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에세이스트)어리지 않고 착하지도 않은 88만원 세대의 이야기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여러분께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첫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8년쯤 전에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우연과 행운이 겹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온갖 불량 학생 취급을 받다가, 괜찮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고등학교 안 다녀도 그럴싸한 대학 갈 수도 있다”라는 촌스러운 주장의 증거가 되었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말을 시키는 바람에 센 척은 하고 있었으되 속으로는 있는 대로 쫄아 있는 촌스러운 십대 여자애였다. 〈시사저널〉 아무개 기자는 그런 나를 인터뷰했고, 나름으로 촌스럽지 않게 기사를 써주어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피차 세파에 휘말려 열심히 가라앉지 않으려고 헤엄을 치는 동안 특별히 아는 척할 일이 없었다.

몇 달째 월급 안 나왔겠지 하는 생각에 더 애틋

그러던 중 그 기자와 〈시사저널〉은 좀더 격정적인 세파에 휘말려 있었다. 그리고 〈시사저널〉의 사주가 가당찮은 일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즈음의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시시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며 시시한 회사를 다니면서 시시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뭔가 그럴싸한 일을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로 〈시사저널〉과 인터뷰했던 촌스러운 소녀에서 시시한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상사의 잔소리가 지겨울 때면 회사 주차장에 앉아 멍하니 담배를 들고 하루를 견디는 ‘88만원 세대’로 바뀌어 있었다.

기자들이 살림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사주의 대문 앞에 앉아 단식 농성(사진)을 해도 사주는 공공연히 시시한 무리 취급을 하고 그러한 견해를 감추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시시하고 촌스러운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증명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나는 기자 여러분이 품고 있는 각종 귀한 의지보다는 몇 달째 월급 안 나왔겠지 하는 생각이 더 애틋해서 뭐 도울 것 좀 없나 하고 고민했지만, 잽싸게 회원 가입을 하고 인터넷 서명을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무더운 여름 농성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뭐 도울 거 없나, 싶어 모기향을 사들고 오토바이를 끌고 북아현동을 찾았지만 길눈 어두워 결국 그 으리으리하다는 대문은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모기향은 그냥 자취방에서 여름 내내 탔지만 모기들이 싱싱하게 사는 바람에 나는 ‘그 대문 앞에 제대로 당도했더라도 이 모기향은 무효했을 것’이라며 무안함을 위무했다.

여름이 지나가고 〈시사IN〉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 그 전화는 ‘혹시 정기구독자가 아니냐’고 묻고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혼선만 깊어졌다. 어쨌거나 북아현동의 골목길과 모기향과 혼선 사이로 받은 원고 청탁이라 더욱 귀하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을 쓰는 고종석과 가장 재기로운 한국말을 구사하는 진중권 사이에 끼려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 창피를 당하나 하는 기분이지만, 가진 것 없고 예쁘지 않고 어리지 않고 착하지도 않은 88만원 세대의 이야기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여러분께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첫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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