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당신은 지금 강원랜드 슬롯머신 앞에 있다. 손에 쥔 돈은 1만원. 이 돈을 한 번 슬롯머신에 넣었을 때, 돌아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액수는 얼마일까?

장면 둘. 당신은 지금 로또를 사러 왔다. 1만원어치를 살 계획이다. 토요일 추첨이 끝나고 손에 쥘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은?

장면 셋. 당신은 지금 민간 보험사에서 10년 만기 암보험을 들고 있다. 당신이 암에 걸릴지 어떨지 지금은 알 수 없다(암에 걸릴 걸 알 수 있다면 아예 가입부터가 되지 않는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0년치 총 보험료를 1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기대할 수 있는 액수는?

이 비교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슬롯머신을 당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잭팟을 바라겠지만 보험료를 타기 위해 암에 걸리고 싶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우선은 그런 차이(도박과 위험 분산이라는 차이)를 접어두고, 확률적인 기댓값만 따져보자. 자, 얼마일까?
 

ⓒ시사IN 안희태보험사들이 지급률을 ‘영업 비밀’이라며 감추는 통에 중환자(왼쪽)가 있는 가정도 잘 따져보지 않는다.


민영 보험, 지급 하한선 없어

정답은 슬롯머신 7500원, 로또 5000원이다. 이에 비해 진보신당 건강위원회가 현재 시판중인 민영 암보험의 지급률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암보험은 3000원 안팎이다.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로 악명 높은 슬롯머신이나 로또의 수익률이야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암보험은 그보다도 훨씬 더 ‘손쉬운 장사’라는 계산이 나왔다.

법적·제도적으로 지급률 하한선이 정해진 두 사행산업(카지노 머신게임은 75% 이상, 로또는 판매액의 50% 이상을 당첨금으로 쓰도록 돼 있다)과 달리, 민영 보험은 별다른 지급률 하한선이 없다. 더욱이 보험사들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지급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보험 가입자는 ‘혹시 큰 병에 걸려서 생계가 순식간에 휘청거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에 보험사의 지급률을 따질 겨를이 없다. 따져본다 해도 끝도 없는 약관과 가입 조건과 각종 ‘영업 비밀’에 가려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는 문제다.

보험은 질병·상해 등이 발생할 확률을 따져 그 위험을 분산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보험사 수익은 질병·상해 등 발생률을 어느 수준으로 잡는가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보험사가 자체 경험 통계를 근거 삼아 상정하는 이 발생률 역시 당연하다는 듯 영업 비밀이다. 보험사 외부에서 보험사 지급률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유다.

 

 

 

 


예외가 있다. 암이다. 암은 건강보험공단 암 등록 자료를 근거로 발병률을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질병이다. 그래서 암에 대해서만은 보험사 자체로 설정한 발생률을 알지 못해도 지급률을 계산할 수 있다. 즉, ‘암보험 가입자가 보험사에 1만원을 냈을 때 얼마를 돌려받을지’ 기댓값을, 보험사 영업 비밀을 알 필요 없이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진보신당 건강위원회가 한 작업이 이것이다.

진보신당은 4개사 암보험 상품 5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라이나생명의 순수보장형 플러스암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이 보험의 주계약에만 가입할 경우, 일반 암 진단이 나오면 4000만원, 기타 암은 4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40세 남자가 이 보험에 가입하면 월 납입 보험료가 1만6200원이다. 40세 남자 1000명이 10년간 보험료를 낸다고 가정할 때, 보험사가 받는 돈은 총 19억4400만원이 된다.

2008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40~49세 남성 중 새로 암에 걸리는 환자는 1000명당 19.1명이다. 이 중 83.6%가 일반 암에, 16.4%가 기타 암에 걸린다. 보험사가 총 6억5000만원을 지급하게 된다. 하지만 첫 2년간은 절반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다. 4000만원을 더 빼야 한다. 즉, 보험사가 최종적으로 지급해야 할 돈은 6억1000만원이다. 받는 돈 대비 31.4%만 지급하는 셈이다.

 

 

 

 

민영 보험사들은 광고(위)를 통해 갖가지 혜택을 주는 것처럼 선전한다. 하지만 정작 그 상품의 핵심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가입 연령대와 기간이 달라져도 지급률은 거기에서 거기다. AIA생명의 뉴 원스톱 암보험은 최소 가입 기간이 20년이다. 이 보험을 30세 남성이 가입해 49세까지 유지한다고 해보자. 보험료는 1만2000원, 암 발생은 30대 10만명당 6.3명, 40대 19.1명으로 총 25.4명이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이 보험의 지급률은 35.3%가 나온다.

ACE화재의 에이스원더풀 암보험은 3년 만기 상품이다. 40세 남성이 가입한다고 보고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지급률은 20.8%가 나온다. 3년 만기 상품이면서도 가입 1년 내에 암 진단이 나오면 절반을 깎는 조항이 있어 지급률이 더 떨어진다. 흥국생명 3대플러스 건강보험은 분석 대상 상품 중에서는 가장 지급률이 높았다. 44%였다. 그래도 여전히 로또만 못하다.

이는 암보험이라는 특정 상품군만을 분석한 것이지만, 발병률이 가장 잘 알려진 질병에 대해 적용하는 지급률이 이 정도라면, 발병률이 국가 통계로 잡히지 않고 온전히 보험사의 ‘경험적 통계’에 의존하는 기타 질병의 지급률은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수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암보험의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이런 정도의 지급률로도, 여타 상품에 비해 수익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얘기로 들린다.

