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오후 5시, 홍익대 홍문관 가람홀에서 단과대 학생회장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나서서 문제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자리였다. 학교 측은 참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숙희 민주노총 공공노조 홍익대 분회장 등 노조 관계자 6명도 자리했지만, 총학생회가 마련한 자료집을 읽더니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이 분회장은 “학교를 만난 건지, 학생회를 만난 건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학 본부 측 논리를 빼곡히 적은 자료집이 배포됐기 때문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 100여 명 사이에서 총학생회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예비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현 총학의 온건적인 태도가 문제다. 총학이 처음부터 확실히 입장 표명을 했으면 여기까지 안 왔다”라고 말했다. 외부 세력으로 지목된 민주노총 공공노조와 함께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법학과 조상훈씨는 “‘외부 세력’을 통해 이 소식을 처음 들었다. 민주노총이라도 와서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니까 이 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갑론을박의 결론은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자’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김용하 총학생회장은 “계속해서 본부 편이라고 매도당하는 게 억울하다”라고 말했지만, 끝내 ‘외부 세력’ 발언을 거두지는 않았다. “투쟁도 좋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 그건 내 신념이다.”
김 회장의 신념은 그의 공약에도 나타난다. 45대 총학생회는 선거운동부터 비운동권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요 공약 중 도서관 관련 복지가 눈길을 끈다. 핵심은 소음 줄이기.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우선 과제로 내놓았다. 농성장의 투쟁으로 망쳐진 ‘학습권 침해’의 실체가 여기 있었다. 총학생회 때문에 논란이 엉뚱하게 튀어서 그렇지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홍익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대학 상당수가 이로 인한 내홍을 앓고 있다(26~27쪽 딸린 기사 참조). 홍익대는 대학 측의 일방적인 대응이 화를 더 키운 경우다.
홍익대 청소 노동자 170명 중 140여 명이 민주노총 공공노조 산하의 노조를 설립한 건 지난 12월2일. 노조가 있는 다른 대학에 비해 20만원 가까이 임금이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용역업체 인광엔지니어링과 향우종합관리에 속한 이들 미화원의 한 달 임금은 75만2000원이다. 하루 7시간 노동을 계산한 결과지만, 노조원들은 실제 노동 시간이 10시간이라고 주장한다. 김금옥씨(58)는 “하루 3시간을 대기시간으로 빼놓고 안 세는데, 사실 그때도 부르면 언제든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도급 형태이기는 하지만 학교 직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받기도 했다.
노조가 결성되자 학교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청소노조 출범식에 참석한 학생에게 징계를 주겠다고 한 데 이어, 부모에게까지 전화해 압박을 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노조 설립 다음 날인 12월3일, 학교는 업체 측에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니 후속 업체를 공개 입찰하겠다고 방침을 전했다. 공공노조 측은 통상적인 절차와 달리 노조 설립 바로 이튿날 그런 통보를 한 게 노조 설립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학교는 입찰 결정 전까지 석 달간 계약을 연장하자고 용역업체에 제안했다. 이 기간 업체는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놓고 두어 차례 교섭을 벌이다 중단한 뒤 노조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학생 간담회가 진행되던 시각, 홍익대 앞 주점에서는 ‘날라리 외부 세력’들의 트위터 번개 모임이 있었다. 외부 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이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모인 즉석 모임이다. 배우 김여진씨가 참여하면서 판이 커졌다. 김씨는 앞서 농성장을 지지 방문한 뒤 ‘총학생회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학생들 뒤에 숨은 어른들이 정말 비겁하다. 입장을 떠나 학생이 이렇게 뭇매를 맞고 있는데 나서서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이들 ‘날라리 외부 세력’은 모금 활동과 일일호프 등의 아이디어를 모아 노조 활동을 후원할 예정이다.
김씨 말대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쥐고 있는 대학본부 측은 계약이 만료된 용역업체 문제에 더는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 교수들도 말이 없고 교직원 노조도 아직까지 공식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공공노조 관계자는 “아무리 본부와 대화가 차단된다고 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실무 라인에서 교류가 오간다. 이번에는 그런 게 아예 없다”라며 학교 측 태도에 의아해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1월13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학을 졸업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참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라며 학교 당국에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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