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은 됐지만 상처는 남았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결국 사퇴를 선언하면서 당·청 갈등 역시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모두에게 ‘레임덕’을 떠올리게 했던 당·청 충돌에서 다친 이가 없을 리 없다. 대통령을 일단 논외로 하면,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파동에서 가장 상처를 받은 인물로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인사 실패를 두고 ‘임태희 책임론’이 봇물 터지듯 나온 탓이다.

3선 의원 출신인 임 실장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크게 척을 진 사람이 없기로 유명했을 만큼 손꼽히는 친화력을 지녔다. 그래서 이번에 터져 나온 ‘임태희 비토’ 정서의 폭과 깊이에는 당사자인 한나라당 의원들 스스로도 놀라는 분위기다. 단순한 인사 실패 책임론으로만 보기에는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시스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월12일 결국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그간 임 실장에게 권력이 쏠린 탓에 이번을 기회로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인사권이다. “임 실장이 온 후로 인사 때마다 문제가 불거졌다”라는 불만은 한나라당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고위직에 있는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권력이란 게 그렇다. 집중되면 견제받는다. 임 실장이 이번에 대신 매를 좀 맞았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누구를 ‘대신’해 매를 맞았다는 것일까. 여권에서는 임 실장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지원군으로 알려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SD)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임태희 실장·김명식 인사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청와대 인사 라인은 정권 출범시 박영준 당선자 비서실 총괄팀장(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실질적인 인사를 총괄하던 때를 연상시킨다”라고 말했다. 김명식 비서관은 SD의 반대파가 ‘영포 라인’이라고 되풀이해 지적해온 인물이다.

ⓒ뉴시스정동기 후보자의 낙마로 '책임론'에 시달리는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 일각에서는 "대신 매를 맞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월요일(1월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가 ‘정동기 불가’를 전격 의결한 것을 두고 SD가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는 이야기는 한나라당 안에 파다했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한나라당 의원은 “처음엔 그랬을 수 있지만, 상황을 설명하니 (SD 측도) 이해를 했다. 감정적 앙금이야 남았겠지만 오해는 없다”라고 말해, 이런 관측을 사실상 시인했다. ‘정동기 불가’를 의결한 최고위의 진의야 어쨌든, SD 측에서 이를 일종의 ‘공격’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거사’ 직후 불거졌던 ‘이재오 - 안상수 교감설’ 역시 진의 여부를 떠나 의미심장하다는 평가가 한나라당 내에서 나왔다. SD와 오랜 경쟁 관계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친구사이인 안 대표와 합심해 임태희 실장을 겨냥했다는 ‘파워게임’의 전형적인 구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오 장관 측은 “왕의 남자라고 할 때는 언제고 파워게임이라고 하나”라고 일축하며, 교감설을 기사화한 언론사에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파워게임’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두고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SD 대 이재오’라는 현 정부 권력 핵심부의 오랜 경쟁관계를 보지 않으면, 임 실장이 이 정도로 ‘세게 두드려 맞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은 당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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