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방선거에서 결론이 난 줄 알았던 무상급식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서울시의회가 12월1일 무상급식 조례를 제정한 데 반발해 시의회 출석 거부를 선언했다.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무상급식을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며 끝장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일 예상을 뛰어넘는 강공이다.

정치인은 본인 부고 기사만 아니면 언론에 이름 올리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라는 속설만 믿는다면, 이슈의 중심에 서는 것이 오 시장에게 나쁠 이유는 없다. 잠재적인 대권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방선거 이후 강경 보수 발언을 쏟아내며 광폭 행보를 하는 데 견주어, 오 시장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당내 입지를 다지는 데도 많든 적든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야권 어젠다인 무상급식에 대책 없이 밀리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언급을 피하던 한나라당을 대신해 오 시장이 총대를 메준 형국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윤무영오세훈 시장(사진)은 12월7일 기자회견을 열고 곽노현 교육감에게 무상급식과 관련해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오 시장의 제안이 정략적이라며 거부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무상급식 이슈의 파괴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온건·합리 이미지를 유지하던 오 시장이 유권자의 지지가 높은 무상급식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이 과연 남는 장사일 것이냐는 의심은 곳곳에서 나온다. 셈법이 뭘까.

시의회 굴복시켜야 대선 꿈도 꿀 수 있다

오 시장 측에서는 ‘셈법’이란 단어에서부터 고개를 젓는다. 정치적 수읽기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6월 지방선거 이후 누적된 시의회와의 갈등이 이번에 터져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한 핵심 측근은 “시의회가 그동안 해도 너무했다. 시의회 시정 질의를 나가면 시의원 한 명당 40분씩 시장을 세워놓고 일장훈시를 한다. 38분 동안 질문하고 답변은 서면으로 내라는 식이다.

하루에 네댓 시간씩 이런 벌세우기를 두 달에 한 번씩 했다. 어르신 행복타운, 한강 예술섬, 양화대교 교각폭 확장 공사…. 시의회가 오 시장 예산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날려버려 손발이 꽁꽁 묶였다”라며 한참을 하소연했다.

민주당 79명 대 한나라당 27명이라는 절대적 열세로 꾸려진 시의회에서 오 시장이 임기 4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 측근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시의회가 일단 의결을 해 오면 시장이 ‘재의’를 요구해봐도 소용이 없다. 민주당 시의원 수가 재의결 정족수 3분의 2를 훌쩍 넘기 때문이다. 지난 9월에도 오 시장이 서울광장 집회를 허용한 시의회 조례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지만, 민주당 시의원들은 가볍게 재의결 정족수를 채웠다. “밥도 같이 먹고 의회도 성실히 나가고 해봤지만 대화와 타협이 안 되더라. 이번 무상급식을 계기로 오 시장이 그걸 최종 확인하고 ‘강공’으로 선회한 것이다”라는 게 핵심 측근의 평가다.

이번을 계기로 시의회의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임기 내내 식물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다음 혹은 다음다음 대선을 노리는 오 시장이 시의회에 막혀 임기를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더욱이 지난 임기 당시 한나라당 시의원 100명을 데리고 속 편히 시정을 운영해왔던 오 시장으로서는 현 상황을 견디기가 더욱 힘들었으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 시장이 시의회를 ‘돌파’할 반전 계기를 절실히 바랐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왜 하필 폭발력이 큰 무상급식 이슈에서 계기를 찾았을까. 무상급식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고려하면 위험이 너무 크다. 이에 대해 지난번 임기 때 서울시 최고위직을 지낸 또 다른 오 시장의 측근은 “2004년에 의원직 던지고 ‘오세훈 법’ 만들 때 정치적 계산이 서서 그렇게 했겠나. 이게 맞다 싶으면 앞뒤 안 재고 가는 게 오세훈 스타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내던지고 부산에 출마할 때와 닮았다. 무상급식으로 붙으면 당장은 손해 보는 게 뻔한데, 계산서 두드렸으면 이렇게 못한다”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 이슈보다 전국 이슈가 낫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이 측근은 무상급식 논쟁이 또 한번 전면전으로 번지면 지방선거 때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스냐 노냐, 양자택일 논리가 지배하는 선거 때는 ‘애들 밥 먹이자는데 쩨쩨하게 군다’라는 식의 프레임을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상급식 예산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무상급식보다 안전한 등하굣길이 중요하다는 식의 여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  줄짜리 캐치프레이즈 싸움’으로 가면 답이 보이지 않지만, 다른 교육 수요를 내세워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일방적으로 밀리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뉴시스서울에서 처음으로 친환경무상급식을 시행한 성북구 숭인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4일 오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배식을 하고 있다.

