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해서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지난여름은 힌두의 신들과 놀았다. 처음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킨 곳은 몽골과 남미였다. 하지만 함께 가기로 한 사람과의 시간 조율이 여의치 않아 우선 캄보디아와 인도로 떠나기로 한 것.

두 달간의 휴가였다. 두 달씩이나 휴가를 쓸 수 있느냐며 부러워하시겠지만, 나는 비정규 계약직 구성작가이다. 한번 떠나면 돌아올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쉬는 동안은 수입이 땡전 한 푼 없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 역시, 사람들이 늘 ‘가난한’이라는 수식을 아낌없이 달아주시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백수가 된 처지이므로 여행 경비의 반 정도는 동생에게 빌려야 했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을 즐기는 것이 내일의 통장보다, 방송작가라는 이름표보다 소중했다. 그 두 달은 10년 방송작가로 살아온 내 몸에 주는 최소한의 안식월이기도 했다.

먼저 캄보디아. 하늘과 웃음이 많은 나라. ‘써바이’라는 말을 배웠다. ‘쏙 써바이?’(행복하십니까?) ‘써바이 써바이’(행복합니다). 그들의 인사다. 나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쏙 써바이? 마음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너진 폐허의 신전에서 나는 마음의 폐허를 더듬었다.

허은실씨는 애초 서너 달을 쉬려다 두 달만 쉬는 걸로 PD와 타협했다. 힌두 ‘신’을 알현하고 와 지난여름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8월. 애초에는 인도만 가려고 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 전 누군가 늘어놓은 네팔 예찬에 귀가 얇은 우리 커플은 네팔행까지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린다. 비자와 비행기 표 문제로 현지 대사관과 여행사를 찾아다니느라 애 좀 먹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만사형통이고 일사천리라면 재미없잖아! 그런 마음가짐으로 간 배낭여행이었지만 나는 내가 서울의 시계에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 욕심을 내고, 애초 세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내가 보였다.

최대한 마음 내키는 대로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이방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나의 내부를 편력하는 일이었다. 짐승과 사람이, 자동차와 인력거가, 먹는 물과 똥물이, 산 육신과 시체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좋고 나쁜 것, 쾌와 불쾌의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를, 그 분별하는 마음이 나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앙코르와트와 바라나시와 카트만두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나는 내 마음의 우기(雨期)를 지나는 중이었다. 일상의 시간에서 신화의 시간으로 나는 확장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조금 더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글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느낀다.

이방의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돌아와 나는 여전히, 아니 더욱 가난하다. ‘적게 벌어 적게 쓰자’가 내 생활관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더 담대해지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원고료를 주는 연출가조차 그거 갖고 살 수 있느냐고 진심으로 걱정하지만, 남들의 ‘생활’과 같아지려는 욕심만 버리면 ‘삶’은 부자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는 생물학적으로 진리다. 하여 음주가무라는 이념에 충실하고자 나는 주말마다 라틴댄스와 기타를 배운다. 노래방에 갔을 때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하는 칭찬을 듣는 게 보람차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놀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에 오늘을 저당잡혀서 살기에는 당신은 너무 아까운 사람! (그래요. 나, 노는 여자예요.)

기자명 허은실 (MBC 라디오 〈문화야 놀자〉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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