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미 동맹 우선 정책으로 치달은 이유에 대해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동맹이 훼손되었다는 보수 집단의 판단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북 대화를 축으로 삼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접근에서 벗어나 대북 압박을 통한 현상 변경(핵문제 해결뿐 아니라 북한 붕괴 유도)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데, 미국 카드를 통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 중국이 우리 의도대로 움직여줄 거라고 봤던 것이다.
‘협력 동반자’ 중국이 돌아선 이유
초기에는 중국도 나름 신경을 썼다. 2008년 8월 이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쭐해진 한국 정부가 계속 한·미 동맹 우선 정책으로만 치닫자, 중국이 거꾸로 북한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이 버린 햇볕정책을 차용해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하는 대북 포용정책으로 전환해버린 것이다. 바로 2009년 7월의 대북정책 변경이다. 그러고 나서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주요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정부 외교안보팀 내 강경파들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해 9월 조어도(센카쿠열도)에서 벌어진 중·일 간 선박 충돌 사건을 계기로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무기화해버리자, 비로소 중국의 존재감에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부 주변에서 중국 전문가를 찾기 위한 열풍이 불었고, 올해부터 대중국 정책이 더 온건하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있었던 한·일 군사 협력 움직임에서 보듯, 정부가 여전히 중국을 상대로 ‘힘의 외교’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남북은 지금 동병상련의 처지다. 날로 몸집을 불려가는 중국의 위용 앞에서 북한은 한편으로는 중국의 등에 올라타면서도, 그것이 자칫 호랑이 등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한번 맺으면 역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 그래서 한국·미국·일본을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미 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줄 거라는 가설에 의존해 동맹이라는 외줄에 모든 것을 걸고 매달렸으나, 지출은 많았으되 소득이 별로 없다. 오히려 북한 핵 상황은 악화되었고, 이제는 중국이 주한 미군과 한·미 동맹 해체를 정조준하는 상황이 됨으로써 우리 안보 자체가 매우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정학적 안목으로 냉철하게 분석한다면 활로는 분명히 있다. 먼저 북한이 지난해 연평도 사건 이후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불러 앞으로 남한·북한·미국 3자 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배경이 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올해 추구하는 평화협정 혹은 평화체제 안이 지난 1990년대 중반 당시 카네기재단의 셀리그 해리슨 연구원에게 제안했던 ‘새로운 평화체제 안’(나중에 북한은 이를 평화협정에 이르기 전의 잠정협정이라 했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평화협정=주한 미군 철수’ 피하는 법
당시 북한은 북한군과 미군이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상호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남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두 개 채널을 통해 평화보장 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상 주한 미군을 당장 철수시킬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영구히는 아니지만 어느 시점까지 미군 주둔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밝혔다(월간 〈말〉, 1995년 11월호 ‘방북 미국 카네기재단 연구원 셀리그 해리슨 인터뷰’).
이처럼 정부가 대중국 정책을 좀 더 온건하게 바꾸고, 북한과 대화를 통해 평화체제에 대한 태도를 조정해간다면 정부 내외의 보수 세력이 걱정해온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라는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길을 놔두고 일부 보수 세력이 얘기하는 대로 미군을 붙잡기 위해서는 한국이 이스라엘처럼 항구적 안보 불안 국가가 되어야 한다든지, 통일의 시대가 다가왔다든지 하는 무책임한 ‘데마고그(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휘둘리다가는 동북아의 지각변동에 대한 대응 타이밍을 놓쳐 더 큰 안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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