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 핵 문제가 다시 정체 국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초청해, 북한의 생각을 확인하고 3월 방미를 계기로 남·북·미의 공동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5년 전인 2003년 1월과 비교해보자.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 당선한 직후 한반도 형세는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당시는 제2차 북 핵 위기의 초입이었다.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이후 북한과 미국이 정면 대결을 하려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반면 지금은  북 핵 위기가 끝물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니, 입구와 출구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진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공통점도 눈에 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룸(공간)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2002년 12월28일 필자는 ‘노무현 당선자가 카터의 역할을 하라’는 요지의 글을 쓴 바 있다. 북·미 양국의 형세를 보아하니, 누군가 중재자가 필요한 듯한데 기왕이면 노무현 당선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 평양과 워싱턴 양쪽의 분위기를 탐지했다. 그 결과 양쪽 모두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즉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방북 이후 북·미 양쪽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상황을 악화해왔지만, 내심으로는 ‘누가 좀 말려줘’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고, 북한은 6개월 전 시작한 7·1 조처의 후속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국제 사회에서 중국·러시아·유엔, 심지어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까지도 중재자로 거론됐다. 필자의 주문은 바로, 카터에게 또다시 우리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모두들 관심이 있으니 직접 그 일을 수행하는 게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때 필자가 제안한 첫 번째 일이 바로 200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의 특사를 초청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예정돼 있으니 그전에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듣고 가면 자연스럽게 양자를 중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한 측은 당시 미국이 중유 공급만 재개하면 영변 핵시설을 다시 동결하겠다는 주장을 물밑으로 흘렸다. 타협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미국의 신경을 거스르는 발언을 계속했다.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서울의 주가가 들썩인다고 할 정도로 한·미 관계가 복잡하게 꼬여갔다. 결국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스스로 차버린 꼴이 되었다.

북한이 궁금한 것은 이명박 당선자의 진의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에 당선하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주변에서 지켜보는 국가들에 상처를 주는 말들도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 북한이 순조롭게 진행하던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절차를 슬그머니 뒤로 미룬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올 수 있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까지 거론했던 이명박 당선자의 2007년 12월20일자 당선 축하 기자회견 그리고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심지어 MD와 PSI 참여까지 공언한 자문교수단의 절제되지 않은 말들 역시 빌미가 되었으리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역지사지의 셈법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새 정부가 앞으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압박하겠다는데 어느 바보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선처만 바라겠는가. 다행히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한 이 당선자가 1월1일 KBS·SBS 기자회견에서 북한 달래기에 나섰지만, 북한 측은 당분간 팔짱을 낀 채 새 정부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속 타는 쪽은 워싱턴이다. 벌써부터 대북 협상파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북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부시는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북한을 달랠 묘수가 없다. 북한이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남한의 이명박 당선자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인수위 일부에서도 거론했듯,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2월25일 취임식에 초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3월 미국 방문 때 부시 대통령과 만나 남북한과 미국, 3자의 공동 해법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5년 전에는 실패했지만, 실용을 강조하는 이 당선자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당선자 주변에서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념 지향적 인사들은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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