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시민사회의 오랜 노력 끝에 올해부터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된다.

1월12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박성준씨(31)는 평소 가정을 꾸리게 되면 양성 평등 정신을 직접 실천하겠다고 다짐해온 진보적인 예비 신랑이다. 그는 올해 1월1일부터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 가족법이 시행된다는 뉴스를 들었다. 뉴스에 따르면 올해부터 호주 개념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자녀가 어머니 성씨를 따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박씨는 아내가 될 여자친구에게 “우리가 아이를 가지면 애 성씨를 어머니 것으로 따르게 하자”라고 제안했다. 부계 성씨 제도가 가부장제의 상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씨의 제안에 여자친구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애가 학교 가서 놀림받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다. 박씨는 “만약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고 차별이 심하다면 그때 아이 성씨를 바꿔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둘째부터는 아버지 성을 쓰게 하자”라고 다시 설득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형제자매 간에 성을 다르게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법이 바뀐 것은 맞지만 아버지 성을 쓰든 어머니 성을 쓰든 한쪽 성을 가족 성(姓)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녀가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이번 호주제 폐지 때문이 아니라 민법 개정 덕분이다. 2007년 5월17일 개정된 민법 781조 1항에 따르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되어 있다. 과거에는 그냥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되어 있었다. 박씨는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문호를 연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혼인신고 때 가족 성을 결정해버리면 이후 바꿀 수 없게 된다는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미 혼인신고한 부부 모계성 물려주기 안 돼

예를 들어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아들은 아버지 성을, 딸은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고 싶은 부부가 있다 하더라도 현행 민법상 이런 방식의 성씨 물림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법 개정 이전에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는 어머니성 물려주기가 원천적으로 안 된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의 담당 검사는 “가족의 성이라는 게 공시 기능이 있는데 형제마다 성씨가 다르면 문제가 있지 않으냐. 가족을 대표하는 성씨는 하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는 (일본을 제외하면) 자녀의 성씨가 부모 중 누구의 것을 따르게 될지 여부는 출생신고 때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성가족부 담당자는 “민법 781조 1항 중 혼인신고  부분은 출생신고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형제자매 간에 성씨를 혼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라고 말했다.

물론 가정법원에 성명 개정 신청을 하면 형제 간에도 다른 성을 쓸 수 있기는 하다. 이 경우는 ‘아동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비 신랑 박성준씨는 “현행법 상으로는 어머니 성을 자녀에게 물려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사문화될 수밖에 없는 조항이다. 이대로는 신부와 양가 부모를 설득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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