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해 최다 패 투수는 두산의 리오스였다. 그러나 그는 올해 20승을 넘겼다. 올 시즌 최다 패의 불명예를 안았지만 윤석민(위)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야구에서 에이스란, 팀 마운드의 기둥이 되는 선수를 말한다. 연패라면 끊고, 연승이라면 이어주는 ‘센스’를 가진 투수. 팀을 하나로 묶는, 가장 잘 던지는 투수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에는 이 에이스가 세 명이나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에게는 모두 마뜩잖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대진은 ‘비운의 에이스’다. 야구를 버리고 팀을 떠난 김진우는 ‘이탈의 에이스’다. 그리고 올 시즌 18패(9월26일 현재)로 최다패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민은 ‘불운의 에이스’다. 모두 설명이 필요한 에이스다. 어쩌면 이게 바로 야구 명가라 불렸던 타이거즈가 꼴찌로 떨어진 이유다. 그리고 이게 바로 스물한 살 윤석민이 에이스라는, 아직은 일러 보이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18패를 떠안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KIA 윤석민은 추석 연휴가 반갑지 않았다.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 윤석민의 올 시즌 성적은 7승18패. 18패는 프로야구 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패전 숫자다. 2002년 롯데 김영수가 18패(2승)를 기록한 뒤 처음이다.
본인이 못 던져서 18패라면 ‘불운의 에이스’라는 수식어도 붙지 않았다. 평균자책 3.78은 올시즌 8개 구단 투수 중 열 번째로 낮은 수치다. 에이스답게 팀 내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이다. 물론 무너질 대로 무너진 KIA 투수진 중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도 윤석민밖에 없다. 에이스답게 최선을 다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성적은 그렇지 못했다.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윤석민은 시즌 개막일이었던 4월6일 잠실 LG전에 선발 등판했다. 에이스이니까 당연했다. 6과 3분의 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다. 그 1점도 실책 때문에 내줬다. 에이스는 완벽했지만 팀 타선은 7안타를 치고도 무득점에 그쳤다. 4월17일 문학구장에서 SK를 상대로 한 세 번째 등판에서도 7이닝 1실점(0자책)으로 호투했다. 또 팀 타선이 8안타 무득점에 그쳤다. 윤석민은 시작하자마자 3연패를 당했다.
팀 타선은 야속했다. 개막전에서 8안타 무득점이었던 KIA 타선은 다음날 9안타로 9점을 뽑았다. 윤석민이 3연패를 당하던 날 8안타 무득점이던 타선은 다음날 5점을 뽑아줬다. 물론 그 전 경기 삼성전에서는 7득점을 올렸다. 묘하게도 윤석민만 나오면 타선이 침묵을 지켰다.

윤석민이 첫 승을 거둔 것은 네 번째 등판에서였다. 4월22일 광주 홈경기에서 두산을 만났고 9이닝 동안 3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했다. 이날 팀 타선은 3점을 뽑아줬다. 점수를 아예 주지 않아야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심신 지친 8월 이후 1승6패로 무너져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는 바람에 네 번째 등판 만에 첫 승을 거뒀다. 불운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뒤따랐다. 유독 윤석민이 나왔을 때 팀 타선이 부진했던 것은 그가 타자들에게 밉보여서가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 로테이션의 특성상 1선발은 1선발끼리 맞붙기 마련이다. KIA 타선은 자신들의 에이스가 등판했을 때 상대팀 에이스와 승부를 벌여야 한다. 윤석민도 뛰어난 투수였지만 상대 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개막전 맞대결 상대는 LG 에이스 박명환이었고 이후 세 경기에서 현대의 캘러웨이, SK 레이번과 맞대결을 펼쳤다. 첫 승을 거둔 상대도 올해 선발로만 20승 이상을 거둔 두산의 리오스였다.

