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농촌으로 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도시의 불결한 공기와 살인적인 생존경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보다도 훨씬 절박한 것들이다. 대량 사육, 대량 살육을 특징으로 하는 축산은 미친 병이 들었다. 화석연료에 기댄 기업형 단작 농사는 땅속으로 수백m나 파고 들어가다 광맥을 놓친 광산처럼 파탄 직전이다. 자식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이려면 스스로 호미를 들 수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너덜너덜하더라도 그런 도시의 둥지나마 박차기란 쉽지 않다. 농촌으로 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여 답답했다. 그런데 농촌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을 연 제1세대 리더인 임경수 (주)이장 대표에게는 흡인력이 있었다. 그는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듯 얘기를 너무 빨리해 받아 적기가 불가능했다. 귀농을 하려면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게 좋겠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뜸 제주도 중산간으로 가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의 강연은 실용적이었다(제주도 중산간은 땅값이 싸고 연중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농가 소득이 높다고 한다). 11월25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펼쳐진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시사IN 조남진임경수 (주)이장 대표(위)는 어느 지역으로 귀농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제주도 중산간’을 꼽았다.
저는 원래 경제학 공부를 안 했는데도 사회적 기업을 하다보니 대안 경제에 대해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청중에게 묻습니다. “이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면 즐겁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왠지 찜찜합니다. 동네 약국에서 아주머니가 고맙습니다, 하면 정말 고마운 것 같은데, 이마트 안내 직원이 고맙다고 하면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영 즐겁게 쇼핑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물건을 사고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개별 경제행위가 나와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것이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면 즐겁고, 내 성장에 도움이 되며, 이웃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이 좋은 직업입니다.

저는 사람한테도 자연한테도 모두 도움이 되는 행위는 농사밖에 없다고 생각해 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좌절을 많이 겪으면서 농업·농촌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농산품만 잘 길러서 팔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농촌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무언가 대안을 만들어 그것을 확장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은 단위란 바로 마을이었습니다. 저는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유기농으로 전환한다, 도시민과 교류한다,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환경이나 생태계를 잘 보존한다 등등. 정리해봤더니 생태마을이 되더군요. 그래서 모범적인 생태마을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퍼머컬처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생태마을 크리스털 워터스는 3000~5000평 규모 농장 70개가 모여 한 마을을 이룬다.
‘퍼머컬처’를 만든 빌 모리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쪽 섬 태즈메이니아 출신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휴양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멜버른에서 직장을 다니던 빌 모리슨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이 끝도 없이 망가지는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그렇다고 고향 친구들이 잘살게 된 것도 아닙니다. 고향을 망가뜨리러 들어온 이들에게 그들은 착취당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을 닮은 공동체, 퍼머컬처에서 얻은 영감

빌 모리슨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 세계를 돌면서 대안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들렀습니다. 충남 홍성에 와서 그가 한 농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 논은 얼마나 됐나요?” 농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지었으니 몇 백년? 아니면 1000년도 넘었을지 몰라요.” 대답을 듣고 빌 모리슨은 기절할 듯 놀랐다고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땅이 넓으니까 몇 년 짓다 버리거나 아니면 휴경을 하지, 우리처럼 같은 땅에서 같은 작물을 1000년씩 심는 것은 상상도 못하거든요. 동아시아 농법은 3000년의 기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는 충남 홍성에서 감명을 받아 퍼머컬처(permanent와 agriculture의 합성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조는 대한민국인 셈이지요. 저는 퍼머컬처에 가서 4주일 동안 교육받고 머무르는 동안, 지난 30년간 배웠던 만큼 더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거기에서 배운 것을 써먹으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회를 보는 눈, 지역의 여러 가지를 통합해 꿸 수 있는 관점을 가지게 됐습니다.

제가 가서 공부하고 온 퍼머컬처의 생태마을크리스털 워터스는 3000~5000평(약 9900~  1만6500㎡) 규모의 농장 70개가 모여 한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땅값이 싸니까 굉장히 넓은 면적을 사서 계획을 세워 사람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마을회관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주민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합니다. 의무 사항은 아니고요. 맥주를 담갔으면 들고 나와 한 병에 2달러씩 팔기도 합니다. 모든 집은 생태 건축입니다. 지붕에 풀이 난 집도 있고, 밀짚으로 지은 집도 있습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집을 끼워넣은 것처럼 비치지만 사실은 20년간 가꾼 것입니다. 크리스털 워터스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자연과 닮는다는 겁니다.

지표수(地表水)가 워낙 불량해 식수는 빗물을 씁니다. 본래 빗물은 가장 깨끗한 물입니다. 빗물이 더러운 건 우리가 대기를 오염시켰기 때문이죠. 다행인 것은 초기 강우만 대기오염을 끌고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초기에 떨어진 빗물만 걸러내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지요. 우리도 빗물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4대강 강바닥을 팔 일이 없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도 이 마을이 지키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월러비라고 캥거루보다 좀 작은 놈이 있는데, 이 녀석은 다가가 쓰다듬어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크리스털 워터스에서는 안전하다는 걸 아는 거죠.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이 마을에서는 애완견을 키우지 않습니다. 애완견이 해치지는 않더라도 야생동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지요.

