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2011년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아기들이 병원에서 공짜로 예방접종 주사를 맞을 돈도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12세 이하 영유아가 민간 병원·의원에서 필수 예방접종을 받을 경우 국가가 접종 비용을 분담해주는 ‘필수예방접종국가부담사업’ 예산 증액분이 ‘0원’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 사업은 제17대 국회에서부터 논의됐으나 한 해 두 해 미루다가 지난해 3월부터 겨우 시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 보조 비율이 30%에 불과해 부모들은 병원에서 8종 총 33회에 이르는 필수 예방주사를 아이에게 맞힐 때마다 1만5000원씩을 부담해야 했다. 내년부터 본인 부담금을 1회 1만5000원에서 5000원으로 낮추기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심의 과정에서 예산 338억8400만원을 증액했지만,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 권 갖춰놓았다는 베스트셀러 〈삐뽀삐뽀 119소아과〉(그린비)의 저자이기도 하정훈 소아과 전문의(사진)는 이 소식을 듣고 지난 12월9일 자신의 트위터(@drha119)에 “저출산으로 국가가 비상사태라는데, 정작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니 놀랍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울리는 소아과 진료실에서 전화를 받은 하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예방접종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나?
현재는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데가 보건소밖에 없다. 보건소 업무 시간 맞추느라 회사 휴가까지 내며 고생하는 엄마가 많다. 그나마 뇌수막염과 폐렴구균 등은 보건소에서 접종하지 않는다. 이런 선택 예방접종을 받으려면 민간 병·의원으로 두 번 발걸음해야 하기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국에서는 선택과 필수 두 가지를 민간 병원에서 모두 접종하도록 지원해준다. 병원에 와서 경제적 여건 때문에 “비싼 건 빼주세요”라고 하는 엄마들을 보면 의사들도 마음이 아프다. 남들이 하는 것 자기 아이에게 못해주는 엄마 마음이 오죽하겠나.

국가가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지원을 늘리면 의사들이 이득을 보는 건 아닌가?
소아과 처지에선 예방접종을 늘리는 것이 향후 환자를 줄이는 것과 같기에 의사가 이득을 볼 일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예방접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필수 접종으로 포함된 홍역과 수두의 경우 환자가 많이 줄었다. 선택 항목인 폐렴구균 예방접종은 중이염 발생률을 40% 낮춘다. 가을·겨울철이면 로타 장염(선택 항목)이 유행해 이때가 소아과 ‘대목’이라 했는데 예방접종이 늘면서 환자가 줄었다.

무상 예방접종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아이 키울 때가 부모들이 일생에서 가장 돈이 없는 시기이다. 돈 없이 고생하며 아이 하나 키우다보면 둘째 낳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비상사태라면서 왜 부모들에게 이런 경제적 지원을 아끼는지 모르겠다. 다리 하나 세울 돈이면 모든 아이에게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맞힐 수 있다. 다리 몇 개 지을 돈이면 선택 접종도 무료로 실시할 수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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