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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늪’으로 전락한 민노당

민주노동당의 낮은 득표율은 예고된 참패였다. 예견된 일은 또 있다. 차라리 당을 쪼개자는, 분당론이다. ‘진보의 늪’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기로에 선 민노당은 과연 쇄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노순동 기자 lazysoon@sisain.co.kr 2008년 01월 07일 월요일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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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지난해 9월28일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대선 비전을 선포하는 권영길 후보(가운데)와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
 
 
파열음은 격렬했다. “위를 가득 채운 기생충들에게 잠시 대장 쪽으로 내려가 있으라 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기생충의 수가 너무 많아 숙주의 생명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4년 전 민노당을 탈당한 진중권씨는 최근 당의 다수파인 ‘자주파’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시사IN 한향란
“자주파는 분단 현실의 산물이기는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노당은 진보 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 주체도, 토론 주체도, 진보의 주체도 아닌 종북(從北) 주체일 뿐이다.”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당원인 홍세화씨의 발언 수위도 그에 못지않았다. “당권파인 자주파 또는 주체파는 분단 현실의 산물이기는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노당은 진보 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 주체도, 토론 주체도, 진보의 주체도 아닌 ‘종북(從北) 주체’일 뿐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자기들끼리 폐쇄회로를 이루고 있으며 당내 헤게모니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는 이유에서 광신자, 사교(邪敎) 집단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민노당의 대선 후폭풍이 거세다. 성적표는 참혹했다. 원내 제3당, 그래서 기호 3번이었던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는 고작 3%를 얻었다. 유권자들은 ‘미래에 투표하라’는 민노당의 호소에 답하지 않았다. 득표수는 민노당 당원 8만여 명의 고작 아홉 배인 72만명. 지난 대선의 득표수 95만 표와 비교할 때 20만 표 이상 줄었다. 탄핵 역풍의 수혜라고는 하지만 2004년 총선에서 무려 277만 표(정당 득표의 13%)를 얻었던 것을 환기해보면 ‘패배가 아닌 몰락’이라는 진단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제2당으로 도약하겠다”라고 큰소리치던 민노당은, 이제 없다. 

연초 단배식에서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을 걱정시켜서 죄송하다”라며 연말 시끄럽게 터져나온 민노당의 파열음을 민망해했다. 며칠 뒤 그는 “더 이상 분당 얘기는 하지 말라”며 논의 확산에 쐐기를 박고자 했다. 그러나 분당이냐, 탈당이냐를 결정할 운명의 시간을 향한 초침은 여전히 숨가쁘게 째깍이고 있다.

원내 제3당의 득표율 고작 3%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가치에 대한 일반인의 평균 감수성을 가늠할 수 없었던 시기, 정당투표제가 도입된 후 민노당이 거둔 성취는 눈이 부셨다. 지역구 의원 1명과 비례대표 8명이라는 숫자는 보기에도 든든했다. 굳이 민노당이 내거는 깃발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가 우편향이라고 여겨온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고대하며 마당을 열어주었다.

이제 민노당은 애물로 전락했다. 진정한 진보 정당의 출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오명마저 뒤집어쓰고 있다. 대표적 진보 학자로 불리는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 “민노당은 민주적 선거 경쟁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이다”라고 꼬집었다.

   
 
ⓒ시사IN 윤무영
“패권주의가 가장 큰 적이다. 비대위 출범 이외의 다른 길은 파국의 길이다. 직무대행 체제로 총선까지 가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그때는 나도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노회찬 의원
 
 
민노당은 돌아선 표심을, 혹은 떠나간 당심을 붙잡을 수 있을까. ‘분당을 각오한 당 혁신 운동’을 천명한 평등파 측이나, ‘종북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분당 명분 쌓기이자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 공세일 뿐’라고 맞받아치는 자주파 측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진보정치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층의 23.5%만이 권영길 후보에 투표했다. 총선도 암울하다. 민노당에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고작 5.8%에 불과하다. 

