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6·10 민주화 운동·인혁당 사건 등과 관련해 신부님의 이름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정말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1월 박종철군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고, 6월10일을 민주항쟁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매우 뜻있는 일이었습니다. 인혁당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도 재심에 들어갔습니다. 다만 지난번 치른 대선에서 민주 개혁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역사가 뒤로 간 게 아닌가, 20년 전 6월 항쟁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창출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분들과 반성·성찰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은 결과적으로 국민이 ‘거짓’을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용인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되묻고 계속 성찰할 대목입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부끄러운 대목입니다. 계속 극복해야 합니다.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의 책임이 큽니다. 요즈음 벌어지는 현상을 보며 1945년 광복 당시를 떠올립니다. 19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선생님들이 일제 강점기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을 수업을 통해 일깨워주었습니다. 사실 1970~1980년대 청년 학생들은 인권·민주·자유라는 가치를 선배들로부터 전해 듣고, 독재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현상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졌기에 청년 학생들이 역사의식이 약해지고 긴장감도 떨어졌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돈’ 중심으로 치달으니 중요한 가치에 대한 의식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결여를 지적하기에 앞서 선배 세대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많은 젊은이가 양극화·실업 문제 등으로 좌절한 것 같습니다. 대선 당일 출구 조사를 보고는 텔레비전을 끄고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강의 내용은 ‘희망을 찾아서’였습니다. 지난 연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에 다녀왔습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에게 유배는 좌절과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사상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기간 중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으며 희망과 꿈을 확인했습니다. 강진에서의 유배는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자 은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산의 체험과 정신을 공유하고 그 실천적 교훈을 일깨워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 교수가 나치 수용소에 갇혀서 관찰했더니, 희망을 가진 자가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으로 〈의미요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의미를 찾고,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선 패배 등 민주 개혁 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소 자조적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많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대선에 국한해보면 정권 재창출, 민주정권 연계에 대한 역사적 고민과 성찰이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역시 대통령이지만 한 사람만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적 한계입니다. 그보다는 악의적으로 곡해한 수구 세력과 언론의 탓이 더욱 큽니다. 하지만 그분이 좀더 국민, 역사 앞에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는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가 재야 원로들이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원로 가운데 신부님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젊고 신선한 가치를 지닌 분이기에 처음에 많이 기대했습니다. 돌출적인 면은 있지만 파격적인 새로움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대북 송금 특검은 다 반대했습니다. 민주당 분당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충분히 설명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직분을 가진 분이 자기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공개적으로 비판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자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강 교수 지적대로 좀더 날카롭게 비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정한 거리는 두었습니다. 조그만 모임에서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충분히 직언했습니다. 대연정 건에 대해서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는 놀랐고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뜻을 물어보니 현실 정치를 좀더 넘어서는 초연한 가치랄까? 그런 정치 비법이 있다고 하기에 눈여겨보았습니다. 좀더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하지 못한 점 겸허히 반성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섭니다. 당선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삼성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나쁜 짓을 계속 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여러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삼성은 물론 중앙일보·삼일회계법인·김앤장 등에서도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검찰도 김용철 변호사 말이 맞다고 합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부자의 비리를 감출 생각만 하지 말고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게 더 아름다워지는 일이고,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란 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서는 열 개, 스무 개, 백 개의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삼성에서는 요사이 신부님들이 삼성에 관한 말씀을 하지 않아서 좋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했고, 특검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시작했으니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뿐입니다.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김용철 변호사도, 사제들도 다시 지적해야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여러 부분에 나선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 세상을 외면하는 게 당시 교회 분위기였습니다. 오랫동안 가톨릭이 박해받아, 세상 문제에 대해 눈감고 성당 안에서만 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교회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62~1965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세상과 무관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세상 모든 이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깨닫고 선언했습니다. 이때부터 가톨릭 교회는 신자와 사제 모두 노동·정치·경제·환경 문제에 깊숙이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 하에서 지성인들이 정권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인혁당 관계자들은 무고하게 사형까지 당했습니다. 지학순 주교님이 구속됐는데, 가톨릭 주교 석방운동을 노력하다가 함께 연루된 학생과 민주 인사를 위해서도 운동을 펼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민주시민이자 신앙인의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사제단을 만들면서 사회를 바꾸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뜻있는 분들과 더불어 34년을 걸어왔습니다. 평범한 한 시민으로, 신앙인, 사제로서 역사와 함께하는 과정입니다. 200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자들에게 덕담을 부탁드립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데, 그 복(福) 자가 ‘볼 시(示)’ 자에 ‘가득찰 복’입니다. 복은 제단을 쌓아 신에게 술을 가득히 봉헌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신에게 정성을 다할 때 더 큰 복을 받는다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조상·어른·부모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직하게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복을 못 받는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잠언에 “하느님은 거짓말하는 입술을 미워하시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이 올해 묵상 주제입니다.
올해는 어떤 해가 될 것 같습니까? 올해는 쥐의 해입니다. 동물학 상징론을 봤더니 지구상에 50가지 종류와 8000억 마리의 쥐가 있다고 합니다. 쥐는 인간 사회에 피해를 많이 주는 동물입니다. 예전에는 쥐잡기 운동을 했습니다. 해로운 쥐는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쥐가 주는 교훈도 있습니다. 근면과 성실 그리고 저축성 같은 것입니다. 풍요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참된 풍요는 ‘나눔’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사회를 지양하고 공공선·공동선이 이룩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일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서 인권·자유에 관한 역사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