“국가 통계보다 우리 통계가 더 정확하다”

진보신당이 만든 분석 자료를 라이나생명과 AIA생명에 보내 반론을 받아봤다(나머지 두 보험사는 답변을 보내지 않거나 담당자가 계속 부재 중이었다). 두 회사 모두 “보험은 리스크 관리 상품이므로, 지급률보다는 실제로 일이 닥치는 경우에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반론했다. 보험은 위험 분산을 위해 가입하는 것이므로 위험에 처하지 않은 소비자의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지만, 소비자가 감수하는 손실이 왜 그렇게 크며, 그것이 왜 고스란히 보험사의 이윤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은 “보험사들은 보험이 갖는 위험부담의 기본 개념부터 호도하고 있다”라고 재반박했다. “보험사가 위험부담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보험 가입자가 서로 위험을 나눠 지기 위해 갹출한 돈에서 보험금이 나오는 것이다. 보험사는 이 위험 분산을 대행하는 행정 비용만을 지불하면서 과도한 이윤을 챙겨간다.”

또 두 회사 모두 “보험료를 산출할 때는 국민 통계가 아닌 보험사업을 하면서 축적한 회사별 경험 통계를 사용한다”라고 밝혔다. AIA생명은 자사의 발병률 통계가 국가 통계에 비해 높게 책정됐다는(즉, 암에 더 많이 걸릴 것으로 보고 보험료를 더 높게 잡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랜 경험과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경험률이기 때문에 암 발생 현황을 훨씬 현실적으로 반영한 수치다”라고 주장했다. 샘플의 크기와 표본의 적절성에서 국가 통계보다도 일개 보험사 통계가 더 정확하다는 ‘과감한’ 주장을 한 셈이다.

 

 

 

 

 


이런 주장에는 실제 보험 가입자들은 평균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건강상 이상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암 발병률은 전체 평균보다 높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가입자와 사업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므로 사업자에게 ‘플러스알파’를 얹어 이를 보정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존재한다. 이상구 사무처장은 “보험사는 보험 약관과 모집인 규정 등을 통해 건강한 사람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걸러낸다. 이미 병이 있는 사람과 고령자는 아예 가입 대상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걸러낸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암보험을 들면 전체 평균보다 오히려 더 발병률이 낮아지는 게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라이나생명은 또, “보험금 지급률의 적정성은 전체 보험료 대비가 아닌 위험보험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당사의 위험보험료 대비 지급률은 100%에 육박한다”라고 반박했다. 점점 말이 어렵다. 일반 시민이 보험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질리는 데도 이유가 있다. 찬찬히 따져보자. 위험보험료는 또 뭘까.

33쪽 표를 보자. 보험료는 크게 순보험료와 부가보험료로, 순보험료는 다시 위험보험료와 저축보험료로 나뉜다. 위험보험료는 ‘질병 및 사고가 발생할 때 지급하기 위해 보험사가 준비해둔 돈’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소비자 처지에서는 이 돈이 가장 중요한 보험 지급 재정인 셈이다. 하지만 이 위험보험료가 전체 보험료 대비 얼마인지, 위험보험료 비율을 그렇게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등은 아니나 다를까 영업 비밀이다. 두 회사 모두 위와 같은 질문에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보험이라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 보험사가 소비자의 건강 정보를 모른다는 ‘정보 비대칭’을 주장하지만, 정작 가장 근본적인 정보 비대칭은 엉뚱한 데 있었다. 보험이 특정 위험을 평가해 이를 분산·대비하는 상품이라면, 소비자는 보험사가 자신의 위험을 어느 수준으로 판단하는지 알아야 그 상품을 선택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핵심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지급률은 168%

보험사는 위험보험료 대비 지급률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마다 언론에 발표되는 ‘손해율’도 바로 전체 보험료가 아닌 위험보험료 대비 자료다. 하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내가 낸 돈 1만원 중 얼마를 돌려받는지가 중요하다. 보험사가 알 수 없는 근거와 비율로 책정해놓은 위험보험료 대비 얼마를 받았는지를 기준 삼아 상품을 따져보는 소비자는 없다. 위험보험료 대비 지급률을 봐야 한다는 반론은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의 주장인 셈이다.

30%대라는 민영 암보험의 지급률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공보험 체계인 국민건강보험과 비교해보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2009년에 우리나라 한 세대는 건강보험료로 92만원을 내고 155만원을 받았다. 1만원을 내고 1만6800원을 받은 셈이다. 민영 암보험보다 다섯 배 이득이다. 이 정도면 비교가 불필요한 수준이다.

1만원을 냈는데 1만6800원을 돌려받는 마법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국민건강보험은 가입자인 시민이 내는 보험료 액수만큼 기업과 국가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매칭 펀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내가 1만원을 내면 기업과 국가가 내는 1만원이 더해져 2만원 규모의 재정을 가진 보험이 된다.

여기에 유명 모델을 동원하는 판촉·광고비, 보험설계비 등이 거의 들지 않으므로 영업비용 역시 없는 편에 가깝다. 내가 낸 1만원에서 대규모 영업비용은 물론 주주 배당금까지 덜어내고 남은 돈으로 보험 재정을 운영하는 민영 보험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은 지급률 168%라는 수치가 가능하게 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은 총지출 34조9000억원 중 보험급여비로 33조7000억원을 썼다. 순보험료니 위험보험료니 하는 복잡한 구분에 신경 쓸 것 없이, 전체 지출의 97%가 가입자에게 돌아간 셈이다.

민영 건강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을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병원비를 절약할 수 있는지는 자명하다. 최소 12조원에서 보통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민영 건강보험 규모 중 일부만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려도,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34~35쪽 딸린 기사 참조).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가 기회만 있으면 주장하고, 민영 보험사들이 끊임없이 노리는 의료 민영화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의료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둘러싼 거대한 전선은 이명박 정부 임기 내는 물론 총선과 대선 두 번의 대회전이 준비된 2012년의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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