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격은 연평도가 받았는데 불길은 청와대로 번진 느낌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성난 여론 앞에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곤혹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이번 사태와 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대응 태도를 놓고 비난이 거세다. 보수 진영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군 통수권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철저하고 단호한 보복 응징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야권과 진보 진영은 북한의 이번 도발이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대북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북 정책을 재점검하라고 주문한다.
 

ⓒ국방부 재공11월23일 북한이 발사한 포탄을 맞아 연평도 해병대의 K-9 자주포 진지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급기야 청와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후속 조처를 발표했다. 교전수칙을 개정하고,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을 증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당장 내년에 국방 예산 26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쫓기듯 내놓은 수습책에는 천안함 사태 때부터 인책론에 시달렸으나 이 대통령이 감쌌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경질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런 후속 조처들이 서해 5도 주변 북방한계선(NLL) 지역에 도사린 분쟁 위험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NLL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30일 유엔사 측이 북한과 접경한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6개 도서와 북한 해안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선이다. 북한은 NLL에 맞서 서해 5도 남쪽 해상에 군사분계선을 임의로 설정한 뒤, NLL 주변 수역에서 한국군이 훈련하는 것을 자기네 영해 침해라고 우겨왔다.

작년 봄 북한의 해안포 위험 경고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해 5도 주변 수역에서 간헐적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정도였다. 현 정부 들어 이 일대가 차츰 ‘죽음의 바다’로 변모해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 기존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폐기하고, 북한에 대해 고립·압박 정책과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돌아서면서 NLL에서의 충격적 도발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포문은 2009년 1월 북한 인민군총참모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에서 먼저 열었다. 총참모부가 전면에 나서 ‘대남 전면대결 태세’를 선포하고 초강경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어 조평통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불법적인 것이며 서해 우리 측 영해에 대한 침범 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 혁명적 무력은 세상에 선포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조선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하게 될 것임을 선포한다”라고 밝혔다. 조평통은 동시에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된 기존 모든 합의를 무효화한다”라고 선언해 사실상 전쟁을 불사한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북한의 NLL 도발을 예고하는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유사시 대비책이 무엇인지를 국방부에 물었다. 2009년 봄 국방부는 청와대에 북한의 해안포가 증강되고 있다고 보고하며, 북한의 NLL 침범과 서해안 해안포에 의한 우리 함정의 피격 가능성 등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육·해·공 전력을 동원해 초전 제압하는 작전 등을 상세히 보고했다.
 

ⓒ연합뉴스

국방부의 이런 비밀 보고 뒤 보수 일간지 대부분은 일제히 북한 해안포 증강 실태를 도표까지 곁들여가며 보도했다. 북한 4군단이 보유한 지대함 미사일과 장사정포의 제원·위치·개수·이동 동향까지 샅샅이 드러내는 보도가 폭주했다. 연평도 등지에 배치된 우리의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벌인다는 작전계획도 공개되었다. 2009년 2월16일자 〈조선일보〉 보도는 압권이었다. “합참과 해군 등 군 당국은 북한이 NLL에서 다시 도발할 경우 백령도 등에 배치된 K-9 자주포, 해군 4500t급 구축함·초계함·호위함 등의 76㎜·127㎜ 함포, 공군 F-15K ·KF-16 전투기 등 지·해·공 전력(戰力)을 총동원해 초기에 제압한다는 계획이다.”

보수 언론의 기밀 누설식 경쟁 보도는 그 뒤로도 무차별로 이어졌다. 3월10일에는 〈세계일보〉가 이렇게 보도했다. “북한의 NLL 도발 때 우리 군은 F-15K 전투기를 투입해 북 해안포 기지와 함정, 장사정포를 정밀 타격한다는 시나리오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군 당국이 북한 도발 시 백령도·연평도 등에 배치된 K-9 자주포, 해군 함정의 76㎜·127㎜ 함포, 공군 F-15K·KF-16 전투기 등 지·해·공 전력 가운데 F-15K를 선제 타격 전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보도는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북한이 보유한 수호이 등 전투기 출격 횟수가 갑자기 여섯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장산곶을 비롯한 북한 내 군사기지에 장사정포와 지대함 미사일 같은 무기들이 부쩍 증가했다. 서해 5도에서 긴장은 이렇게 급격히 고조되어온 것이다.

‘군사적 우월주의에 기초한 북한 굴복시키기’라는 군부의 변화된 대응 기조는 지난해 11월 NLL에서의 군사 충돌로 비화했다.  NLL을 2.2km 남하한 북한 함정에 대해 우리 쪽이 경고 사격을 가하자, 이에 북 함정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함정이 총탄 10발을 맞았다. 그러자 우리 함정은 도주하는 북한 함정을 NLL 너머까지 추격해 약 3분 동안 총포탄 4960발을 퍼부은 끝에 최소 8명을 사망케 했다.

기습 상륙작전 시나리오도

이 충돌에서 크게 당한 북한은 올해 1~3월 한시적으로 NLL 일원 다섯 곳에 ‘통항 금지구역’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해안포 사격훈련을 감행하며 보복할 기회를 노렸다. 갈수록 군사적 대치와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3월26일 밤,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단을 향해 북상하다가 원인 모를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 남한은 민·군 합동조사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됐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대치 국면 속에 NLL에서 실전 훈련을 벌이던 우리 군이 11월23일 한국전쟁 이후 최초라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당한 것이다.

과연 정부는 북한 해안포에 의한 직접 공격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군 소식통들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북한이 임의로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을 사수하기 위해 NLL 유역에서 다양한 도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냈다고 말한다. 그 양상도 변모해 과거처럼 NLL을 중심으로 남북한 함정끼리 밀어내기 식으로 반복적 도발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함정이나 서해 5도 내 군사 시설을 겨냥한 해안포 사격, 북한군 특수부대의 서해 5도 일부 섬 기습 점령 등 다양한 도발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던 것이다.
 

ⓒ연합뉴스1999년 6월15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끼리 무력 충돌한 제1차 연평해전.

지난봄 김열수 교수(국방대)는‘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공격 도발 또는 기습 상륙작전을 예고하고 대비책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주민과 해병대 1개 소대만 주둔하고 있는 작은 섬 소청도가 북한 특수작전 부대의 기습 점령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된다고 분석했다.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북한군 특수부대가 악천후나 야음을 틈타 소청도에 기습 상륙해 주민들을 인질로 삼고 버틸 경우, 포격이나 강경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도발도 예상된다는 시나리오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 이후 잇달아 대북 강경 대책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지도 못했고, 그나마 대부분 엄포성 구호로 그쳤다(29쪽 딸린 기사 참조). 특히 이번 연평도 포격전의 경우 군 당국이 사건 당일 구체적으로 다가온 북의 도발 징후와 경고음조차 외면하고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은 포격 당일 오전, 우리 군에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강행할 경우 보복 공격하겠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또 이날 오전과 오후 연평도에서 15.5㎞ 떨어진 북한 개머리 해안포 기지 주변에 방사포 18대가 추가 배치되는 이상 징후 또한 군 당국에 포착되었다. 하지만 군은 ‘전에도 있던 일’이라며 아무런 대응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방심하고 훈련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군은 바로 이 장사정포를 이용해 11월23일 오후 연평도 포대를 조준 공격해 2대를 고장나게 만든 것이다.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는 서해에서 강도 높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해서 NLL 유역의 군사적 ‘비대칭 위협’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섬과 해역에서 군사작전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은밀성과 복잡성이 높은 상태에서 연합 해군의 핵 항공모함이 시위를 한다고 이 지역 안보가 궁극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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