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현재 남북관계는 자위권 행사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준전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주변 국가들도 각기 자국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한반도 정세는 유례없이 불안정하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도발은 당연히 규탄받아야 마땅하나,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북한이 왜 이 시점에 이 같은 도발을 저질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압박 정책 또는 북한 붕괴 전략으로 규정하고 반발해왔다. 그러면서 위협과 유화라는  양면 공세로 이에 대응해왔다. 북한은 2009년 말 보즈워스 특별 대표의 방북이 이루어지자 6자회담 개최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시에 대남 유화 공세를 계속했다. 이어 북한은 연초 신년 공동사설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 보장을 위한 근본 문제는 북·미 적대 관계의 종식’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 간에 신뢰가 조성되어야 하고, 적대 관계의 근원인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하고,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 비핵화를 빠른 속도로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근원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의 주장은 ‘선(先) 핵폐기론’이 되고, 북한은 ‘선 평화체제론’이 되는 셈이다. 연평도 포격은 한반도가 언제라도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지역임을 확인시키고 ‘선 평화체제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도발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은 후계 체제의 공고함을 내외에 과시하고, 남한 내부에서 이는 북한 붕괴론이나 체제 전환 요구 같은 ‘북한 업신여기기’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이 G20 서울 정상회담 이후 한·미 양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합의 1년이 되는 시점에 맞추어 연평도 도발을 감행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 이후 정세 변화를 일단 지켜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즉각적인 추가 도발은 하지 않으리라 보인다. 대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핵문제로 방향을 전환해 우라늄 농축 능력의 강화나 추가 핵실험으로 다시 긴장 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공동취재단한미연합훈련이 서해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9일 조지워싱턴 항모에서 수퍼호넷이 이륙하고 있다.

미국에 노골적으로 의존하면 중국 개입 부를 수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조성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peace-making) 노력은 물론이고 평화를 지키는(peace-keeping) 일에도 연이어 실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안보 역량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조용히 내실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힘에 노골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의 북·미 대화 요구를 정당화하고 중국의 개입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급한 과제는 향후 정세 변화에 적극 대응해나가는 일이다. 중국은 연평도 포격 사건 발생 직후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 협의를 제의한 바 있다. 중국은 6자회담 외에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누구도 중국의 역할을 무시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확인한 대로, 당장 6자회담 개최는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대두된 우라늄 농축 문제나 한반도의 준전시 상황을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이다. 냉각기를 거친 다음 서서히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우리가 대화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우리의 주도권은 약화되고 객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평화를 지키려면 평화를 만드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북 정책을 재정립하고, 미국은 물론 중국의 협력과 역할 분담을 이끌어내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전환적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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