제대로 대선 평가를 하기도 전에 내부에서 ‘종북당’ ‘민주노총당’이라는 돌팔매질을 맞은 당 지도부의 항변은 만만치 않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29일 중앙위원회는 물밑 접촉을 통해 겨우 합의해놓은 비상대책위를 띄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길이 있어 보였다. 대선 직후 당 지도부로부터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주문을 받은 심상정 의원은 ‘당을 살릴 수 없는 조건에서 비대위 체제를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비대위 임무와 관련된 중앙위 차원의 권한을 위임해달라고 요구해 일정한 타협안을 받아냈다. 물론 그가 요구한 ‘정파 수장 비례대표 불출마 선언’은 받아내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9일 중앙위에서 평등파의 주요 의견 그룹인 ‘전진’이 당 지도부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청산 등을 들고 나오고, 자주파도 자기들의 양보안을 거둬들이면서 회의는 파행으로 흘렀다. 12시간 밤샘 회의를 거쳤으나 비대위는 꾸려지지 못했고, 천영세 의원을 대표 직무대행으로 하는 임시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갈등이 외부로 불거진 것은 대선 이후이지만 그전부터 당의 분열은 봉합이 어려운 수준으로 격화되었다.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이미 총선비례대표 명단이 돌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갔다. 대선 평가도 없이 대선 이튿날인 12월20일부터 비례대표 선출 관련 일정이 시작되는 일정표도 당원의 분노를 자아냈다. 자주파가 대선이야 어떻게 되든 총선의 정당 투표를 통해 ‘떼어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는 비례대표를 선점하려는 한다는 의혹이었다.

평등파가 보기에 당은 여러 차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민노당의 정책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 조승수 소장에 따르면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자는 발언과 북한 핵을 자위권의 문제로 여기는 발언 등은 민노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중, 삼중의 회계장부를 써온 사실이 드러나 깨끗한 정당이라는 이미지에 금이 간 것도 뼈아팠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민노당 간부는 당원 수백 명의 신상 자료를 북한에 넘겼다는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당에서는 또렷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민노당의 이미지가 전근대적·시대착오적 친북당으로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대선 때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슬로건은, 논란 끝에 선거 포스터 2000만원어치를 폐기 처분하는 지경으로까지 비화했다. 평등파 최대 의견 그룹인 ‘전진’은 대선 실패의 책임을 공유한다는 뜻에서 스스로 정파 수장들의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주파에도 동참하라고 요구했으나 다수파인 자주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을 결정적으로 절망케 한 사건은, 권영길 의원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 그 자체였다.  비단 권 후보의 대선 경쟁력이 낮아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는 참신한 진보의 이미지를 설파하는데 적절한 선수가 아니었다. 브라운관에서 그는 듬직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평등파가 보기에 권 의원이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오판’이 아니라 ‘협잡’의 결과였다.

   
 
ⓒ시사IN 안희태
“자주파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는 연결되어 있다. 비민주적 패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더 상위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일 것이다.”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
 
 
당내 평등파의 의견 그룹인 ‘전진’의 집행위원장 김종철씨는 “자주파는 비겁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역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초빙 1순위는 노회찬 의원, 그리고 심상정 의원이다. 자주파도 대중적으로 누가 소구력이 있는지, 동원력이 있는지 뻔히 알고 있다. 물론 심 노가 자파의 노선을 구현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파 후보를 냈어야 한다. 그들은 오히려 노 심의 힘이 커져서 자파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고, 권 후보를 공개 지지함으로써 뒤에서 자파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했다”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그가 보기에 경선 과정도 비겁했다. 경선 과정에서 유포된, 노 의원의 통일관을 문제 삼는 이른바 ‘노회찬 동영상’은 너무 악의적이었다는 것이다. 효순?미선 양 추모 집회에서 노 의원이 한 말의 일부만 편집해 그가 민족 모순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노회찬 동영상 사건은, 일선 자주파 활동가조차도 “그건 심했다”라고 고개를 흔들게 만들었다. 물론 출처가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다.

