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요즘 보면 이상하게 오래된 정치인일수록 영 초라하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나 신당의 정대철 상임고문이 당내에서 뭐라고 일갈을 해도 귀담아듣게 되지를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머리도 더 늘고 몇 년 새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듯한 인상이다. 혼자만 그런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CEO 출신이면서 탈여의도를 부르짖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한 뒤부터는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반면 같은 CEO 반열인 대학 총장(혹은 출신)은 가히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명박 후보의 중앙선대위 과학기술 분야는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이, 문화·예술 분야는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체육·청소년 분야는 김주훈 전 조선대 총장이 맡았다. 인수위원장 자리는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에게 돌아갔고, 인수위원장 물망에 올랐던 손병두(서강대 총장) 어윤대(전 고려대 총장) 정운찬(전 서울대 총장) 씨는 다시 초대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1월4일 전국의 총장이 모이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년회 오찬 모임에는 이례적으로 이명박 당선자가 참석해 다시 한번 대학 총장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증명해주었다. 선대위나 인수위에 참여했던 현역 총장은 모두 스스럼없이 다시 대학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대학도 학생들도 그들을 다시 받는 데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정계와 재계와 학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게 세계화의 특징이다.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데다 경영 마인드까지 갖춘 대학 총장(출신)이 구태의연한 정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물론 그런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사뭇 다른 차원으로 바라본다.

영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비담은 이에 대해 ‘전문가의 밀거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경계한다. 그는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서유럽 여러 나라 정부마저 요즘에는 수많은 자문위원을 통해 대기업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악역을 학자나 과학자가 맡는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미국이나 서유럽의 각 대학은 연구비를 점점 더 많이 기업에 의존하고, 학자 출신 자문위원은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경향이 짙다. 우리나라 대학 총장들도 기업에 손을 잘 벌리는 것이 능력의 척도가 된 만큼 이런 혐의를 벗기는 힘들다.

환하게 웃는 당선자와 대학 총장 모습에서 대자본의 그림자를 봤다면 피해 망상이라고 욕을 먹을까? 요즘은 공천의 계절이고, 때가 때이니만큼 피해 의식의 과잉이 드문 일도 아니지 않은가.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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