오 시장의 외곽 조언자로 알려진 한 원로 정치인은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 때문에 여권이 힘을 못 썼다는 평가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무상급식 때문에 한나라당이 졌다? 동의하지 않는다. 지방선거는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였고, 무상급식 열풍은 본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명분에 가까웠다.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끝났다는 말은 그래서 틀렸다.”

게다가 이왕 시의회와 전면전을 벌일 거라면 ‘서울 이슈’보다는 ‘전국 이슈’로 붙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바탕에 깔렸다. 시의회 의석 분포상 재의 요구조차 의미가 없는 절대적 세 불리 구도에서 전국 단위 여론을 등에 업지 않으면 교착 상태를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각오하더라도, 전국 단위로 주목을 끄는 이슈를 제시해야만 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속내다.

절박하고 비장해 보이는 오 시장 쪽 표정에 견주면, 서울시교육청은 차라리 시큰둥한 표정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오 시장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서 “정략적 의도를 가진 오 시장의 토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발을 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예산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금 편성된 교육청 예산에다 무상급식에 참여하는 구청 예산만 더해도 초등학교 6개 학년 중 1~4학년에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김종욱 무상급식특위 위원장(민주당)도 “서울시가 예산을 쓰지 않는다면 교육청과 기초단체 예산 범위에서 우선 시행하기로 교육청·민주당·기초단체(구청)가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다”라고 말했다. 굳이 서울시 예산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런 ‘쿨한’ 태도는 어떤 의미일까. 한 진보·개혁 성향의 교육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장 내년부터 1~4학년은 무상급식을 하는데 5·6학년은 안 된다고 상상해보라. 아예 전부 안 하면 모를까, 5·6학년만 무상급식이 안 되면 학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누구 때문인지를 당장 따질 것이다. 현장에서 무상급식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순간, 그런 상황을 만든 쪽에서 책임을 덮어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들어선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로부터 예산 지원 없이 무상급식 계획을 세웠고, 강원도와 강원도교육청은 강원도의회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을 비교적 덤덤히 받아들였다. “같이 하자고 하면 좋고, 안 하겠다면 우리 힘닿는 데까지만 한다. 결과는 학부모가 판단할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시큰둥한 반응’ 또한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민주당과 서울교육청이 말은 그렇게 해도 서울시의 무상급식 참여를 바라고 있다. 자신들 공약을 이뤄냈다는 상징성도 크고, 서울시의 참여 없이 모든 초등학생에게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도 힘들다. 만에 하나 식중독 사고라도 난다면 책임 소재 문제도 발생한다”라고 반박했다.
 

ⓒ뉴시스한나라당 소속 서울시 의원들이 무상급식 반대 시위를 벌이자 시의회 직원들이 저지하고 있다.


“오 시장, 중도 사퇴용 명분 쌓고 있다”

겉으로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서울시 대 서울시교육청의 충돌처럼 보이지만, 교육청은 전면전을 벌일 의사가 없다는 태도다. 오히려 문제가 꼬여가는 곳은 서울시 대 서울시의회 사이의 전선이다. 시의회로서는 오 시장이 의회를 무시하는 행보를 보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게 물러설 수가 없다. 시의회 고유 권한인 조례 제정권을 정면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오 시장 측은 시의회가 조례를 만들면서 시의 고유 권한인 예산 편성권을 침해했다고 본다. 무상급식 예산 문제보다는 오히려 이 문제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양쪽 모두 ‘회군 선언’을 하기에 명분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김종욱 위원장은 “오 시장은 여소 야대 시의회가 발목을 잡는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중이다. 시장직을 중도 사퇴하고 차기 대선으로 직행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 대선 전에 사퇴할 걸로 본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무상급식 논쟁을 핑계 삼아 사실상 의도적으로 시의회와 반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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