이 마을에는 쓰레기통이 끝도 없이 줄지어 있습니다. 쓰레기 분리가 철저한 거지요. 종이도 두꺼운 것, 얇은 것, 공기가 들어가 있는 것, 코팅한 것을 모두 분리합니다. 이곳의 원칙은 분류 배출이 아니라 ‘분류 사용’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녁 때 동아리가 연주하는 공연을 들으며 흥이 나면 지렁이 춤을 춥니다. 땅바닥을 마구 기는 거죠. 그러다 서로 만나면 지렁이처럼 몸을 막 꼽니다. 남녀 구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마을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녹색연합이 처음 이 사업을 하기 시작했지요. 파로호를 끼고 있는 용호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농사거리가 거의 없어서 낙후되었던 마을인데, 제가 보니까 아름다운 풍광만 제대로 소개해도 괜찮겠더라고요. 그래서 농촌 마을 가운데서는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웬만한 중소기업도 홈피가 없던 시절 일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후 6시15분쯤 방영되었는데 9시에 서버가 다운되었어요. 그때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강원도에는 특별한 정책이 있어요. 1년간 마을이 열심히 하면 상금으로 5억원을 줍니다. 주민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묻지 마 5억’이라고도 불립니다. 잘못 쓰면 이웃이 원수가 되기도 하지요. 용호리에서 5억원을 받게 되었어요. 이장님과 원칙을 정했지요. 주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말고, 될수록 주민에게 소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쓰자고요. 어느 날 이장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차라리 그거 은행에 넣고 이자나 빼먹을까?” 그것도 나쁜 생각 같지는 않아 강원도에 문의하니까 ‘그래도 괜찮지만 이자를 쓸 때마다 돈의 용도는 항상 같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일종의 기금을 만들라는 거죠.

그랬더니 이장님이 장학기금을 만들자는 거예요. 훌륭한 생각이었지만 저는 반대했어요. 이 마을 인구 절반 이상이 아이들 학교 보낼 일 없는 노인이어서 노인회와 청년회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구나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이장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오해받기 십상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을 어르신 모두가 그 계획에 동의해주었다는 겁니다. 결국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을의 젊은 농가가 떠나지 않게 되었지요. 아이들 대학 등록금까지 보장이 되는데 누가 떠나겠습니까. 화천군수가 소식을 듣고 어르신들을 위해 1억원을 들여 노인정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회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요일별로 노인정에 밥을 해댔습니다. 장학기금을 만들어주시기로 한 데 대한 보답이었죠. 이 마을에서는 설날에 공동 세배를 합니다. 그때 마을 아이들은 어르신들에게 장학금을 받습니다. 공동체 문화의 부활이지요.

마을 사람 모두가 이익을 보는 이런 구조를 저희는 ‘마을 산업을 유기화한다’고 말합니다. 지역도 국가도 이런 식으로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 휴대전화를 신나게 팔아봤자 이런 효과가 나나요? 이거 다 외국 가서 만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삼성이 하는 일이라고는 마케팅과 디자인밖에 없지요. 우리나라 수출주도형 산업은 절대로 내수 진작을 못합니다.

직업 2만 개 중 학부모가 원하는 건 20개

그동안 정부는 지역을 살린답시고 대규모 광역개발을 해왔습니다. 산업단지, 주거단지, 관광단지 등등. 하지만 이것은 지역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지역에 도움이 되었다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인구가 늘어났겠지요. 지난 50년간 인구가 늘어난 군은 한 곳도 없습니다. 예외가 있지요. (충남) 연기군. 중앙정부가 장난을 친 곳 빼고는 그 많은 돈을 들이고도 끊임없이 인구가 줄어든 것입니다. 전에 신도시 개발로 상점 태반이 문을 닫은 (전남) 순천 중앙시장에 데리고 갔더니 외국의 건축가가 그러더군요. 도시 속의 사막이라고. 현장에 있으니까 지금 지역사회 곳곳과 도시의 골목골목이 사막화되어 가는 걸 실감합니다.

도시에서건 농촌에서건 우리는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곳에서만 희망을 발견합니다. 제가 잠시 교사로 몸담았던 풀무학교의 공동체, 성미산공동체, 남원 실상사의 귀농학교 주변 등은 지역에 그물망과 같은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아 인구가 줄지 않으며, 돈이 순환되고 일자리가 계속 생기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역개발은 이런 방식이어야 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에만 해도 일자리는 기업만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북동부나 스위스 같은 중유럽 쪽에서는 기업이나 공공 섹터 못지않게 민간 섹터에서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일수록 금융위기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시민 스스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한국 사회에는 직업이 2만 개 있는데 학부모가 원하는 직업은 스무 개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직업을 찾아주려 고심만 하지 마시고 내 지역사회부터 다시 보고 변화시키려는 노력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아이를 농촌으로 보내거나 본인이 과감하게 뛰어들면 어떻겠습니까? 지역사회도 건강해지고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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