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위) 내부 파워 게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조선시대 당쟁의 시초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이조전랑 직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이 동인과 서인의 대립을 낳았고 이 대립이 결국 조선시대 사대부가 사색당파로 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 당선자와 관련해서도 이조전랑에 해당되는 직책이 있다. 바로 기획팀장 자리다. 누가 기획팀장을 차지하느냐가 어느 세력이 당선자의 신임을 얻고 있는지 척도가 되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읽힌다.

당 경선캠프에서 처음 기획팀장을 맡았던 사람은 안국포럼 출신의 권택기(현 당선자 비서실 정무기획2팀장) 팀장이었다. 이때는 전반적으로 안국포럼 출신이 캠프를 주도했다. 경선이 끝나고 대선 준비팀이 꾸려지면서 본선팀의 윤곽이 드러나자 판도가 바뀌게 된다. 본선팀의 기획팀장을 맡은 사람은 이태규(현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위원이었다. 이씨를 발탁한 인물은 정두언 의원이었다.

김효원과 심의겸이 지극히 정치적이어서 동인과 서인의 좌장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권씨와 이씨는 둘 다 조심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권력 지향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느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권력의 지표가 되는 것은 이들을 둘러싼 배경 세력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현재의 권력 구도를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명박 당선자를 보좌했던 안국포럼 출신 측근(권택기·박영준·강승규·정태근 등)과 이재오 의원의 연합 세력, 그리고 대선준비팀 이후 실무를 관장한 부산팀(박형준·박재성·이태규·경윤호 등)과 정두언 의원의 연합 세력 간 각축으로 보고 있다.

당 경선에 들어가기 직전 부산팀과 정두언 의원이 기획한 경선팀 기획안을 바꾼 사람은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안국포럼 출신이 경선 캠프를 주도하게 하고 부산팀을 해체했다. 이 의원이 부산팀을 해체한 것은 정두언 의원이나 박형준 의원을 견제한 것은 아니었다. 당 대표까지 노렸던 3선의 최고위원이 초선인 두 의원과 각축할 까닭은 없었다.

중진들 경쟁으로 실무자들 반목 심해져

이 의원이 견제한 사람은 부산팀의 배후로 여겨져온 권철현 의원이었다. 같은 동아대 교수 출신인 박형준 의원을 비롯해 이성권·김희정 의원 등과 혈맹에 가까운 끈끈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권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부산팀을 경계했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부산팀 소속 참모들은 이런 이 의원의 견제에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 참모는 “경선이 시작되기 전, 이재오 의원이 우리를 불러 저녁을 먹였다. 시집간 딸을 불러서 음식 장만을 시킬 만큼 정성을 기울였다. 그날 분위기는 거의 ‘도원결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태도가 바뀌어서 당황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인수위가 꾸려지는 동안 경선 캠프가 만들어질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정두언 의원이 올린 안이 또 이재오 의원에 의해서 바뀐 것이다. 기획조정분과 간사와 정무분과 간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정두언 의원과 박형준 의원은 애매모호한 직책인 비서실 보좌역과 한 계단 낮은 기획조정분과 위원 자리를 받았다. 정무분과 간사는 이재오 의원의 최측근인 진수희 의원이 맡았다.

부산팀은 또 해체되었다. 관건이 되었던 비서실 기획팀장 자리는 이태규 위원으로 예견되었으나 권택기 팀장으로 결정되었다. 이태규 위원은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으로 발령났다. 전반적으로 안국포럼 출신이 중용되고 부산팀은 한직으로 분산되어 한 계단 낮은 직급을 받았다. 부산팀으로 분류되는 한 참모는 “당선으로 인해 파이가 너무 커져서 사실 우리가 서로 다툴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선의 파워 게임에 휘둘려야 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실무자 위주' 아닌 '나눠 먹기식 인수위'라는 비판도

한나라당 관계자 중 일부는 이런 인수위 인선 결과와 관련해 ‘실무자 위주로 인수위를 구성한다. 여의도식 정치를 배제한다’는 대전제와 배치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보와 근접한 위치에 있던 안국포럼 출신과 달리 대선 캠프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적었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권력은 근접성에서 나온다. 사실 선거 기간에 이명박 후보는 안국빌딩에 주로 있었다. 그쪽 출신들이 중용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인수위 인사에서 ‘이명박다움’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당선자가 추진력은 불도저이지만 인사 문제만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고 들었는데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들을 인수위에 대거 포함시킨 것역시 여의도식 정치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국회의원들을 ‘나눠 먹기식’으로 인수위에 포함시켜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정무분과 간사), 강재섭 대표의 측근인 박재완 의원(정부혁신 규제개혁 TF팀장)을 임명한 것과 이회창 전 총재를 견제하기 위해 충남 예산이 지역구인 홍문표 의원(경제2분과 위원)을 발령낸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이 외에도 이상득·박희태·김덕룡·최시중 고문 등 원로 그룹의 입김이 세게 작용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인수위의 ‘나눠 먹기식’ 인선은 자리 남발로 이어지고 있다. 간사-위원-전문위원-실무위원이라는 공식 체계 외에 자문위원과 정책연구위원(상임과 비상임으로 나뉜다) 임명을 통한 자기 사람 심기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자기 사람 심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인수위에 ‘정원 외 입학’이 늘고 있다. 책상도 없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직함이 남발된다. 이에 대해 인수위 관계자는 “노무현 당선자 시절 인수위 막판에 702명까지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번 인수위에서는 520명선으로 제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들은 이명박 당선자가 인수위에 현역 의원을 대거 끌어들인 것을 당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본다. 특히 이재오 의원의 요구를 많이 반영한 것은 당을 장악하려면 이 의원의 역할이 절대적일 것이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당 문제는 초선인 정두언·박형준 의원이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당 조직 장악에 집착하는 것은 직할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전국 조직을 구축한 박영준 팀장(비서실 총괄팀장)과 김대식 교수(사회교육문화분과 위원)를 중용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박 팀장은 안국포럼 출신의 좌장이 되어 임태희·정두언 의원과 함께 당선자 비서실의 삼두마차를 구축하고 있다.

당선자 비서실과 인수위 내부의 권력 투쟁이 가속화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중의 하나는 참모들이 급속히 ‘예스맨’이 된다는 점이다. 당선자가 결심하면 반대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고 무조건 찬성만 한다는 것이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실천 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선자가 결심하니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참모들이 모두 공약을 밀어붙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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