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휴가였다. 두 달씩이나 휴가를 쓸 수 있느냐며 부러워하시겠지만, 나는 비정규 계약직 구성작가이다. 한번 떠나면 돌아올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쉬는 동안은 수입이 땡전 한 푼 없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 역시, 사람들이 늘 ‘가난한’이라는 수식을 아낌없이 달아주시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백수가 된 처지이므로 여행 경비의 반 정도는 동생에게 빌려야 했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을 즐기는 것이 내일의 통장보다, 방송작가라는 이름표보다 소중했다. 그 두 달은 10년 방송작가로 살아온 내 몸에 주는 최소한의 안식월이기도 했다.
먼저 캄보디아. 하늘과 웃음이 많은 나라. ‘써바이’라는 말을 배웠다. ‘쏙 써바이?’(행복하십니까?) ‘써바이 써바이’(행복합니다). 그들의 인사다. 나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쏙 써바이? 마음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너진 폐허의 신전에서 나는 마음의 폐허를 더듬었다.
최대한 마음 내키는 대로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이방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나의 내부를 편력하는 일이었다. 짐승과 사람이, 자동차와 인력거가, 먹는 물과 똥물이, 산 육신과 시체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좋고 나쁜 것, 쾌와 불쾌의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를, 그 분별하는 마음이 나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앙코르와트와 바라나시와 카트만두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나는 내 마음의 우기(雨期)를 지나는 중이었다. 일상의 시간에서 신화의 시간으로 나는 확장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조금 더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글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느낀다.
이방의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돌아와 나는 여전히, 아니 더욱 가난하다. ‘적게 벌어 적게 쓰자’가 내 생활관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더 담대해지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원고료를 주는 연출가조차 그거 갖고 살 수 있느냐고 진심으로 걱정하지만, 남들의 ‘생활’과 같아지려는 욕심만 버리면 ‘삶’은 부자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는 생물학적으로 진리다. 하여 음주가무라는 이념에 충실하고자 나는 주말마다 라틴댄스와 기타를 배운다. 노래방에 갔을 때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하는 칭찬을 듣는 게 보람차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놀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에 오늘을 저당잡혀서 살기에는 당신은 너무 아까운 사람! (그래요. 나, 노는 여자예요.)
-
떠나야 생존하는 ‘놀쉬돌’
떠나야 생존하는 ‘놀쉬돌’
고재열 기자 (독설닷컴)
잘 먹고 잘살지 않아도 잘 놀고 잘 쉴 수는 있지 않을까? 신년 기획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한번 진지하게 답을 구해보자는 것이었다. ...
-
놀이하는 인간 298세대의 정체
놀이하는 인간 298세대의 정체
고재열 기자 (독설닷컴)
왜 298세대가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선봉에 서게 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20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낀 세대다. 386세대와 88만...
-
즐겁지 않으면 떠나십시오!
즐겁지 않으면 떠나십시오!
박상준 (카페 주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카페를 하며 산다. 서울의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다 정착했다. 한적한 동네다. 잠을 자는 집은 이대역 근처다. 아침에 일어나 이대역에서 부암동으로 넘어온다. ...
-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보고서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보고서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자꾸 우울해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초콜릿을 씹으며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내린 것이 지난해 9월24일이었다.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의 취재를 위한 일주일간의 촬영이 ...
-
죽어라 일해라, 그래야 논다
죽어라 일해라, 그래야 논다
탁현민 (P당 대표)
보스로 3년 동안 지내며 내린 결론은 갖은 혜택을 부여해도 회사란 결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직장이란 대부분 늦게 나와서 ...
-
뭔가 특별한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
뭔가 특별한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예전부터 그랬다. 일부러 그런 곳에다 자리를 잡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로 클럽에스프레소 가는 길은 불편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그 커피점을 9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