비판의 과녁이 된 자주파는, 제기된 의혹들이 터무니없다고 중장한다. 대선 때 유력한 자주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냉정하게 대선 실패를 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난데없이 종북주의를 들고 나온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당이라는 딱지에도 다른 감수성을 나타냈다. 민노당 창당의 기반이 되었던 긴밀한 관계를 일컫는 애칭이니,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며 오히려 희망적인 애칭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파가 권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도 본선 경쟁력과 노선에 대한 합치도 등을 따진 결과이지, 다른 해석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뉴시스
지난해 12월29일 민노당 중앙위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노당 지도부. 이날 비대위 출범에 실패함으로써 민노당은 격랑에 실린 난파선 신세가 되었다.
 
 
양측의 주장을 접할수록 타협이 가능할지 막막할 지경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종북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마당에 당사자가 그것을 인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종북이란 친북도 아니고, 북한을 추종한다는 뜻이니 여간 고약한 딱지가 아니어서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는 이 명칭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전진’의 김종철 집행위원장은 “종북과 패권은 연결되어 있다. 민주와 상식을 뛰어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떳떳한 것은, 자기들이 그것을 뛰어넘는 상위 가치에 복무한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기제가 있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종북주의보다는 패권주의에 방점이 찍히는 기색이다. 노회찬 의원은 “당내 자주파로 불리는 모든 동지가 종북적이라 보지는 않지만 일부 그런 언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종북 문제를 짚으면서도 “당 강령에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므로 문제되는 행위가 있다면 당이 해결하면 된다. 종북주의보다 더 절망적인 부분이 패권주의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12~13세 아이들까지 입당시키고 주민등록상 한집에 10명 이상 기거시키면서 다수파를 만들고 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비록 패했지만 경선 당시 심상정 의원이 권 후보와의 결선에서 47% 가까이 득표한 데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도 있다. 자주파가 권 후보를 공개 지지했는데도, 자주파에 가까운 평당원 가운데 상당수가 심 의원에게 표를 던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 현장 활동가는 “당직 선거 때는 ‘윗선’의 뜻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노와 심의 경우처럼 이미 정보와 이미지가 노출되어 있는 경우 당원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의 구조가 밑바닥 당심만이라도 제대로 대변한다면, 정파 간 경쟁이 당 전체의 판단을 그르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민노당은, 당 지도부가 당 바깥의 민심에 반응하지 않는 주관주의와 정파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정파주의의 늪에 빠져 있다는 절망이 뿌리 깊다.

   
 
ⓒ시사IN 윤무영
“냉정하게 대선 실패를 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난데없이 ‘종북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분당의 명분 쌓기이거나 정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김창현 (전 민노당 사무총장)
 
 
‘염증 깊으나 민노당을 포기해도 될까….’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1월3일 노회찬 의원은 ‘분당보다 탈당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라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염증에 지쳐 당원들이 빠져나가고, 민노당이 쇄신할 기회를 잃으면 양쪽 다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은 “즉각 중앙위원회를 소집해서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 비대위를 출범시키지 않는 다른 길은 파국의 길이다. 직무대행 체제로 총선까지 가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라며 그때는 자기도 어디에 있을 지 알 수 없다라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굳이 노회찬 의원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1월 중순 이후까지 비상 기구가 출범하지 못할 경우 민노당은 가늠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내부에서 격렬히 갈등하는 정파 이외에도 당 바깥에서 이번 기회에 진보의 구심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결집하고 있어서이다.

이를 지켜보는 평당원들의 어조에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진보누리 등 관련  사이트에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면서 거취를 결정할래요. 딱히 갈 데도 없네요”라는 자포자기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또 ‘(민노당이라는 간판 아래) 말라죽거나, 나가서 얼어죽거나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결단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고종석씨는 대선 직후 민노당에 쓴소리를 쏟아냈으나 일부에서 ‘분당 불사’의 흐름이 감지되자 오히려 “헤어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건곤일척의 자기 쇄신을 해달라”고 어르고 나왔다. 그만큼 이대로 쪼개질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깊다. 

서울시의 유일한 민노당 지역구 의원인 강북구 최선 의원은 요즘 상황에 대해 “울고 싶다”라고 말했다. “눈물이 난다. 아는 분들이 전화해서 분당되느냐고, 탈당하느냐고 묻는다. 민노당이 어떤 당인데. 위에서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 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 최 의원은 민원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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