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의회가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던 12월1일, 오세훈 시장은 차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전면 무상급식’이란 ‘망국적 포퓰리즘’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도 오히려 머릿속이 또렷해지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세금으로 거둔 귀한 예산을 함부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왜 부잣집 자식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제공(이른바 ‘부자 급식’)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처절한 고민 끝에 오 시장은 ‘서울시와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의회 출석을 거부하고 시정 협의도 중단했다.

이 같은 오세훈 시장의 ‘우국충정’은 냉소적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유가 있다. 오 시장은 후보 시절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부잣집 자식들은 제외’라는 단서는 없었다. 이렇게 보면 학습 준비물은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 제공해도 괜찮지만, 유독 ‘밥만이 나라를 망치는 포퓰리즘’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 앞뒤가 안 맞는다.

ⓒ시사IN 포토지난 3년간 서울시는 영어마을(위)에 매년 100억원 이상 지원했지만, 학교 급식에는 10억원을 지원했다.

가든파이브 때문에 새는 돈만 한 해 1200억원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야말로 ‘토목건축 포퓰리스트’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6년 취임한 이후 불요불급하지만 인기를 끌기는 쉬운 대규모 토건사업을 무더기로 진행해서 서울시를 빚더미 위에 앉힌 장본인이 아니냐는 힐난이다.

지난 10월 서울시 의회가 재정·복지 전문가들과 함께 낸 보고서 〈서울시 재정구조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전략과 추진방안〉에 따르면, 오 시장 취임 이후 늘어난 서울시 부채는 무려 10조원에 이른다(복식부기 기준). 2006년 13조6000억원에서 2009년 말 25조원으로 증가했다.

서울시 ‘부채 폭탄’의 가장 큰 원인은 서울시 산하 토건 공기업인 SH공사로 지목된다. 2010년 현재 SH공사의 채무 규모는 무려 16조원. 부채비율은 505%이다. 지난 4년 동안 이자만 1조6000억원을 지불했다. 올해 이자 지급액만 5000억원을 넘길 전망(6월까지 2763억원)인데, 하루 15억원꼴이다. 2009년 서울시가 이 빚을 갚기 위해 빌린 돈이 3조4100억여 원이다.

이런 채무는 가든파이브,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서울, 뉴타운 등 오 시장이 의욕적으로 벌여온 대규모 토목건축 개발사업 때문이다. 이 사업들에서 수익을 낸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이를테면 서울시는 송파구 문정동의 가든파이브(유통단지) 건립에 모두 1조3000억원을 빌려 투자했다. 그러나 지난 7월 현재 분양대금으로 걷힌 돈은 모두 6000억원에 불과하다. 입주를 촉진하기 위해 상가 인테리어나 관리비까지 지원하면서 비용이 더 늘어났다. 서울시 의회 보고서는 가든파이브로 인한 금융비용만 매달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연간 1200억원 규모이다.

서울시는 또 디자인거리 조성에 3차 연도에 걸쳐 2000억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2007년 시작한 1차 연도에는 10개 거리에 388억원이 들었다. 1개 거리의 길이는 평균 500m다. 1m당 비용은 700만원.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1m당 700만원짜리 거리를 1만7000여 개를 더 만들어야 프로젝트가 끝난다. 얼마나 많은 보도블록이 소비될까. 그동안 서울시가 추진해온 토건사업 중 일부만 봐도 이렇다.

서울시의 막대한 홍보비도 구설에 오르내린다. 오 시장이 재임한 2006~2009년 서울시 홍보비 예산은 모두 1180억원이다. 고건 전 시장(민선 2기), 이명박 전 시장(민선 3기) 재임 시절 홍보비 합계(649억원)의 1.8배에 이른다. 더욱이 서울시 중기 재정계획(2009~2013년)에 따르면 2013년까지 모두 3399억원을 홍보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에 비해 전면 무상급식의 경우, 초등학교에만 적용할 때 서울시가 직접 분담해야 하는 자금은 연간 700억원 정도(총재원 2530억여 원)다. 중학교로 확대할 때 서울시 분담금은 약 1300억원(총재원 4300억여 원)이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단체 처지에서, 재임 기간 10조원 규모의 부채를 ‘창출’하고 ‘보도블록 깔기’에 3000여 억원(5년 동안)을 소비하겠다는 장본인에게 ‘망국적 포퓰리스트’라는 소리를 듣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하나고 지원 금액, 무상급식 예산과 맞먹어

더욱이 그동안 서울시의 ‘교육 지원 예산’ 운용이 ‘부자 퍼주기’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이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이기 때문에 안 된다며 외롭게 투쟁 중인 오 시장의 서울시가 사실은 ‘부자 퍼주기’를 해왔다는 이야기다.

ⓒ뉴시스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디자인거리에 투자하려는 돈은 2000억원이다. 무상급식 예산의 3배에 가깝다.

서울시는 2007~2009년 교육 지원 예산으로 2430억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돈(651억원)이 배정된 항목이 ‘자립형 사립고 지원’ 부문이다. 서울 은평구 하나고 부지 매입 등에 이 비용이 들었다. 그 다음이 책걸상 교체로 358억원이 들었다. 서울영어마을 관악캠프의 경우, 조성에 298억원, 운영에 57억원이 지원되었다. 전시 행정으로 구설에 오르곤 하는 영어마을에 매년 100억원 이상이 들어간 셈이다. 이에 비해 학교 급식 지원에 배정된 돈은 10억원에 머물렀다. 그래서 교육 지원 정책에 나타나는 서울시의 교육철학은 형평성이나 기회 균등이 아니라, ‘사립고에 대한 특혜성 지원’ ‘생색내기식 기자재 교체’라는 비난이 나온다.

무상급식 단체들로 구성된 ‘서울지역 풀뿌리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준)’는 12월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을 ‘오세훈 사태’로 명명하며, 전격적인 ‘무상급식 토론’을 오 시장에게 요구했다. “(오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토목 예산에 1조원을 쏟아부은 사실을 서울시민들은 알고 있으며… 2011년에도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별로 관련도 없는 서해 뱃길 사업 752억원, 한강 예술섬 사업 406억원 등 타당성도 없으며 절박하지도 않은, 불필요한 토목건설 혈세 낭비 사업들의 예산이 수천억원에 이른다.”

같은 날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성명서를 통해 “낭비성 토목건설 사업의 축소와 재정 운영 효율화를 통해 2014년까지 연간 3조3500억원의 재정 수입이 증가할 수 있다. 이 중 6000억원 정도를 오세훈 시장이 만들어놓은 서울시 부채를 갚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2조원을 보편적 복지(무상급식 및 무상 학교 준비물, 아동수당, 주거 보장, 공공 보건의료 확충 등)에 투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무상급식의 예산 낭비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서울시 토건공사로 인한 예산 낭비 검증 논란으로 돌변하면서, 오세훈 시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선(戰線)은 ‘무상급식’에서 ‘토건 중심 예산 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 옮아가고 있다. 오 시장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더 길어질 것 같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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