. 상담원 대략 60만~80만 명이 종사하고 있고 매출 규모는 11조원으로 추산된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텔레마케터 인권상황 실태보고서〉를 보면 신고를 하지 않고 영업하는 일시적인 텔레마케팅 업체까지 합할 경우 100만명 가까운 근로자가 텔레마케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현재 텔레마케팅을 포함한 콜센터 업체 중 금융·보험업이 4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통신·유통서비스가 22%, 제조, 도·소매업, 공공행정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텔레마케터라는 직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성별·학력·결혼 등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그나마 환영받는 몇 안 되는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콜센터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이 90%가 넘는다. 근무시간이 일정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며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인 요소가 된다.

늘어나는 콜센터, 열악해지는 노동환경

그러나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성을 이용해 이윤을 얻는 콜센터 산업에서 실제 근로자들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인권위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텔레마케터 74%가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37%는 ‘언어를 통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과 폭언은 노동자에게 큰 스트레스와 감정적 소진을 가져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당사자의 삶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텔레마케터의 근무 여건은 전반적으로 열악하다. 상여금을 포함해 세전 월평균 임금은 2007년 기준 134만2000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산업 평균(191만3000원)의 70%에 불과하다. 인권위의 면접조사 결과 3~4개월 근속이 일반적이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 간접 고용인 위탁파견과 특수고용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텔레마케터 중 비정규직 비율은 90%에 육박한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지난 2001년에 보험회사 텔레마케터를 중심으로  ‘전국텔레마케터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위탁계약을 한 특수고용 형태지만 명백히 사용-종속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회사 측은 이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보험설계사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회사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노조 설립 기도는 무산됐다.

콜센터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개선 움직임은 별로 없다. 앞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인권위는 여성 감정노동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감정노동 대응 매뉴얼을 구축하고, 텔레마케터들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휴게시설 등을 마련할 것, 휴식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할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사업주의 예방 및 조치 의무’를 규정했지만 구체성도 없고 현실적인 구속력도 없다. 인권위가 텔레마케터 실태조사를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감정노동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된 것이 없고, 근로 환경도 나아진 게 거의 없다. 텔레마케터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04년 통신 부문 노사가 콜센터 노사선언을 공식 발표했다. 콜센터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 노동시간과 작업 부하, 임금 및 부가급여, 훈련 등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0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텔레마케터들도 저임금, 건강을 위협하는 작업 환경, 그리고 감정적 학대에 방치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

※ 〈시사IN〉 대학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기사들의 전문은 2월 초 홈페이지(www.sisainlive.com)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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