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공정성·신뢰성을 놓고 논란이 이는 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의 반칙은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폭스뉴스는 여론조사를 많이 이용한다. 지난해 9월3일 폭스뉴스에 보도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폭스뉴스는 이 보도에서 거의 60%에 이르는 미국인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인 것은 잘한 일’이라고 응답했다고 보도한다. 또 그 잘한 일에 대한 일등 공신으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꼽았다고 밝혔다. 폭스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 54%가 이라크 전쟁은 부시의 공로라고 말했으며, 현직 대통령 오바마의 공로라고 말한 응답자는 겨우 19%였다. 겉보기에는 공정한 리포트다.

그러나 설문조사의 질문 항목을 보면 가관이다. 폭스뉴스는 단순히 ‘이라크 전쟁이 옳았는가(right thing) 아니면 그릇됐는가(wrong thing)’라고 물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에 이런 말을 끼워놓았다.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제거하고,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서게 한 이라크 전쟁이 잘한 일이냐, 잘못한 일이냐?”

폭스뉴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여론조사를 하는 곳을 미국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공정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답변을 유도하는 조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뒤의 말은 그대로 두고 앞의 말을 “‘미군 수천명이 전사하고, 이라크 양민 수만명이 희생된’ 이라크 전쟁은 잘한 일인가, 잘못한 일인가?”라고 바꿔 묻는다면, 그 조사 결과는 앞의 조사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보통의 여론조사는 “이라크 전쟁은 잘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라고 묻는다.

ⓒXinhua폭스뉴스의 여론조사 결과는 반전 여론(위)과 달랐다.
이렇게 여론조사를 갖고 장난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미국 상위 2%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부자 감세 조치 기간 연장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진 지난해 8월, 폭스뉴스는 “부자에 대한 감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부자에 대한 감세 철회로 우리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부자에 대한 세금 감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반면 오바마가 의료보험 개혁을 한창 밀어붙이던 2009년에는 시민들에게 뜬금없이 “지금 세금 인상이 필요하나요?”라고 묻고는, 92%의 시청자가 이를 반대하자 “90%가 넘는 미국인이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엉터리지만 시청자가 “어, 정말!”이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채널을 고정하면 그걸로 족하다. 저널리즘의 원칙도,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 일단 지르고 본다.

기자명 최경영 (KBS 기자·미국 미주리대학 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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