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에세이스트)앞으로 5년을 수많은 의혹 속에서 뒷말을 듣느니 ‘미안하다’ 한마디만 하시면 당신의 죄는 깨끗이 용서받을 것 같네요. 경제만 살리면, 그동안 무슨 짓을 했든 국민이 용서할 준비를 하고 뽑았으니까요.
장로님 안녕하세요? 뭐, 지금은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할 듯싶습니다. 아직 대통령은 아니시고, 게다가 신앙심 더하기 인망과 사회적 능력, 재력까지 모두 갖추어야 현실적으로 장로가 될 수 있다는 건 우리 다 아는 사실이니 남성 기독교인으로서는 엄연히 영광된 직분, 불쾌하진 않으시겠죠. 

어쨌거나, 저는 사실 장로님께서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유난한 악감정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서울시장 직에 계시던 시절에도 서울 시민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계천이나 삼일고가나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곳에 살기 때문에 장로님이 마음먹고 바꾼 그 거리의 전후 모습을 조금 압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장로님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모두 똑같은 폰트에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의 간판이 좍 늘어선 청계천 거리를 보면 장로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도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아서 그때부터 저와는 참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피날레는 문제의 서울 봉헌 사건이었죠.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인천으로 도망쳤습니다. 인천공항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긴 아직 안전하려나? 그리고 장로님이 혹시나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땐 서울 정도로 끝나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몇 년 후 장로님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뭐 제정일치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봉헌은 시간문제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바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거, 정말로 하나님의 뜻 아니야?

ⓒ난나 그림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장로님의 당선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장로님에게 투표한 사람들조차 장로님의 도덕성을 믿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죠. 그리고 장로님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무슨 짓을 했든 용서할 준비를 하고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테니까요. 장로님을 지지해준 과반수 국민은 당신이 전과 14범이든, 위장 전입을 100번 했든, BBK에 서명을 1000번 했든, 황제 테니스를 라켓이 닳도록 했든, 당신을 용서할 겁니다. 단, 말 그대로 경제를 살리기만 한다면, 그들이 재미 좀 볼 수만 있다면.

그러니 이참에 성경 말씀을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되리라.” 시작될 5년을 모든 의혹 속에서 뒷말을 듣느니 이렇게 과반수의 국민이 장로님을 용서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는 지금, ‘여러 가지로 좀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옥시크린을 쓴 것보다 더 빨리 진홍이 양털로 표백될 것 같은걸요.

제가 좀 서글프게 느끼는 건 장로님과 우리가 믿는 그분께서는 평강의 왕,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분이실진대 장로님께서는 멀쩡한 등불 보고도 효율상 등불이 웬 말이냐 형광등으로 전면 교체해라, 싱싱한 갈대한테도 글로벌 시대에 갈대 재배는 한물갔으니 유실수로 바꾸라고 하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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