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을 자제하라”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은 자제하라” “단호히 대응하라.”

북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진 11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의 첫 지시가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청와대는 온종일 오락가락했다. 청와대의 첫 브리핑은 ‘확전 자제’였고(오후 3시50분), 40분 후 ‘단호 대응’이 추가되었다(오후 4시30분). 다시 90분 뒤에는 ‘확전 자제’가 빠지고 ‘단호 대응’만 남았다(오후 6시). 군 통수권자의 첫 명령은 민망할 정도로 내용이 바뀌면서 힘이 실리기는커녕 그 자체로 논쟁거리가 되었다(29쪽 기사 참조).

‘첫 지시’는 11월24일에도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확전 자제’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했느냐고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김 장관은 그런 명령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로써 김 장관은, ‘확전 자제’ 지시는 없었다는 청와대 해명 ‘최종판’을 또다시 뒤집었다. 김 장관은 오후 속개된 국방위에서 자신의 말을 철회했지만 다음 날 경질 통보를 받아야 했다.
 

ⓒ뉴시스11월2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북한이 연평도에 발사한 포탄 잔해가 등장했다.

‘확전 자제’ 브리핑이 보수층의 심기를 긁는 것을 청와대가 부담스러워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대통령은 이날 밤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막대한 응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보수층을 달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실제로 MB의 ‘확전 자제’ 지시가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체 어떤 경위로 이 표현이 대통령 지시로 둔갑해 브리핑되었는지가 핵심이다.

경위가 어찌 되었든 홍보 라인은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단호한 대응’과 ‘확전 자제’는 이런 국지적 도발 상황에서 정석화된 대응이다. 다만 전자는 대외용, 후자는 대내용이라는 차이가 있다. 홍보 라인이 브리핑에서 ‘확전 자제’는 걸렀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왕 브리핑을 내보내서 엎질러진 물이라면, 홍보 라인이 차라리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 자제’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시 상황에서는 정석적인 지시이니만큼 일부 보수층의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원칙을 지키는 편이 브리핑을 번복하는 것보다 혼란이 덜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몸통’ 지키려 국방비서관 경질했나

‘확전 자제’가 실제로 이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아니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김병기 국방비서관을 김태영 장관과 동반 경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 비서관이 김희정 대변인에게 대통령이 하지 않은 ‘확전 자제’ 메모를 건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경질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수석비서관들이 검토하는 단계에서 실무진급인 비서관이 멋대로 결정했다는 얘기인데, 사실이라면 청와대 기강 문제까지 덤으로 제기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김 비서관을 희생양 삼아 ‘몸통’을 보호한 것 아니냐”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핵심 실세로 알려진 김인종 경호처장을 ‘몸통’으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있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특히 임 실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가벼이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려면 지난 6월 지방선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의 핵심 라인이라는 것은 거의 공인된 얘기다. 둘 다 학자 출신에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한 붕괴를 기다리자는 강경파다. 이들이 주도한 ‘천안함 정국’이 지방선거 승리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던 MB는 선거 결과가 참패로 나타나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가 대북 협상파인 임태희 실장 발탁이다. 임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 특사 접촉설’이 나올 정도로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단적인 장면을 보자. 11월1일, 현인택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시점에서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일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같은 날, 임 실장은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대답은 미묘하게 달랐다. “어떻든간에 북한에 달려 있다.” 닫아놓는 현 장관과 열어두려는 임 실장의 뉘앙스 차이는 의미심장했다.

임 실장이 임명된 7월부터는 안보 정책을 둘러싼 강온파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문제는 실제 발언자가 누구였건 ‘확전 자제’가 평소 임 실장의 포지션과 어울리는 ‘워딩’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이튿날 야당이 아닌 한나라당에서 집중 공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청와대 내의 대북 강경 라인과 한나라당 일부가 ‘암묵적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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