야구는 심리 게임이다. 아무리 노련한 투수라도 승리보다 패가 많이 쌓이는데 신이 날 리가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올 시즌 윤석민과 비슷한 투수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맷 케인. 올해 스물두 살이다. 케인은 6월 중순까지 평균자책 3.15였다. 내셔널리그 12위의 좋은 성적이었지만 승패는 2승7패에 그쳤다. 보다 못한 브루스 보치 감독은 언론을 통해 최강의 칭찬을 했다. “케인은 나이답지 않게 무척 침착하고 성숙하다. 마치 지난해까지 내가 샌디에이고에서 함께했던 트레버 호프먼(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 보유자) 같다”라고.

윤석민도 꿋꿋했다. 스물한 살짜리 에이스는 쌓이는 패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묵묵히 올 시즌 열네 번의 퀄리티 스타트(1경기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다. 패배가 쌓였지만 오히려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을 이어갔다. 8월1일 문학 SK전에서는 중간계투이자 팀 선배인 신용운이 좋지 않자 구원 등판을 자원했다.

그러나 스물한 살. 몰락한 명문가의 마지막 종손 역할을 맡기에는 너무 어렸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황태자에 책봉된 것도 스물 셋의 일이었다. 게다가 KIA에는 더 이상 ‘선배’들이 없었다.

맷 케인은 배리 본즈가 홈런 기록을 향해 달리던 8월에 4승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친 윤석민은 8월 이후 1승6패로 무너졌다. 같은 기간 평균자책은 무려 7.11이다. 팀이 바닥에 처박힌 시점과 비슷했다. 그때쯤 KIA는 팬들과도 불화를 겪었다. 이를 모두 안고 가기에 스물한 살은 너무 어렸다.

ⓒ뉴시스윤석민이 ‘불운의 에이스’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최강의 에이스’로 거듭 나려면 올겨울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사실, 첫 단추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윤석민은 비록 삼성 오승환에게 가려졌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였다. 150km를 넘는 직구도 위력적이었지만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140km가 넘는 슬라이더는 역대 최강 반열에 오를 만했다. 마무리가 선발투수로 변신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석민에게 변신은 너무 늦었다. 윤석민이 선발 변신 통보를 받은 것은 시범경기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겨우내 선발 훈련을 해도 모자랄 판에 고졸 3년차가 받아들이기는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이탈 에이스’ 김진우의 부진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서정환 감독과 김봉근 투수코치 모두 “괜찮다”라고 말했다. 시범경기에서 한 경기 투구 수를 80개 정도로 맞춰놨다고 했다. 시즌 초반에는 문제가 없었다. 지난해에도 마무리로 나와 94와 3분의 2이닝을 던졌다. 오승환(79와 3분의 1이닝)보다 15이닝을 많이 던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신인급 투수들의 투구 이닝 증가 폭은 1년에 30이닝이 적정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준으로 따졌을 때 윤석민의 올 시즌 적정 투구 이닝은 1백24이닝이다. 윤석민은 정확하게 7월까지 1백24이닝을 던졌다. 이때까지 6승12패 평균자책 2.76. 그러나 이후 1승6패, 평균자책 7.11로 무너졌다. 말하자면 단지 쌓이는 패가 부담이 돼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윤석민은 시즌 중반부터 아킬레스 건이 아팠다. 이 때문에 러닝 훈련이 부족했고 투구 밸런스도 무너졌다. 윤석민은 지난해까지 마무리 투수였다. 삼진을 최우선으로 하는 투구 패턴에 익숙했다. 투구 수를 줄여야 하는 선발 투수의 투구 패턴으로 변신하는 것 또한 3년차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윤석민은 올 시즌 최다패의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지난해 최다패 투수는 두산 리오스였고 올해 20승을 넘겼다. 윤석민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 윤석민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나치게 지쳤다. 진짜 에이스로 만들려면 올겨울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메이저리그의 예를 살펴보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2003년, 신인 투수 제레미 본더맨을 시즌 막판 선발 로테이션에서 뺐다. 본더맨은 6승19패를 기록 중이었고 신인에게 20패는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자명 이용균(경향신문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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